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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랬어. 저 물길, 옛날 그 물길이야. 저기 있는 옥수수밭에는 아카시아 숲이 있었지. 그곳에는 가재가 많았어, 그리고 저곳 기와집 자리는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꽤 깊은 웅덩이가 있어서 미역 감던 곳이야. 생각나, 외양간이 있던 곳엔 조그마한 빨래터가 있었어. 농지정리를 하면서 모두 사라졌던 저 물길. 참말로 물은 신통방통하네, 삼십여 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기억하고 있었어. 그래. 그래."

2002년 9월 1일, 필자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 있었다. 밤새 환하게 밝힌 번개로 말미암아 한숨도 못 자고,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을이 온통 난리였다. 다행히 그날 숙식한 집은 산 중턱에 있어서 물난리를 겪지 않았다. 기존의 콘크리트로 반듯하게 만들어놓은 물길은 사라지고, 마을 한가운데로 꾸불꾸불 물길이 새로 생겼다. 마을의 밭과 건물은 그 물길에 뚝뚝 잘리고 넘어졌다.

그 새로 생긴 물길은, 싱싱하게 자란 옥수수밭을 지나면서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고,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외양간 가운데로 흘렀다. 당연히 외양간은 절반이 뚝 잘렸고, 다 큰 한우 한 마리가 네 다리를 하늘로 뻗고 물길 한가운데에서 죽어 있었을 뿐, 그 큰 건물에 가득했던 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태풍 루사로 인해 죽은 소들
태풍 루사로 인해 죽은 소들 ⓒ "2002년 강원수해 백서" 발췌

물길이 기와집 밑으로 파고들어 가 집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이 기울어져 있었고, 기와집 지붕에는 껍질이 벗겨진 거대한 나무들이 걸려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며, "옛날 그 물길이야 옛날 그 물길이야"하며 담배 연기 한 번 뿜어낼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2002년 9월 1일은 바로,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할퀴고 간 날이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읍을 병풍처럼 감싼 웅장한 백두대간 봉우리들은 산사태 때문에 거대한 동물의 발톱에 할퀸 듯이 황토색으로 속살을 드러냈고, 마을을 흐르던 조그마한 냇물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대신 꾸불꾸불한 물길이 새로 생겼다.

태풍 루사는 2002년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우리나라에 피해를 줬다. 8월 31일 오후 6시경에 전남 고흥군으로 상륙해 남해안을 관통한 다음 동해안으로 빠져나가 9월 1일 15시경에 약화되면서 소멸했다. 강릉지방은 하루에 870.5mm의 비가 내려, 역대 최대 강수량으로 기록되었다.

전국적으로 태풍 루사에 의한 피해규모는 인명피해 321명(사망 209, 실종 37, 부상75), 이재민 2만1318세대, 6만3085명, 주택침수 2만7562 채, 농경지 유실이 17,749ha 이며 재산피해가 5조1479억 원이 발생하였다. 태백산맥의 급경사로 인해 산사태와 급류로 강원영동지방의 피해가 컸다.<국가기록원 나라기록>

 위성에서 촬영한 북상중인 태풍 루사, 눈이 선명하다.
위성에서 촬영한 북상중인 태풍 루사, 눈이 선명하다. ⓒ 기상청

29억 년 전 맨틀에서 분리된 암석이 지표로 올라오면서 한반도가 형성되었다. 실제로 태백시 일대의 고생대 지층에서 조개류 화석들이 쉽게 발견된다. 29억 년 동안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으면서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지금의 산과 계곡이 만들어졌다. 물이 가다가 산을 만나면 돌아가고, 또한 산은 물길을 터주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와 물줄기는 신의 지문이나 마찬가지다. 그 물길 따라 인간과 동물들이 모여 살고, 산에서 먹을 것을 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엄청난 과학발전과 함께 인간은 물길을 바꾸고, 막고, 산을 뚫고, 잘라냈다. 29억 년 동안 자연이 만들어 놓은 것을, 최근 몇 십 년 동안 불도저로 백두대간을 짓이기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종이 지구상에 홀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자연과 함께 공존의 길, 즉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거늘, 작금의 인간의 행태를 보면 그러한 마음이 전혀 없는 듯하다.

