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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뮤직> 겉표지
<트렁크 뮤직>겉표지 ⓒ 랜덤하우스
'트렁크 뮤직'이란 것은 시카고의 조직 폭력배들이 즐겨쓰는 용어다. 거치적거리는 놈을 해치우고 나서는 '그놈 걱정은 하지마, 이제 트렁크 뮤직이 됐으니까, 그놈을 다시 볼 일은 없을거야'라고 말한다.

조폭들은 희생자의 두 손을 등 뒤로 결박해서 트렁크에 강제로 집어 넣는다. 권총으로 머리에 몇 방 쏘아서 살해한 뒤에 트렁크를 닫는다. 그리고 차를 어느 한적한 곳으로 끌고가서 버려둔다. 그러면 그 시체가 발견될 때까지 몇날 며칠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조폭들이야 깔끔하게(?) 일처리를 했다고 만족할테지만, 희생자의 입장은 정반대다.

희생자는 두 손이 묶여서 트렁크로 들어갈 때 쯤이면 자신의 운명을 깨닫게 된다. 저항할 수도 없고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몇 십년 동안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좁고 어두운 트렁크 안에서 끝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살해방법은 조폭이 아닌 일반인이 따라하기에도 어렵지 않다. 개인적인 동기로 사람을 죽인 후에, 조직 폭력배의 범죄인 것처럼 위장할 때 이 트렁크 뮤직을 사용하면 적당하다. 문제는 이 노래를 제대로 끝까지 따라 부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해리 보슈

마이클 코넬리의 <트렁크 뮤직> 도입부에서 이렇게 트렁크에 갇혀 죽은 시체가 발견된다. 장소는 할리우드의 야외 공연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이 지역을 순찰하던 순경이 승용차를 발견했고 거기서 풍기는 시체 썩는 악취 때문에 트렁크에 시체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할리우드 경찰서 살인전담팀에 속해있는 형사 해리 보슈는 이 보고를 듣고 즉시 출동한다. 현장 주변이 깨끗할 걸로 보아서는 여기서 살해당한 것이 분명하다. 대신에 시체의 상태를 보니까 몇 가지 의문점이 떠오른다. 희생자의 구두와 양말이 모두 벗겨져 있고 두 손은 결박했다가 나중에 풀어버린 흔적이 남아있다.

희생자의 지갑에는 4백 달러 가량의 현금이 들어있고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손목시계도 그대로다. 그러니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이라기 보다는 조직범죄일 가능성이 많다. 해리 보슈의 동료는 이 사건을 조직범죄수사계로 넘기자고 말하지만 보슈에게는 그럴 생각이 없다.

보슈는 18개월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사건에서의 충격 때문에 18개월 동안 보슈는 비자발적 스트레스 휴직 기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복귀 이후에 처음으로 맡게 되는 살인사건인 셈이다.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는 자신만의 사건.

보슈는 현장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진심으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건수사가 시작될 때마다 보슈는 항상 이런 흥분과 만족감을 느껴온 것이다. 이렇게 가벼운 흥분 상태 속에서 보슈는 LA와 라스베이거스를 오가면서 사건수사를 시작한다.

이 사건은 과연 조직 폭력배의 범죄일까

<트렁크 뮤직>은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다섯 번째 편이다. 시간이 흘렀어도 해리 보슈의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전편인 <라스트 코요테>에서 보슈는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엄청난 비밀을 밝혀내고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 조차도 보슈를 바꾸지는 못한다.

여전히 보슈는 거칠고 위압적이다. 용의자에게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FBI 요원에게도 욕설을 내뱉으며 대든다. FBI 요원은 보슈를 가리켜서 '정신병자이자 맛이 간 꼴통'이라고 표현하고, 보슈의 상관은 보슈에게 '철 좀 들어'라고 말한다.

보슈는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 LA를 '배수관 같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모든 악한 것들이 물살과 함께 떠 내려와 모여드는 배수관 같은 도시. 보슈가 매일같이 접하는, 살해당하고 폭행당하는 희생자들의 사진은 이 도시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울한 증거다.

이런 곳에서 형사로 활동하다보면 보슈처럼 거칠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트렁크 뮤직>의 후반부에서 보슈는 한 여자와 결혼을 한다. 그동안 외로운 코요테처럼 살아왔던 보슈에게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 결혼은 '해리 보슈 시리즈'에도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혼한 보슈가 어떻게 변해갈지 이후의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트렁크 뮤직> / 마이클 코넬리 지음 /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 펴냄



트렁크 뮤직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11)


#트렁크 뮤직#해리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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