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1박 2일은 새로운 방식의 미션 수행을 선보였다. 두 팀으로 나누어 30분 마다 제공되는 미션 수행을 통해 목적지를 알아가는 것이었는데 어느 추격전 보다 더 스릴 있고 거기에 재미까지 더했다. 먼저 도착한 팀에게 주어지는 상은 '2명 조기 퇴근'
역전에 역전 끝에 목적지 청양 천문대에 먼저 도착한 팀은 강호동-이수근-김종민 팀이 되었고 조기 퇴근의 행운도 그 팀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카메라에 익숙해진 그들은 쉽사리 2명을 고르지 못하고 한참이나 망설이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유부남 강호동과 이수근이 조기 퇴근의 행운을 잡고 천문대를 내려왔다.
그렇게 남은 이승기-은지원-엄태웅-김종민의 4명은 '강심장'에서 MC를 맡고 있는 이승기의 진행으로 잠자리 복불복도 나름 순탄하고 재미있게 이어나갔다. 그 때 나영석 PD에게 강호동의 매니저가 연락을 했고 그 내용은 '조기 퇴근을 하고 내려간 두명이 지금까지 청양 읍내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나 책임감 등을 보았을 때 자신들이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함으로 청양읍 조차 쉽게 떠나지 못한 것이 이해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웃기고 한편으로는 조기 퇴근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갈등이었을까 싶었다.
결국 나영석 PD와 남은 출연자들은 강호동과 이수근이 자존심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데리러 간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 한 방에서 양쪽 벽에 붙어 자고 있던 둘은 갑자기 들이닥친 출연자들을 보고 그야말로 깜짝 놀란다. 어안이 벙벙한 그 둘의 모습은 초라해 보이기 까지 했는데, 그들에게 방송이라는 것은 더이상 의무나 돈벌이로서의 직업이 아닌 일상 그 자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때 자신들도 동생들이 걱정되어 언제 기습할까 고민을 했다는 강호동에게 나영석 PD는 "부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함께 가길 권유한다.
나는 나영석 PD가 참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치열한 경쟁을 뚫고 PD가 되고,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서 현명하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현명하다는 말은 단순히 센스가 있다거나 똑똑하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내가 여기서 나 PD를 현명하다고 한 이유는, 상대의 마음을 읽고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기를 내려놓는 그 자세 때문이다.
얼마 전 이승기가 나PD를 흉내내면서 나PD가 잘하는 말들을 죽 한 적이 있다. 그 중에 "여러분들 다 가능하시잖아요~, 여러분들 가능성을 다 보고 말씀드리는 건데"라는 말이 있었다. 좋은 PD란 저렇게 출연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서 프로그램을 위해 출연자들의 기분을 상황에 맞게 다독이는 PD가 아닐까.
지난 방송에서도 그동안 방송에서 보였던 나PD의 모습처럼 룰rule을 중시하고 룰을 변경할 때에는 어려운 미션을 주어 재미를 끌어내는 모습을 고수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지난 5년간의 강호동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먼저 다가가 "정중히 부탁"을 했다. 강호동 역시 그 '부탁'이라는 말에 나PD의 내민 손을 잡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평소처럼 방송을 함께 했다.
요새 점차 사용을 꺼리는 말 중에 하나가 '부탁'이 아닐까 한다. '부탁'을 '명령'에 상대적인 반대 개념이라 여겨서 부탁이라 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강한 사람에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심하게는 '구걸'하는 것으로 까지 여겨서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부탁은 하지 않겠다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부탁을 해서 같이 사느니 차라리 나혼자 죽는게 낫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에는 특히 더 부탁을 하기 위해서는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탁은 그렇게 약자가 강자에게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단순히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탁에 대한 대가는 부탁한 사람이 부탁의 정도나 자신의 처지에 따라 내용이나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부탁을 받은 경우는 자신의 처지나 능력에 따라 들어줄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지 그 부탁을 빌미로 약점을 삼는다거나 무리한 요구를 한다거나 해서 부탁한 사람을 부하로 여기거나 약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탁을 많이 하고 부탁도 많이 받는다. 또 들어주는 경우도 많고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있어서 부탁을 하면서 비굴해 하거나 부탁을 들어주면서 우쭐해 하거나, 들어주면서 큰 댓가를 바라거나 거절하면서 큰 부담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하고 받는 부탁들이 거액을 필요로 하는 것이나 담보나 생명에 영향을 주거나 하는 등의 큰 일이 아니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중요하고 큰 부탁일 수록 현명하게 하고 현명하게 받고, 현명하게 들어주고 현명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턱대고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부탁을 하거나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 부탁을 들어주거나 자존심을 굽히지 못해 부탁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현명한 것이 아니다.
나영석 PD가 프로그램을 위해, 강호동과 이수근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먼저 손을 내밀어 부탁을 한 것처럼, 그래서 그들의 말대로 '남자의 체면을 살'린 것처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부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