살아 있는 지구, 가이아

환경주의자들은 지금처럼 과학문명을 앞세워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잘못되었다. 지구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멸종하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40억 년 전부터 생물체가 살아왔다. 그 중에 아주 짧은 기간(2000분의 1) 즉 200만여 년 전에 인류가 태어나서 지금 번창하고 있을 뿐이다.

가이아 이론을 내세워, 지구가 살아 있다고 처음 말한 사람은 제임스러브록이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구의 여신'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러브록은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생존에 최적조건을 유지해 주기 위해 언제나 자기 스스로 조정하고 스스로 변화한다고 했다.

"대기 중에서 산소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은 곧 능동적 조절시스템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이다.(중략) 대양은 거대한 '기체 저장고'라고 할 수 있어서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의 조성을 통제하고 해양생물들-지구상의 모든 생물군의 약 반에 해당하는-에게는 안정된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등으로 생물권에 기여한다." - 제임스러브록 <가이아>에서.

 제임스 러브룩의 "가이아"
제임스 러브룩의 "가이아" ⓒ 허관

실제로 현재 대기 중에 산소가 21%인데, 25%만 돼도 약한 번개 한 번에 지구는 타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갯벌의 정화능력, 동물이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 등 우리가 유심히 보면 실제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기의 온도, 즉 기온은 인체의 체온과 마찬가지고, 대기압은 혈압과 비슷하며, 그리고 지구와 인체 모두 물이 70%를 차지한다.

만약에, 제임스러브록의 주장대로 지구가 살아 있다면, 인류는 암적인 존재일 것이다.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미 "가이아의 복수"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가 그 증거일 수도 있다. 작게는 태풍 루사 때 마을의 물길을 원상태로 돌리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을 완벽하게 파괴하는 것도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제임스 러브록 JAMES LOVELOCK (1919~)이란 누구인가?
200편 이상의 논문을 쓴 과학자이자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이다. 1974년 이후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발탁되었으며, 1994년 이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그린칼리지의 명예초빙교수로 있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뉴사이언티스트』), '환경운동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옵저버』)로 평가되어 왔다. 2003년에는 영국 여왕에게서 '명예 동료상'(COMPANION OF HONOUR)을 받았고, 『프로스펙트』 2005년 9월호는 그를 '100명의 세계 대중지식인' 중 하나로 꼽았다. NASA에서 연구를 수행한 전력이 있는데 그의 일부 발명품들은 우주탐사에서 요긴하게 이용되었다.

200년 빈도 이상 홍수 대비? 자연 통제는 불가능하다

지금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100여 년 동안 평균기온이 1.7℃ 상승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의 집중화와 대량화의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식물의 생육지역도 변화하여, 사과의 주산지가 대구에서 경북 청송으로 북상했고, 복숭아 주산지는 경남 경산에서 춘천으로, 녹차는 보성에서 고성으로 북상했다.

기후가 변화한다는 것은 기상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강수량도 변화한다. 하지만 앞으로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 날씨도 모르는데,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후의 날씨를 어떻게 알까.

IPCC(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는 전 세계 해양, 대기 등 관련 전문가 3000명으로 구성된 UN산하기구다. 2007년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제시한 보고서(IPCC 4차보고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3000여 명의 전문가 그룹이 제시한 앞으로의 기후변화 경향에 내포한 불확실성이다.

즉 그들은 여러 가지 기후모델 시나리오를 사용하여 앞으로 100년간 최저 1.1도에서 최고 6.4도까지 기온이 상승할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만큼 앞으로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난 2010년은 지구적 기온 관측이 시작된 1880년 이래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되었다.

4대강 살리기의 가장 큰 목적은 "수해예방을 위한 유기적인 홍수대책 마련"이다. 그리고 "200년 빈도 이상 홍수에 대비하여 홍수 조절용량 9.2억㎥ 증대"라는 수해 예방을 위한 구체적 목표까지 설정했다.

"200년 빈도 이상 홍수"란 무슨 뜻일까. 200년에 1회 발생할 확률강수량을 홍수량으로 산정한 값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기후변화 추세로 볼 때, 200년에 1회 발생할 확률강수량이 의미가 있을까.

