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좀 특별한 산행을 했다. 산행보다 노루귀의 안부가 염려되고 궁금해 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산 노루귀, 어딘지 절대 말할 수 없는 이유'란 기사를 쓴 후 노루귀가 더욱 걱정됐다. 절대 뽑히지 않았으리란 막연한 믿음이 있는 한편 그래도 내 기사 때문에 북한산에 노루귀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그 때문에 뽑혀나갔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사실 쓸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쓴 기사였다. '아무리 흔한 야생화일지라도 산에서 자라는 것은 절대 뽑아선 안 된다'는 취지의 기사를 써도 이런 내 의도와 달리 야생화나 자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흑심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북한산에도 노루귀가 있다'는 반가운 정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올라갈 때 분명히 있었는데 내려올 때 꽃이 사라졌다. 내 뒤에 사진기 들고 난리 치던 사람 소행일 거라 짐작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이 귀한 사진 자기 혼자만 가지고 있으려고 사진 찍은 후 뽑아버린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 후에 야생화 블로그 운영하는 사람들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물론 소수의 행동이라 하겠지만 야생화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라질 위험이 크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여기서도 누가 야생화 사진을 올리면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선다.' - 어느 독자의 댓글기사를 썼다. 조회수도 많았다. 기사에 어떤 분이 이런 댓글을 남겼다. 댓글을 읽자니 지난해 쓴
'제비꽃 앞에서 그 남자의 '그 짓' 자꾸 떠오르네'란 기사가 떠올랐다. 귀하고 예쁘게 잘 자란 야생화를 자기만 찍고 남은 찍지 못하게 하려고 꽃을 찍은 후 일부러 훼손하는 것을 목격, 그에 대해 쓴 기사이기 때문이다.
그 기사를 쓰기 전, 그러니까 유난히 탐스러운 남산제비꽃 무더기를 사진 찍은 후 뽑아버리던 남자를 목격하기 전까지 자신의 그릇된 욕심을 채우고자 야생화를 의도적으로 훼손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때문에 꽃이 뚝뚝 끊긴 것을 보면서 단지 예뻐서 꺾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를 쓴 후 눈여겨보니 이처럼 의도적인 훼손은 의외로 많은 듯했다.
그 기사를 쓴 이후 목격했다. 사진작가라는 한 여자가 멋진 작품 사진을 위해 얼레지를 뽑아 자신이 원하는 배경 앞에 꽂아놓고 사진 찍던 어이없는 모습을. 일부러 누가 잘라낸 듯한 뚝뚝 잘려나간 꽃송이들을. 그리고 깔끔하고 멋진 사진을 찍겠다고 야생화 주변의 작은 돌멩이와 낙엽들을 모두 치워 앞마당 쓸듯 깨끗하게 정리한 후 사진을 찍은 후 그대로 두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봤다.
그런데 얼레지나 노루귀, 바람꽃 등처럼 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 숲 속에 피어나는 꽃들에게 낙엽은 우리들이 덮고 자는 이불과 같은 역할을 한단다. 추위를 이기게 하는 그런 소중한 것이란다. 그러니 멋진 사진을 찍자고 야생화 주변의 낙엽들을 싹싹 긁어내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기사 고마운데 그래도 북한산이라고 지명까지 넣은 것은 경솔했다' '내가 사는 김포 00산에도 노루귀가 있더라. 노루귀를 걱정하시는 것 같아 알려 드린다.' '노루귀를 보려면 00산에 가면 되는데 함께 꽃구경 가지 않겠는가?''기자님처럼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디로 가면 볼 수 있는지 좀 알려 달라' '사진만 찍고 오겠다. 믿고 좀 알려주시면...'<오마이뉴스> 내 쪽지함에 이런 내용의 쪽지 몇 장이 왔다. 이 분(위 쪽지)은 북한산 OOO 인근서 찍은 청노루귀 사진을, 김포에도 노루귀가 있다는 것을 알려온 한 선생님은 꽃이 모두 진 후 잎이 돋고 그 얼마 후 씨앗을 맺기 시작한 노루귀의 모습을 함께 보내왔다.
