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아들들아, 그대 어머님은 어디에서 무얼 하시고 계시는가?"
어버이날을 끼고 있는 5월, 사진작가 김병구(43) 씨가 몇 점의 작품으로 이 시대 아들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경남 사천에서 '갯일'을 하시는 분들로, 늘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계시기보다는 축축하고 어두운 곳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시는 분들이다.
'늘 낮은 곳에 있는 이 땅의 어머니'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고 있는 그는, 자신을 전문 사진작가라기보다는 직장 생활 틈틈이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로 소개한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의 실력을 범상치 않게 평한다. 그래서 "'아마페셔널'이란 이름이 그에게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그를 만나 이번 사진전에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은 어떤 어머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가 2005년10월에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충격이 컸고, 이로 인해 우울증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바닷가에서 갯일 하시는 할머니들을 찍었는데, 거기서 '내 어머니' 모습을 보게 됐다. 누군가를 위해 숙명처럼 살아가는 이 땅의 어머니. 그래서 이때부터 줄곧 이런 분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김 씨의 직장은 한국항공우주산업(주). 남해안에선 보기 드물게 넓은 갯벌을 자랑하는 사천만 맨 안쪽에 회사가 자리한 탓에, 바다와 갯벌에서 일하는 사람을 늘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선포천과 사천강이 만나는 곳에서 재첩잡이를 하는 할머니들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수렵과 채집, 이것은 태초부터 해왔을 보편적 일이요 어머니들의 보편적 삶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실천함으로써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힘을 지닌 세상의 어머니, 제 어머니도 그런 분이셨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그러나 얼굴과 표정을 또렷이 알 수 없다. 석양이 바닷물에 비쳐 반짝이는 빛에 주인공을 역광으로 담았고, 가능한 얼굴 정면을 피했으며, 초점도 일부러 조금 어긋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마친 뒤에 사진기를 들었기에 바닷가에는 주로 석양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일 하시는 분들이 내가 사진 찍는 것에 못마땅해 할 수도 있어서 가능한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또 얼굴이 정확하게 드러나면 그분들에게 결례가 되는 것 같기도 해서 전시작품을 고를 때 신경을 썼다."
사진 속 어머니들을 배려하는 김 씨의 마음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사진과 인연을 맺었을까?
전북 군산이 고향인 그가 직장을 쫓아 사천에 들어온 것은 1997년. 그는 처음에는 사천에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말이면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어디든 떠났다.
그러던 중 결혼을 했고 아이가 태어났다. 귀여운 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하면서 사진이 지닌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고, 어느 순간 바다를 끼고 있는 사천이 사진을 찍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으로 와 닿았다.
김 씨는 평소 뭐든 관심을 가지면 몰입하는 형이어서 사진 찍는 일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다보니 국내 최대 사진 관련 커뮤니티인 SLR클럽에서도 이름을 떨치게 됐다. 이곳에서 '심온' 하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름이란다.
그리고 사진을 향한 이런 그의 열정이 이번 전시회를 낳은 셈이다. 그의 첫 개인전 'Mother in Korea'는 진주 미르아트홀에서 지난 4월21일부터 일주일 간 이어졌다. 지금은 대구 갤러리에이엔디에서 계속되고 있으며(5월9일까지), 오는 11일부터는 다시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일주일 간 이어질 예정이다.
그는 첫 개인전을 열면서 그가 살고 있는 사천에서 전시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크다. 마땅한 전시장소를 찾지 못한 것이 이유였지만 "언제라도 기회를 꼭 만들겠다"는 각오다.
"사진 속 주인공과 배경이 사천이기에, 사진을 보고 사천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더욱 각별할 거라 생각한다. 사실 가장 먼저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나저나 전문 작가가 아닌, 직장생활을 하는 신분으로 어떻게 전국을 투어하며 전시회를 열 수 있을까? 비용도 만만찮을 거니와 시간 내기도 쉽지 않을 터. 이런 궁금증에 그는 멋쩍은 웃음부터 지었다.
"비용은 1500만 원 정도 들 것 같은데, 사실 이 전시비용 마련하느라 아끼던 장비를 좀 팔았다. 집사람은 '그 돈으로 차나 바꾸지, 허튼짓 한다'고 성화를 냈지만... 회사에는 연차휴가를 몰아서 신청했다. 무척 미안하고 죄송한데, 격려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직장 상사가 전시회장을 들렀다. 그는 김 씨를 향해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며 격려했다. 그리고 작품 한 점을 골라 구입하는 '센스'까지... 사실 김 씨는 회사에서 중요한 사진 촬영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을 정도로 회사 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 두 가지 큰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전문작가로의 전업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주요 활동무대인 사이버공간에서 벗어나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뒀다.
다른 하나는 나름 '김병구 스타일'을 확보하는 일이다. 특히 반사렌즈를 사용하면서 물에 비친 석양 한 가운데 피사체를 두는 방식은 그만의 스타일로 계속 고집할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해외전시도 고려하고 있다. 평소 코닥 계열 제품을 즐겨 써 온 그이기에 코닥의 본사가 있는 뉴욕까지 첫 개인전을 이어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갯벌에서 일하는 어머니들의 모습, 이것은 외국 사람들에겐 이국적이면서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거라 확신한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끝으로, 김 씨에게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사천에서 살기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읽었는지 교육문제를 꺼냈다. 사실 지역민들에게 '사천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를 꼽으라면 교육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또 사천에서 가장 큰 기업이라 할 KAI 임직원들 중 상당수는 이 '교육' 때문에 주거지를 진주로 옮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회사 임직원들의 교육열이 만만찮음을 인정하면서 "이런 기대치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내가 사천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들려면 중고등학교를 이곳에서 다녀야 한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이때쯤 진주로 빠져나가니 안타깝다. 나도 큰딸이 초등학교 5학년인데, 고민이 좀 된다. 사천시 정도 규모라면 특성화된 학교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김 씨는 그러면서도 자신은 사천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유는 역시 사진이다.
"회사 일 끝내고 밖으로 나서면 바로 셔터를 누를 수 있다. 사진 찍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작업실이라도 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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