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구제역이 휩쓸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요즘 한우를 키우는 축산농가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경매단가 고기값에 계속해서 오를 예정인 사료 값만 생각하면 많은 농가들이 차라리 그때 소를 묻었더라면 이런 근심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때는 어떡하든 소를 지키고 싶었고 살아남고 싶었던 건 구제역이 끝나면 소 값이 그 당시 보다는 오를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은 자기 재산을 지키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무너지고 그 누구 하나 책임도 없이 끝까지 구제역파동 책임을 축산농가에 떠넘기고 앞으로도 축산선진화방안으로 행정규제로 축산농가들을 옥죄는 국가정책 입안자들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 실정이다.
얼어붙은 땅속에 혹은 집 마당에 애지중지 키우던 소들을 돼지들을 묻은 축산농가들도 요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빈 축사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소를 사자니 앞날이 걱정이다. 그나마 돈이라도 빨리 나와야할텐대 구제역 보상금으로 예정된 지급일이 차일 피일 미루어지고 현시가보상이란 말들이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출생일에 맞혀 지금은 제대로 맞지도 않는 지난시대의 축산시험장 표준체중대로 보상가를 하겠다는 정부방침이 그렇거니와 번식우같은 경우에는 수의사보증의 임신감정서가 없는 경우에는 임신보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보상팀 공무원들이 흘리는 말들에 극도로 혼란스런 날들을 보내는 것이다.
축협 인공수정사의 수정증명서와 함께 엄연히 존재하는 축협 전산망에 있는 인공수정기록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원칙이라면 도대체 국가행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정부보상기준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닭이나 돼지같은 경우에도 정부가 공무원들의 확인서까지 믿지 않는다면 도대체 정부는 누구를 대신해 행정을 하겠다는 것인지 한심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도끼자루 옆에 놓고 요강뚜껑으로 물 떠먹으라는 행정이 아닌가 심히 의심스럽다.
생계안정자금지원에도 애시당초 한 마디 말도 없이 있다가 재 입식 허용일까지 잔액을 지급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축산농가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내가 받을 돈은 1천 4백만원이었는데 220여만원이 깍인것이다. 재입식 허가일이 180일 이내로 하루 7만원씩 한달 가량이 깍였다는 것이다.약속했던 금액에서 삭감하는 이 같은 정부정책은 국가정책에 협조하려는 대다수 선량한 농가들을 우롱하는 경우이며 약속을 위반하는 기만행위이다. 축사 청소하고 소독한 것이 앞날의 희망을 찾는 경우라면 정부시책에 맞쳐 입식준비를 하던 농가들이 만약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누가 입식허가를 서둘렀겠는가.
그 무엇도 아닌 돈이 깍인 다면. 부지런한 놈 얼굴에 똥 뿌리는 격 아닌가. 아무리 현실이 뭐 같아도 현실을 토대로 지난 사실을 재구성 할 수는 없다. 그 같은 행위는 시정잡배나 할 일이요 일개 모리배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아무리 4대강이나 여러 정책등에 국가예산이 부족하더라도 그 부족분을 아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예비비를 확충해서라도 피눈물을 흘리며 실의에 빠졌던 구제역 매몰 농가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책임이라 할 것이다.
거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돈 2백이나 3백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한달 월급이다. 요즘 같으면 소 한 마리 값이다. 과부사정 과부가 안다고 구제역으로 매몰 처리된 착유농가들은 오죽하면 거리로 출근을 하겠는가. 그런데 나 같은 경우 억울하게도 구제역 음성판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순순히 깍여진 생계안정자금지원서류에 도장을 찍은 것은 소심한 내가 국가를 상대로 싸울 수 없다는 자격지심과 소까지 묻은 놈이 돈 몇 푼에 지랄한다는 애기를 공무원들에게 듣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계안정자금은 그야말로 희망을 잃지 말라는 위로금이자 격려금이다. 소를 입식해서 단기간에 소득을 창출하기란 쉽지 않음을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 것이다. 그저 어이가 없고 기가 찰 노릇이다. 생계안정자금이 이러 할진대 보상금이 대폭 깍이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하랴.
우리 속담에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다. 이는 포클레인을 들이대며 매몰처분을 권유하며 농심을 위로하던 축산과장의 다정한 말이 그때와 지금의 상황과 같다. 만약 보상금이 그 당시 시장가격과 맞지 않는 경우와 지금의 시세를 반영한 결과라면 앞으로 그 누가 국가정책에 믿음을 갖고 따를 것이며 축산농민들은 누구를 믿고 이땅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지 심히 걱정되는 것이다.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하다는 게 공무원들의 습성이라지만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고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아쉽다. 정부시책이 이러니 따를 수밖에 없다는 보상팀 공무원의 말과 재 입식을 하면 그날부터 어쨌든 소득이 발생할 거 아니냐는 어느 축산과 공무원의 말에 의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약속된 생계안정자금이 이럴진대 억울함이 어디 한 둘 일까하는 노파심이다. 그러면 안된다.
따뜻한 위로의 손짓은 그것은 이 땅의 소외된 농촌을 지키는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이지 않은가. 돈 없으면 못사는 세상 돈이 뭔지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어리석지만 이런 글을 쓰게 만드는 현정부 시책에 분노를 느끼는 바이다. 책임이 없는 행정은 언젠가는 타락하고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동네 후배는 말한다. 형이 아직도 배부른가봐. 나 같으면 낫 들고 깽판치지 가만 안나둬!. 그는 억대에 달하는 사료 값에 추락하는 한우 값에 한숨지으며 웃으며 말했다. 나이 마흔이 가깝도록 결혼도 못한 그를 보며 나도 웃고 말았다. 채만식의 단편소설 <논 이야기>는 국가가 농민 피 빨아 먹은 것 밖에 더 있냐며 끝을 맺는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농심이 뭐냐면 라면만드는 회사아니냐는 뭣 같은 세상. 그래도 농촌을 지키는 건 땅 가진 죄요 농협에 빚진 죄이다. 늙어가며 한 살 한 살 나이 먹으며.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 할 거 있냐 . 농사나 짓자. 소나 키우자.
이슬이 내린다 .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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