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이 있어서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은 받을 때보다 행복하고 빛나는 얼굴을 만든다. 엄마 아빠를 위해 자신이 줄 수 있는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의 표정은 5월의 숲을 닮았다. 꽃보다 예쁜 연노랑 숲처럼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행복에 겨운 표정들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유치원 아이들과 엄마 아빠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이날처럼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란다. 우리 엄마 아빠를 어떻게 기쁘게 해드릴까?"아이들에게 이렇게 묻자마자 우리 반 호재가 답한다.
"선물 사줘요, 장난감이요."돈을 저금통에 많이 모아놨으니 엄마 아빠에게 선물을 사주자고 했다. 호재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저마다 모아놓은 혹은 엄마에게 맡겨놓은 돈이 있다고 무엇을 살 것인지까지 이야기한다.
"호재야, 장난감은 엄마가 싫어해. 화장품 사야 돼."시은이의 말에 아이들 모두 그렇단다. 모두 화장품을 살 분위기다. 500원이 있다는 정훈이까지.
그때 현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에이, 난 돈 하나도 없는데.""현규야, 괜찮아. 선생님이 엄마를 해봐서 알아. 화장품보다 더 멋진 선물을 엄마 아빠는 받고 싶어해. 그것이 무엇인지 아니?"아이들은 모두 다시 심각해지고, 화장품보다 더 멋진 선물을 스무 고개를 하며 찾아낸다. 교사의 의도된 편지쓰기, 효도쿠폰 만들기, 그리고 카네이션 만들기까지…. 현규의 얼굴은 다시 밝아지고 아이들도 화장품보다 더 좋겠단다.
첫 번째 선물로 아이들은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생애 처음으로 쓰는 편지다. 썼다가 지운다. 엎드려서 한참을 생각하고, 다시 종이를 바꿔서 쓰고, 옆에 친구가 뭐라고 쓰는지도 보고….
어떤 아이는 속마음(엄마 아빠 사랑해요)을 들키지 않으려고 손으로 가리는 것이 부족해 엎드려서 쓴다. 편지지에 하트를 그리고, 글을 못 쓰는 친구들은 생각이 날 때마다 잊어버릴까 봐 달려와서 내게 써달라고 한다. 설렘으로 자신들이 쓴 편지를 읽을 엄마 아빠를 그리면서 쓴다. 편지를 쓰면서 슬아는 빙긋이 계속 웃는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웃을 일이다. 받아만 오던 아이들이 주는 마음의 경이로움에 푹 빠져서 요즘 보기 드문 열성을 보였다.
엄마 진짜 사랑해 알겠지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나무샘(아이들이 부르는 교사이름)보다 더 좋아아빠 씻는 것 알려줘서 고맙습니다.태어나게 해줘서 고마워요아빠는 누가 태어났어(아빠는 누가 낳았어요?)집에서 맨날 아빠랑 살고 싶어(아빠와 떨어져 사는 아이의 편지) 아빠, 힘내세요. 오래오래 살아요(최근에 아빠가 산재사고를 당한 아이의 편지)장난감 사줘서 고마워요.
아이들은 어리지만 현실에 처한 자신의 환경을 바르게 인식한다. 비록 어려서 잘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다친 아빠에게 힘내라고 격려를 할 줄 알고, "오래오래 살아요"라고 자신의 염원까지 편지에 담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한단다. "사랑해요"만으로 부족한 아이들의 사랑은 하트를 꼭 그려 넣고 "진짜", "정말"까지 반복해서 붙여 넣은 사랑이다. 어쩌면 해산의 고통과 밤과 낮이 바뀐 아이를 키운 양육의 고통도 충분히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부모님께 주는 두 번째 선물은 사랑의 묘약이다.
아이들과 함께 매년 만들어 오는 이 묘약은 '효도쿠폰'이다. 손수 아이들이 그리고 자신만의 쿠폰북을 만든다. 요즘 아이들 쿠폰에는 전에 없던 텔레비전 그만보기, 컴퓨터게임 그만하기, 집에서 쿵쿵 뛰지 않기가 있다. 세대 차이라는 것인지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내용이다.
엄마가 잘 때 시끄럽게 안하기밥투정 안하기 김치먹기 밥 혼자 먹기가연(동생)이랑 싸우지 않기티비 그만보기컴퓨터 그만하기엄마말 잘 듣기유치원갈 때 울지 않기아빠 회사갈 때 안녕 하고 인사하기집에서 쿵쿵 뛰지 않기오빠랑 싸울 때 말로하기밥상차리기 돕기시끄럽게 하지 말기 혼자 자라고 하면 자기아빠사랑해요 안아주기언니 때리지 않기
이 효도쿠폰을 볼 때마다 어리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각자 처한 형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 쿠폰북을 받아 든 부모님들이 아이들 기대만큼 모두 행복해지길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카네이션 선물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 반 남자아이조차 오후까지 공들여 접은 카네이션 한 잎 한 잎마다 사랑을 담아 엄마 아빠께 전한다. 조그만 손으로 접었다가 다시 접고, 모르겠다고 와서 다시 묻는다. 아이들은 어려워도 두 개씩 만들어서 구겨질까 봐 가방에 넣지도 못하고 두 손으로 들고 갔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떠올리며 자신이 가진 모든 노력을 다하여 부모님께 어버이날 축하 선물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때로 속썩이는 일이 있어도, 부모님들은 이 아이가 태어났던 날과 더불어 이날을 기억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