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재작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서태지의 정규 8집 <아토모스(Atomos)>가 막 발매되던 시점이었다. 이 음반은 앞서 발매된 싱글 두 장이 같이 묶여 있는 형식으로 발매됐는데, 그래서인지 팬들 사이에도 너무 상업적인 음반이라는 비난이 많았다. 그러나 서태지가 누구인가. 결국 66만 장 이상을 팔아치우며, 말 그대로 최악의 음반 침체기를 걷던 시기에 믿지 못할 기록을 세운다.
더군다나 서태지의 음악이 늘 그래왔듯, 음악성 역시 준수하여 당시 모 포털사이트에서 지정하는 '이 주의 국내음반'이라는 섹션을 통해 평가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음반으로 선정됐고, 그 리뷰를 공교롭게도 내가 맡게 되었다. 무척이나 설렜다. 어렸을 적 내 영웅의 음반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리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기 힘들었던 것이다.
평가할 수 없는 절대자 서태지
실제로 그의 새 음반에는 로맨틱한 멜로디를 아우르는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현악이 합쳐진 유기적인 이모코어 사운드가 배합된 만족할 만한 소리들이 뭉쳐있었다.
특히나 김석중이 가세한 세밀한 일렉사운드와 드러머 양혜승의 쪼개지는 비트는 그의 7집과 비교되는 특징이었으며, 그가 내세운 네이처 파운드(Nature Pound)라는 장르는 결국 '서태지'라는 아티스트가 추구한 완벽함을 넘어선 일종의 '진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과거 '혁신'을 추구하는 서태지의 음악과는 또 다른 변화였다. 그 스스로 만들어놓은 신비주의라는 마케팅 영역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점과 창조에 대한 강박이 결국 하이브리드라는 형식에만 집중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건재했다.
한마디로 그는 세계를 움직이는 뛰어난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어도, 언제나 새로운 스타일을 고심하여 대중 앞에 화려하게 선보이는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 같았다.
그렇다. 실제로 그는 퇴보는커녕 결코 그 자리에 안주해서도 안 되는 아티스트였고, 그러한 위태한 상황에도 무사히 자신을 또 한 번 넘어서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 섹션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은 거의가 비난 일색이었다. 그것은 당연히도 서태지 음악에 대한 비난이 아니었다. 서태지의 음악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그의 음반에 10점 만점에 6.9점이라는 총점을 내린 다수 선정위원들의 짧은 식견에 대한 비난이었다. 소위 말하는 한국의 평론가 집단의 수준은 고작 그것 밖에 안 되냐는 것이다.
98년 발매된 솔로 1집이 해외 음악평론사이트에 올라 뉴메틀 밴드들에게 호평을 받았다는 이야기나, 그의 7집이 가장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대중음악 사이트인 올뮤직(allmusic)에서 별 네 개로 평가됐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였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서태지 음악이 단순히 소리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 말이다. 평가할 수 없는 존재. 혹은 실력이 없다면 리뷰를 해서도 안 되는 음악. 한국에선 서태지의 음악이 그랬고, 그의 존재가 그러했다.
서태지와 이지아, 이들의 관계보다 더 궁금한 것은
그런 그였기에 처음 배우 이지아와 난데없는 이혼설이 터졌을 때 나는 경악했다. 처음에 인터넷을 통해 이 기사를 접하고는 난생 처음으로 이게 꿈인가 싶어 살짝 왼쪽 팔을 꼬집어 보았을 정도다.
정말이다. 난 그 순간 이게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실제로 했다. 그리고 그의 팬들 역시 이번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의 공식 홈페이지는 며칠간 접속이 불가했고, 그의 커뮤니티는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신상털기 글과 원색적인 비난 글로 온종일 몸살을 앓았다. 미디어들은 앞다투어 이들의 과거를 집요하게 파내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나는 마치 거대한 성이 저 끝에서 조금씩 찌직거리면서 갈라진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과연 서태지라는 아티스트는 이제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올까. 조금은 주제넘고도 또 솔직한 물음이었다. 이지아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둘이 몇 년도에 만나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물음보다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변질하지 않을 것이란 독단에 가까운 믿음에 금이 갈 때, 서태지라는 존재와 그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음악은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래서 그들의 사생활보다 내 흥미를 끄는 것은, 이후에 나올 서태지 음악 그 자체다. 조금은 생뚱맞을지도 모르지만, 가장 궁금하고 또 기대가 되는 건 이들의 법정공방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하는 것보다 후에 서태지의 음악은 어떻게 변하여 대중을 설득시킬까 하는 것이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의 지금 위치는 견고했던 과거에 비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음악은 분명 소리로 남아있지만 서태지라는 아티스트는 단순히 소리로만 평가받는 존재가 아니기에 당분간 대중을 기만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의 아이콘, 그의 음악 여정
실제로 그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아이콘은 시대가 탄생시킨다. 90년대 가요계의 아이콘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서태지다.
그의 음악은 늘 화제였다. 화제는 일종의 현상이며, 판단과 진단은 후에 뒤따른다. 결국 시대가 서태지를 만들어냈지만, 시대는 서태지를 따라갔다. 실제로 서태지로 인해 한국 가요계 전체가 질적으로 동반상승을 했느냐는 지금도 민감한 문제다. 당시 한국 가요계의 산실인 동아기획이 문을 닫고, 가요계에서 흥행하던 장르의 다변화가 무너지게 된 데에 서태지는 분명 책임이 있다. 아울러 서태지는 당시 감당 못할 압박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아직도 서태지가 당시 은퇴를 선언한 이유가 지금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지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만 하는' 역할에 대한 강박 때문이라고 믿는 이유다.
자, 이제 서태지의 여정은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됐다.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음악세계를 펼쳐보이던 서태지는 이제 다시 새로운 길을 보여줘야 한다.
화제의 중심에서 한동안 벗어나 있던 그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주목받을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과연 여기서 서태지의 음악은 또 어떻게 진보할 것인가. 그 여정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단순한 계기에 지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어쨌거나 서태지는 또 다시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이번 사건을 뛰어넘을 만한 작품을 들려줄 것이다.
나 역시 서태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고하게 자신을 지키리라 믿어본다. 그 어떤 것도 아닌 음악으로 충분히 나를 설득시켜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호기심과 기다림은, 분명 그의 감춰진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