이분들의 마음을 보며 자동차가 간간이 다니는 숲길 한가운데 국그릇만 한 작은 바위에 기대어 막 자라나는 금강초롱을 앞에 두고 숲 속으로 옮겨주는 것이 마땅한지 아니면 차가 지나며 바위를 건드리면 그대로 죽게 되는 위험이 있지만 스스로 뿌리를 내린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한지 한참 동안 고민하던 남자 셋이 떠올랐다.
기사에 넣으려고 사진 정리를 하며 어느 포털사이트의 내 블로그에도 간단한 설명과 노루귀 사진 몇 장을 올렸는데, 노루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비밀 글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선뜻 알려줄 수 없는 일. 지난해 '북한산 어디에 노루귀가 있는지 알려 달라'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그 블로거가 비로소 이해됐다.
노루귀가 좀 귀한 꽃인 것은 맞지만 기사를 쓸 때만 해도 이정도까지의 반응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반응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느 독자의 댓글이나 쪽지대로 내가 기사 중에 북한산이라는 말을 넣었기 때문에 내가 만난 그 노루귀가, 북한산의 다른 노루귀들이 훼손됐으면 어쩌나? 나 때문에 죽었으면 어쩌나?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던 일을 놓고 잠시라도 달려가서 확인을 해야만 될 것 같아, 그냥 만사 제쳐놓고 후딱 뛰어가 멀쩡한 노루귀만이라도 확인하고 와야만 할 것 같아 마음이 자꾸 술렁였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쉽게 가지 못했다. 그 구간으로 산행날짜를 잡기도 했지만 날씨와 갑작스러운 일로 무산되고, 20일도 훌쩍 지난 엊그제 5일에야 가게 되었던 것이다.
'분명 멀쩡하게 잘 있을 거야. 아니 혹시라도 없으면 어떡하지?'북한산에 접어들 때만 해도 설렜는데, 노루귀를 만났던 곳 가까이 가면 갈수록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렇게 마침 그 자리. 그런데 이럴 수가! 노루귀는 흔적조차 없지 않은가! 기억을 더듬어 아무리 찾아도 노루귀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꽃이 진 지 며칠 되었을 거라. 그럼 당연하게 잎이 자라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노루귀의 잎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경솔했나? 그때 사진 찍던 사람들 때문에 노출되고 그래서 뽑혔나? 내가 그때 사진 찍지 않았으면 아무도 몰랐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정말 나 때문에 살 만큼 살지 못하고 뽑히고 만 거네. 그래 맞아 내가 너무 경솔했어. 나는 아직 노루귀처럼 귀한 꽃을 볼 수 있는 자세가 부족한 거야. 아직 자격을 갖추지 못한 거야. 그래서 다시는 보여주고 싶지 않아 꼭꼭 숨겨버렸는지도 몰라. 북한산이라는 말만이라도 뺄걸. 그날 찍은 사진들 정보를 보면 어느 곳의 어떤 꽃을 찍고 나서였는지 알 수 있으니 그걸 참고하여 다시 와 찾아볼까?'가슴이 철렁, 다리에 힘이 빠졌다. 산에서 내려갈 힘도 올라갈 힘도 없었다. 죄를 지어도 너무 크게 지은 것 같았다. 후회가 됐다. 별별 생각들이 복잡하게 엉켜 들었다. 자책감도 그중 하나. 그 노루귀 모습이 자꾸 아른거리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멀쩡하게 잘 자라고 있는 노루귀들을 죽이고 만 것 같아서.
'북한산 노루귀' 어떻게 보호할까 |
"<오마이뉴스>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다뤄줘서 고맙다. 기자님 기사 읽으면서 기사에 북한산을 직접 거론해서 한편 염려되고 그랬다. 북한산에 귀한 식물들이 많다. 북한산에 어떤 식물들이 산다고 알릴 필요성도 느끼지만 우리의 의도와 달리, 기자님의 염려처럼 훼손당할 가능성도 많아 무척 조심스럽다. 알릴지를 고민 중이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몇몇 생태학자들의 요청으로 할미꽃 있는 곳을 알려줬다. 그런데 이후 할미꽃 씨가 말라버리고 말았다.
