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이 들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반전반핵 모임이나 환경회의만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 최병수. 목수이자 화가로, 환경운동가로 국내보다 외국에 더 많이 알려진 최병수. 전국으로 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반전과 지구온난화 문제를 외치며 걸개그림과 조각, 퍼포먼스를 하던 최병수가 드디어 장가를 갔다.
14일(토) 오후 1시. 원불교 여수교당에서 열린 그의 결혼식에는 그를 아는 지인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교회당을 가득 메웠다. 그의 나이 52세이고 신부는 현직 교사인 채옥희(44세)씨다.
예정된 시간이 다 됐는데도 개량한복을 입고 출입구에 서서 안내하거나 착석한 지인들에게 인사 다니는 최병수. 보다 못한 사회자의 멘트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신랑, 이제 결혼식을 시작합시다. 어서 나가세요. 오늘 결혼식은 '미녀와 야수'의 결혼식입니다. 신랑이 좀 늙어서 ~군이라는 말이 잘 안 나오네요. 늦었지만 세쌍둥이를 한꺼번에 낳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이 자리에서 세쌍둥이 돌잔치를 할 예정이니 꼭 오세요."
신랑신부 입장을 외치자 둘은 팔짱을 끼고 동시에 입장했다. 서로 평등하게 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주례는 해직교사 출신으로 현재 광양고 교장인 한상준씨가 맡았다. 그는 여태껏 지인들의 주례 부탁을 한사코 사양해왔다. 이번이 두 번째라는 한상준 교장은 두 분을 만나게 해 준 다리가 되어 어쩔 수 없이 결혼식 주례까지 맡게 됐다고 한다. 한 교장의 주례사다.
"제가 신랑보다 다섯 살 많습니다. 신랑처럼 치열한 삶을 살면서 결기를 보여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두 분께 부탁하겠습니다. 앞으로 눈만 뜨면 입 맞추고 눈만 뜨면 포옹하십시오. 신부께 부탁드립니다. 돈 때문에 신랑의 상상력이 고갈되는 것은 인류문명의 손실입니다. 하객 여러분 제가 최병수 채옥희 참 좋다! 하면 여러분도 참 조오타! 하고 따라하세요."
그의 지인과 친구들의 축하 노래로 분위기는 결혼식이 아니라 흡사 문화공연장 같은 모습이다. 한 하객이 정호승 시인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를 열창하자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또 다른 지인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자 하객들은 아예 박수를 치며 합창했다. 신랑 친구들이 불렀던 축가는 하객들과 신부를 폭소케 했다. 이어 한겨례신문에 시사만평을 그렸던 박재동씨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들려준다는 노래를 열창하며 신랑 신부를 껴안자 하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결혼식이 끝난 후 박재동씨가 신랑에게 보내는 축하 메시지다.
"내가 아는 최병수는 굳센 뿌리를 가진 친구예요. 못 살아라고 해도 잘 살 수 있는 친구죠. 비록 늦었지만 깊은 뿌리를 가지고 신부를 위하며 잘 살길 빕니다""너무 재미있었다"며 만면에 웃음을 띤 하객들 중에는 휴전선 인근 마을부터 서울 부산까지 전국 각처에서 온 '글과 그림' 동호회원들이 있다. 회원들의 결혼식 참석 소감이다.
"주례는 주례대로 감동을 주고, 사회자는 사회자대로 웃음과 흥을, 공연자들은 흥과 감동을, 하객들은 하객들대로 멋졌어요. 한 마디로 '식상한 결혼식은 가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