메뉴 건너뛰기

close

 23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명동거리에서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투표를 호소하는 피켓을 든 시민들이 거리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3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명동거리에서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투표를 호소하는 피켓을 든 시민들이 거리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내일(4월 27일)은 강원도의 살림을 꾸려갈 수장을 뽑는 선거일이다. 하지만 나는 왜 내일이 강원도지사를 뽑는 선거일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난해 나는 분명히 우리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지사를 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선거의 결과는 무효가 되었다. 지난해 분명 선거는 했고, 그 결과로 당선자가 분명히 있었는데 강원도에 사는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로 그 당선자는 도지사가 되지 못한 것이다.

 

투표권을 행사한 강원도민으로서 도민이 뽑은 도지사가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결과를 들었을 때 낭패감을 느꼈고, 분노했다. 

 

내 생각이지만, 결격사유가 없어 도지사 선거 후보가 되었고,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이 투표를 했다. 그런데 강원도민은 그 결과를 존중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낭패감을 느꼈고, 분노한 것이다.

 

위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분명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번 개인 의견이란 단서를 달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지난 선거의 결과에 따라 도지사는 임기 동안 업무를 수행했어야 한다고.   

 

어제까지만 해도 이번 선거 해야 하나 싶었는데...

 

 23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명동거리에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피켓이 놓여 있다.
23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명동거리에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피켓이 놓여 있다. ⓒ 권우성

어쨌거나 내일이 보궐선거 일이다. 강원도민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 솔직히 어제까지만 해도 이번 선거에 꼭 참여해야 하나 싶었다.

 

어제 늦은 밤 아내가 이번 선거에 관해 처음으로 한마디 했다. '투표할 거야?' 하고.

 

요즘은 정말 먹고 살기 바빠서 선거에 관심 없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더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제 저녁, 가까이 사는 지인들과 버섯전골을 끓여놓고 저녁식사 겸 술자리를 했다. 50대로 막 접어든 남자들이었다. 산골 마을에서 방앗간을 하는 신아무개와 농사꾼 김아무개, 그리고 명예퇴직 고민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와 나였다.

 

"이번 선거도 무효가 되는 거 아니야?"

 

신아무개가 불쑥 내뱉은 말이었다. 이전까지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르는 기름값 이야기를 하다가 내 늦둥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과 다투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잘되면 또 한 번 할 수도 있겠던데."

 

선거법 위반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과 모 후보 지지자 몇 명이 구속되었다는 것이다.

 

"잘 되었는데 왜 해, 잘못되니까 하는 거지."

 

명예퇴직을 고민하는 김아무개가 말했다.

 

"힘 있는 사람이 당선되면 안 하고, 힘없는 사람이 당선되면 또 하겠지."

 

농사꾼 김아무개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논쟁 아닌 말씨름이 시작되었다. 우리 넷 중에 지지 정당이 있는 친구가 둘 있었다. 그것도 지금 후보로 출마한 두 정당의 일반 당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말씨름은 친구들이란 명분으로 시시하게 끝났고, 집에 일찍 들어가서 TV 토론을 보고 결정하자는 내 제안에 모두 동의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라면 분명히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 헤어질 친구들이었는데.

 

늘 보았던 우리나라 정치인의 모습을 또 보고 있었다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23일 밤 강원도 춘천MBC에서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23일 밤 강원도 춘천MBC에서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나는 집에 돌아와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의 마지막 TV 토론을 경청했다. 결론은 말싸움뿐인 TV 토론이었고, 두 후보 모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방송사 사장까지 지낸 사람들이었건만, 그 이미지는 방송이 끝나기 전에 사라져버렸다. 그저 늘 보았던 우리나라 정치인의 모습을 또 봐야만 했던 그 시간이 참 지루하게 느껴졌다.

 

TV 토론이 끝난 뒤 나는 물 한 잔을 마시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내 걱정도 참 많은데, 두 후보의 앞날이 더 걱정되었다.

 

강원도를 위해서 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 후보나, 강원도의 참 일꾼으로서 의리를 지키겠다는 후보나 내 눈과 귀로는 분별하기 어려웠다. '정말 강원도민을 위하고,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는 그들의 말이 내 마음 깊숙이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두 후보 모두 자기가 해야만 잘할 것이란 생각을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하고 나서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다음, 같이 강원도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마음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유권자'들에게 TV 토론을 통해 보여주면 안 되는 것일까.

 

생방송 토론 마친 엄기영-최문순 후보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24일 새벽 강원도 춘천MBC에서 열린 4.27강원지사 보궐선거 토론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생방송 토론 마친 엄기영-최문순 후보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24일 새벽 강원도 춘천MBC에서 열린 4.27강원지사 보궐선거 토론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왜, 꼭 내가 해야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속에 있는 것까지 다 토해내면서 상처를 주어야만 하는 것인지 바보스러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 밑바탕에 분명히 두 사람이 같이하면 더 잘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어있었다. 

 

이번 선거가 끝난 다음 두 사람은 선거에 참여했던 마음과 지혜를 모아 진정으로 강원도민을 위하여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란다. 또 이번 선거만큼은 제발 무효가 되지 않도록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비록 힘은 없어도 마음은 순수한 강원도 사람들이 정치 논리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강원도지사선거#최문순#엄기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