우리에게도 노루귀가 어디에 있느냐? 고 묻는 전화가 온다. 북한산의 노루귀 보호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이다. 우선 계도로만 그쳤던 샛길탐방부터 본격적으로 단속할 계획이다. 이것만으로도 동식물들이 어느 정도 보호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인 방법들을 검토 중이다. 기자님 의견대로 야생화 훼손이나 불법채취 현장에서 어떤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명예감시단' 같은 제도를 상부에 적극 건의하겠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에 대한 성숙한 시민의식과 인식문제 아니겠는가?" - 노루귀를 만나기 전 방문한 북한산국립공원 OOO사무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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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꽃이 이제 막 지고 아직 잎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며칠 지나 다시 오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노루귀 설명에 꽃이 지고 난 후 잎이 난다고 되어 있지만 지난해 만난 H산의 노루귀들은 거의 모두 잎과 함께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니 설명대로 꽃이 진 후 바로 잎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무거운 마음은 쉽게 털어지지 않고 자꾸 후회만 됐다.
4~5백 미터만 올라가면 정상이고, 정상에서 만나고 싶은 나무도 있었지만 노루귀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그만 까맣게 잊어버리고 정상을 지나 집으로 오려던 애초의 산행계획과 달리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
그렇게 3백 미터. 그런데, 내가 노루귀를 만났던 곳이 아닌 곳에, 혹시 족두(도)리풀이 있을까 잠시 멈췄던 부근에 노루귀 잎이 송긋송긋 올라와 있지 않은가!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몇 포기의 노루귀가 더 보이고 2미터쯤 떨어진 곳에 낯익은, 노루귀를 처음 만난 날 보았던 작은 바위가 보였다.
그랬다. 내가 만난 노루귀는 뽑히지 않고 무사했던 것이다. 그날 노루귀를 만난 설렘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2미터쯤 떨어진 곳에도 노루귀가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지나쳤으며, 노루귀를 만난 설렘 때문에 3백여 미터를 어떻게 올라가는지조차 전혀 모르게 그냥 올라갔던 것. 그리고 쉬기 좋은 큰 바위가 있어 잠시 쉬었는데 그 바위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을 그 장소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무거웠던 다리가 날아갈 정도로 금세 가벼워졌음은 물론이다.
진달래가 필 무렵에 잠시 나타나는 애호랑나비는 현호색, 얼레지 등을 옮겨다니며 꿀을 먹지만 알은 오직 족도(두)리풀에만 낳는단다. 대략 12~17개 정도를 낳는데, 아무렇게나 낳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을 족도리풀의 영양상태에 따라 개수를 조절한다고. 그래야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무사하게 자랄 수 있을 테니까.
마침 그때 사진으로만 보며 직접 만나고 싶은 애호랑나비 한 마리가 바위에 앉아 볕을 쬐고 있는 것이 보여 멀찍이 서서 렌즈를 당겨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노루귀에 대한 경솔한 행동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리라는 내 진심에 자연이 내게 준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만난 노루귀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에 바짝 붙어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우선 눈에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그날 그곳에 서서 주변을 넓게 돌아보니 그저 한순간 쉽게 지나치기 딱 좋은 그런 곳이었다. 그 어디쯤 노루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간 나도 한순간 무심코 지나치고 말 정도로.
노루귀 덕분에 많은 생각을 했다. 노루귀 때문에 야생화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귀중한 마음들도 많이 만났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야생화에게 좋은가 바람직한가!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산행을 하고 야생화들을 만나는 동안 노루귀를 만나지 못하고 잠시 자책하고 반성했던 마음, 절대 놓지 않고 늘 염두에 두련다.
"북한산 노루귀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