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띠를 두른 중년의 약사들이 혈서를 썼다. 주변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약사이면서 보건정책을 공부하는 내 입장이 궁금한가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27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서비스산업 선진화 추진 방향'을 발표하였다. 현행법 내에서는 의약품의 판매가 약국에서만 가능하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구매 수요가 높은 가정 상비약의 휴일, 심야 시간대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임을 발표하였다. 추진안은 소화제, 해열제, 감기약 등을 우선 대상으로 할 것을 명시한다. 약사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한편 언론은 감정적 논쟁만 부추기고 있다. 꼭 필요한 약을 사야하는데 문을 연 약국이 없어 고생했다는 둥, 소화제 하나를 사 먹는데 왜 굳이 약국에 가야하냐는 둥,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것과 슈퍼에서 약을 사는 것이 뭐가 다른가 하는 식의 논란이다.
언론 및 일부 시민단체에서 시민의 편리성과 자가 요법(self-medication)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약국 외 판매를 찬성한다.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는 약사의 재정적 이익과 국민의 권익 둘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인가?
일반 의약품은 진료와 처방 약을 대신한다. 다시 말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불건강한 상태에서 환자가 병원 진료와 조제 약 대신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일반 의약품이다. 이를 감안하면, 병원 가는 대신 '스스로 판단하여' 일반 의약품을 선택할 계층은 의사나 약사보다 의료에 대한 지식이 더 많은 계층이거나 비용에 더 민감하고, 더 시간이 없는 계층일 것이 분명하다.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쟁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 중 하나는, 가정 상비약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부서가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라는 점이다. 필요한 시점에 의약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나라 경제 정책로 일부로 이해하기는 석연치 않다. 결과적으로 약국 외 공간에서 판매한다 하더라도, 보건복지부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해당 정책을 제시한 것은 '보건'을 넘어서는 문제가 작동한다는 반증이다.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가 영리법인으로 가는 출발일 것이라는 해석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 의약품을 어떤 공간에서 관리 및 판매하게 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의사결정 결과는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의 삶에,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가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개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과연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인가. 기획재정부가 주도하고 보건복지부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약사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일반 의약품을 쥐고 있는 것이므로 국민의 이익을 위해 약국 외 판매를 해야한다는 식의 몰아가기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다 똑같은 놈들이지'로 일관하며 무관심 하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을 아닐까.
'나는 가수다'에서 청중들은 수동적으로 노래를 듣기만 하는 방청객이 아니라, 직접 들은 노래를 평가하고 판단한다. 연예 프로조차 대중들의 정서를 고려하고, 의사를 반영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 측면에서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의 득과 실은 무엇인지 공개하고 보건 복지부의 입장은 어떠한지를 물어야 한다. 또 우리는 사회 구성원들의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의사 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논의해야 한다. 단지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으로 방관하기에는 우리 삶에 미치는 파급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