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으로 자전거여행을 떠났다. 한동안 꽃샘추위에 시달리다, 요 며칠 이제 겨우 봄이다 싶은 따뜻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일 년 내 며칠 되지 않는 자전거 타기 참 좋은 날들이다. 때를 놓칠 수 없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침 창밖으로 올려다 본 하늘이 온통 뿌옇다. 황사인지 안개인지 알 수 없다.
꽃샘추위에 황사에, 봄 날씨 즐기기가 한여름 장마철 피해서 휴가 떠나기보다 어렵다. 하지만 이런 날 저런 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몸을 사리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애초 계획했던 대로, 과감하게 자전거를 끌고 문 밖으로 나선다. 가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되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결국엔 뿌연 먼지 구덩이 속을 헤치고 소요산역에서 포천을 거쳐 철원의 '고석정'까지 가게 됐다.
마스크 대용으로 버프를 써서 입을 가렸다. 종잇장보다 조금 더 두터운 버프 한 장으로 얼마나 많은 먼지를 걸러낼 수 있을까마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 시내를 주행하는 것보다는 목이 덜 아팠으니 말이다. 봄이 올 때마다 매번 황사로 난리법석을 치고는 하는데, 사실 우리에겐 아침저녁 일상적으로 들이마시는 자동차 매연이 몸에 더 해롭다.
지축을 울리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탱크가 우르르서울 집을 나설 때, 잠시 잠깐 철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까 고민했다. 서울에서 철원까지 약 100km. 한나절 열심히 달리면 못 갈 것도 없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아무래도 장거리여행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 일정 구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건너뛰기로 했다. 그래서 소요산역까지 1호선 전철을 타고 갔다.
소요산역에서 철원까지 '지척'이다. 약 30, 40km를 더 가면 된다. 100km를 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짧은 거리다. 소요산역에서 철원까지, 전체적으로 보면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중간 중간 생각 외로 다리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평지인 듯 보이는 길이 실상은 아주 낮은 언덕일 경우가 많다.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길이기 때문에 공연히 서둘러 페달을 밟지 않는 게 좋다. 그렇게 급하게 갈 이유도 없다. 주변 풍경에 시선을 돌리면, 자연히 속도를 늦추게 되어 있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묘미 중에 하나가 틈틈이 쉬었다 가는 데 있다. 연료나 주차 고민 없이, 시선이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내 마음껏 천천히 쉬었다 가는 즐거움이 있다.
군사분계선이 가까워지다 보니, 여기저기서 '군인'들과 마주친다. 길가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을 물론이고, 도로 위로 탱크나 장갑차가 지나가는 걸 보게 될 때도 있다. 지축을 울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다보니, 탱크가 줄을 지어 달려오는 광경이 펼쳐진다. 대형 차량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탱크 같은 경우 특히 차폭이 커서 더 위험하다. 이런 무기들이 도로를 지나갈 때는 잠시 차선 밖으로 벗어나 가만히 서 있는 게 좋다. 그 바람에 자전거에서 내려 쉬었다 가는 일이 점점 더 빈번해진다.
철원에 들어서면서 조금 길을 헤맨다. 도로 위에 서 있는 고석정 표지판을 따라 가는데 이게 영 미덥지 않다. 갈림길이 나오면, 표지판도 함께 따라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곳이 너무 많다. 철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관광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식당에 가면 흔히 구할 수 있는 여행지도도 이곳에서는 흔치 않은 물건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것저것 미리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게 상책이다.
동송읍을 지나 어찌 어찌해서 겨우 찾아간 길에 '직탕폭포' 안내판이 보인다. 직탕폭포에서 고석정까지 한탄강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도로가 깔려 있다고 했으니 그때부터는 안심이다. 직탕폭포에 가닿기 전에 강원도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평야지대를 지난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가득 채운 논이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퍼져 있다. '오대쌀'로 유명한 철원평야다.
구멍뚫린 검은 돌, 현무암 투성이 땅이 만든 비경 여행을 하면서 이 평야지대를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는 게, 바로 한탄강이 이 지대를 가로질러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한탄강은 평야 아래로 깊게 가라앉아 흐른다. 현무암으로 덮여 있는 평야를 깊게 파고들어가 마치 땅 아래를 흐르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의 현무암지대는 약 3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북한 땅이 된 평강면의 오리산(압산)에서 엄청난 양의 용암이 분출하면서 이 일대에 거대한 평야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위로 오랜 세월에 걸쳐 한 줄기 물이 흐르면서, 용암이 굳어서 된 현무암을 쉼 없이 깎아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강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이 일대에 한반도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협곡을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은 마치 강이 어느 날 갑자기 그대로 땅 밑으로 푹 꺼져 들어간 듯한 모양새를 하고 됐다. 강 양 편으로 늘어선 거대한 현무암 절벽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이렇게 넓은 평야에 이처럼 깊은 협곡이 생기게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직탕폭포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하고 있다. 폭포수가 높은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넓게 퍼져 떨어지는 형상이다. 어찌된 일인지 이곳에서는 판판해 보이는 강바닥 전체가 갑자기 2,3m 아래로 푹 꺼져 있다. 그 바람에 그 이전까지만 해도 잔잔히 흐르던 강물이 직탕폭포를 만나서는 아래로 세차게 떨어져 내린다.