IPCC란 거대한 전문가 집단도 기후변화의 즉 지구온난화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이를 설명하고자 IPCC 4차 보고서에 불확실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지금처럼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한 "200년 빈도 이상 홍수"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작년 2010년이 지구적 기온관측기간 130년 중 가장 높은 해였다.  "200년 빈도 이상 홍수(정확한 값은 모르겠지만)"가 당장 올해(2011년) 여름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4대강 사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 사업의 초점은 유역량 확대로 홍수피해 줄이기다. 즉 하상퇴적의 준설로 홍수위를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해마다 여름이면 발생하는 홍수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목적을 "현재보다 유역량을 늘려서 홍수를 더 잘 대비할 수 있다"라고 표현해야 되지 않았을까. 과학이 유기체처럼 끝없이 발전하듯이. 200년 빈도 홍수대비란 용어는 왠지 무책임해 보인다. 그것도 4대강사업과 같이 엄청난 국책사업의 최대 기대효과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다니.

과연 4대강 사업으로 강이 살아날까?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29억 년 동안 물이 순환하면서 현재의 강줄기와 산맥을 만들었다. 산은 물을 막지 않고, 물은 산을 뚫지 않으면서 그렇게 산은 물의 길을 만들어주고 물은 산을 키우며 휘감아 감싸 안았다.

정부는 지금 4대강이 죽어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이를 살리려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하는 것이다. 필자는 4대강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하겠다. 다만, 정부의 의지대로 죽은 4대강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강물이 고이면 호수다. 강은 흘러야 한다. 그런데, 16개의 보를 설치한다고 한다. 보는 물길을 막는 둑이다. 곧 저수시설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자 목을 조이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뿐일까. 하지만 정부에서 하는 일이니 무슨 방안이 있을 것이다. 설마 살리기 사업이니 죽이기야 하겠는가.

또한, 살리기 사업이니 지금의 강바닥 준설 등 모든 사업은 산업화 이전의 단계로 돌아가는 사업이어야 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목표에는 없지만 지금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만 산업화로 죽은 4대강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제임스러브록의 최신작 "가이아의 복수"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가 경고하는 인류 최악의 위기와 그 처방전을 다루고 있다.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책에 또 한 권을 보태는 셈이 되리라. 이 책이 다른 점은 내가 행성의사로서 환자인 살아 있는 지구가 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삶 자체가 건강한 지구에 의존하고 있기에 지구의 건강 악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고 본다. 나는 또한 그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급증하는 인류의 복지가 건강한 행성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쪽)"
제임스러브록의 최신작 "가이아의 복수"가이아 이론의 창시자가 경고하는 인류 최악의 위기와 그 처방전을 다루고 있다.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책에 또 한 권을 보태는 셈이 되리라. 이 책이 다른 점은 내가 행성의사로서 환자인 살아 있는 지구가 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삶 자체가 건강한 지구에 의존하고 있기에 지구의 건강 악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고 본다. 나는 또한 그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급증하는 인류의 복지가 건강한 행성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쪽)" ⓒ 허관
설마, 새마을운동 때 실시한 치수 사업처럼, 꾸불꾸불 흐르던 물길을 반듯하게 펴고, 산을 뚫고 벽을 쌓는 것은 아니겠지? 태풍 루사는 동해안만 막대한 피해를 줬지만, 앞으로는 한반도 전역에 그와 같은 태풍이 올 수도 있다.

실제로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슈퍼태풍, 집중폭우 등 그동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기상 발생 조건이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 2002년 태풍 루사 내습시 강릉지역에 하루 동안 내린 870mm 강수량을 다르게 표현하면, 흐르지도 스며들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87cm의 물이 지표면에 고인다는 뜻이다.

지금의 4대강 사업이 2002년 태풍이, 즉 자연이 찾은 그 물길 찾기 사업이었으면 한다. "200년 빈도 이상 홍수" 대비 등과 같은 허망한 목적을 내세우지 말고, 자연에 대한 겸허한 자세로 자연을 읽으며,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지금까지 산업화의 미명 아래 파괴된 4대강을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그때로 돌아가는 사업이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강물이 도시를 가로질러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할 것이고, 농경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삶의 터전을 짓밟을 것이다. 고인 물은 썩어 한민족의 젖줄은 죽을 것이다. 그때서야, "맞아 옛날 그 물길이야. 강물이 자신의 길을 찾았어. 기억나 그 물길. 4대강 사업 이전의 물길"이라고 한탄해 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4대강#가이아#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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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과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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