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파트의 옆방에 세 들어 살면서 평소 우편물을 대신 받아준 세입자는 납세고지서 수령권한도 위임받았다고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59, 여)씨는 1996년 11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살다가 울산으로 이사하면서 고교 1학년인 큰딸과 중학생이던 작은딸의 학업을 위해 S씨 소유의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 아파트 방 3개 중 1개를 임차해 기존 학교에 다니게 했다.
A씨는 딸들과 함께 이곳으로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했고, 두 딸은 그 무렵부터 이 아파트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무당국은 1999년 1월 A씨가 어머니로부터 증여받은 부동산에 대해 1억 1600만원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납세고지서를 A씨의 신정동 주소지로 보냈다. 그러나 A씨는 주소지만 딸들과 함께 했을 뿐 실제로는 울산에서 남편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이 납세고지서는 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1995년 4월부터 방 한 칸을 임차해 함께 거주하는 P씨가 대신 수령했다. P씨는 당시 우편물배달증명서에 자신을 '동거인'이라고 기재했다. P씨는 평소 낮에 자신이 수령한 우편물은 A씨의 딸들이 거주하는 방 문 앞에 두기도 했다.
세무당국은 A씨가 증여세를 내지 않자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 A씨의 예금 등을 추심했고, A씨는 "납세고지서가 적법하게 송달되지 않았으므로 과세처분은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민사99단독 이남균 판사는 2010년 4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판사는 "P씨와 원고의 두 딸은 1996년경부터 아파트에서 거주해 오고 있었던 점, P씨는 우편물을 수령해 원고의 두 딸이 거주하는 방 문 앞에 놓아두기도 했던 점, 이에 대해 원고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 납세고지서 우송 당시 원고의 두 딸의 연령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원고는 P씨에게 우편물 기타 서류의 수령권한을 묵시적으로 위임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결국 납세고지서의 송달은 적법하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항소심 "적법한 납세고지 없이 이루어진 당연무효"반면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8민사부(재판장 김정학 부장판사)는 지난 2010년 11월 원고 패소 판결한 1심 판단을 뒤집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가 납세고지서를 발송할 당시 원고의 큰딸이 수능시험을 마친 후 두 딸 모두 겨울방학을 맞아 부모가 거주하는 울산에 내려가는 바람에 원고의 딸들도 이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은 사실, 결국 납세고지서를 수령한 P씨가 이를 원고에게 전달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P씨가 원고의 동거인이라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으므로 이 사건 부과처분은 적법한 납세고지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당연무효"라고 판단했다.
또 "이에 대해 피고는 원고나 그 딸들이 P씨에게 우편물에 관한 수령권한을 묵시적으로 위임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나, P씨가 2년 이상 원고의 딸들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안 가끔 우편물을 수령해 원고의 딸들이 거주하는 방 앞에 놓아두기도 했던 점만으로는 P씨가 원고로부터 우편물 수령권한을 묵시적으로 위임받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무효인 이 사건 부과처분에 터잡아 추심한 부당이득을 반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 "원심은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라" 파기환송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납세고지서를 송달받지 못했으므로 추심해간 세금을 돌려 달라"며 A(59, 여)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 상고심(2010다108876)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두 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원고가 전입신고만 했을 뿐 실제로는 울산에서 거주한 사실, 옆방 세입자인 P씨는 납세고지서를 수령하면서 우편물배달증명서에 자신을 동거인이라고 기재한 사실, P씨는 평소 원고에게 온 우편물을 대신 수령해 두 딸들이 거주하는 방문 앞에 놓아온 사실 등을 종합하면, 원고는 납세고지서 등의 수령권한을 P씨에게 묵시적으로 위임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P씨가 2년 이상 원고의 딸들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안 가끔 우편물을 수령해 딸들이 거주하는 방 앞에 놓아둔 점만으로는 P씨가 원고로부터 우편물 수령권한을 묵시적으로 위임받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봐, 이 사건 과세처분은 적법한 납세고지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송달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당연무효라고 판단했으니, 이런 원심 판결은 국세기본법이 규정하는 납세고지서의 송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