사람들이 이 폭포를 보고 미국의 나이아가라폭포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크기 면에서 비교도 안 되는 것이긴 하지만, 형태만큼은 서로 꽤 유사한 데가 있다. 철원의 직탕폭포가 신기하다고 해서 직접 와서 본 사람들이 그 규모를 보고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폭포 가까이 다가서면, 강물이 한순간 일제히 80m 폭으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이 그렇게 작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자전거여행보다는 도보여행에 더 적합한 길과 풍경이곳의 자전거도로(산책로 겸)는 직탕폭포로 내려가기 전 한탄강의 오른쪽 절벽 위를 지나간다. 자전거도로 전 구간이 대부분 절벽에 가까이 붙어 있어 협곡 사이로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광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절벽 아래 강 언저리에 하얗게 드러난 바위들은 화강암이다. 이 바위들은 이 땅이 용암으로 뒤덮이기 전의 속살이라고 할 수 있다. 뼈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탄강은 검은 절벽 아래 낮게 흐르는 강이 어딘가 모르게 깊은 한이 서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곳곳에 어두운 빛이 스며들어 있다. 물론 한탄강의 한자어 뜻은 '한어린 탄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을 느끼는 건 이 지역이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은 격전지 중에 하나인 탓일 것이다.
자전거도로 중간 중간 쉼터와 전망대가 있다. 깊은 협곡 사이를 흘러온, 한탄강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다. 자전거도로는 직탕폭포에서 고석정을 지나 승일교까지 약 5km에 불과하다. 매우 짧은 거리다. 하지만 그 사이 그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수십만 년 까마득히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온 것만큼이나 길게 이어진다. 아무리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해도 간단히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다. 그러니 이 길 위에서는 최대한 천천히, 속도를 억제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조용히 걸어서 지나갈 것을 권한다.
고석정에서 만나게 되는 협곡은 제주도의 안덕계곡을 떠올린다. 안덕계곡에 들어섰을 때 칼로 네모나게 도려낸 것과도 같은 땅 속에 들어앉아 마치 거대한 덫에라도 빠진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는 그런 검고 어두운 계곡이 화산섬인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다. 고석정유원지라고 쓰인 철제 아치를 지나 현무암 계단을 내려가면, 협곡 안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강 언저리에 발을 디딜 수 있다.
강물처럼 흐르는 역사, 전설로 남은 의적 임꺽정고석정은 신라 시대에 지어진 정자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대신 협곡 안쪽 강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 길 중간에 고석루라는 정자가 서 있는데, 사람들은 고석정이 예전에는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 중에는 더러 그 정자가 협곡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20여m 높이 고석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고석정에 특이한 모양을 한 바위가 여러 개다. 고석정 강가에서 유람선이 뜨는데, 그 배를 타면 절벽 아래로 다가가 그 바위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이곳은 래프팅 장소로도 유명하다. 상류쪽 직탕폭포나 승일교에서 보트를 탄 사람들이 고석정을 지나 순담계곡까지 배를 저어간다. 머리 위로 높이 솟은 시커먼 현무암 절벽 사이, 거칠게 흐르는 강물 위를 가랑잎만큼이나 작고 가벼운 배를 타고 지나가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고석정은 임꺽정과 관련한 이야기로도 꽤 잘 알려진 곳이다. 임꺽정은 조선 중기 경기도와 황해도, 강원도 등지에서 활동했다. 이곳 철원에서는 고석정이 있던 곳 한탄강 건너편에 성을 쌓고 은거하다가 철원 땅을 지나 한양으로 들어가던 공물을 탈취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에 나누어주었다고 전해진다.
고석정유원지 광장에 칼 한 자루를 등에 비껴 멘 임꺽정 동상이 세워져 있다. 임꺽정이 땅 위에 버티고 서서 양 옆으로 팔을 뻗어 좌우에 서 있는 두 개의 돌기둥을 있는 힘껏 밀어내고 있다. 지배계급의 억압과 신분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런데 그 돌기둥이 한쪽만 무너진 형상을 하고 있다. 아마도 임꺽정이 살아서 제 뜻을 다 이루지 못한 걸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고석정에는 임꺽정과 관련해 홍길동 뺨치는 믿기 어려운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한 도적이 전설로 남았다는 건, 사실 그 도적이 출몰하던 시절엔 도적 아닌 자가 더 도적 같았다는 걸 의미한다. 고석정이라는 이름의 양반들 놀이터가 사라진 곳에 그 양반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다니던 한 도적의 동상이 서 있는 광경이 의미심장하다.
고석정에서 여행을 마무리한 뒤, 동송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곳에서는 수유리, 동서울, 강남 등지를 오고 가는 다양한 버스 노선이 있다. 덧붙여, 수유리를 오가는 버스에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다. 고속버스에 있기 마련인 그 흔한 짐칸이 없다.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버스로 교체하면서 짐칸에 가스통을 적재한 탓이다. 그 버스를 타면서 맨 앞좌석 좁은 공간에 자전거(접이식 미니벨로)를 겨우 실었다. 버스 기사와 그 좌석에 앉아 있던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