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부 공동 조사하겠다고 한다. 전문가·민간인도 참여해서. 그런데 오늘 회의하면서 환경운동단체에 물어보니까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짝퉁·관변·어용 단체 동원해서 무늬만 민관 공동조사단 만들어 국민을 속이려는 것 아닌가."
23일 오후,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의 목소리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미 대사관을 향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주한미군 고엽제 매립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대표는 "대충 눈가림 조사만 하다가 한미 공동으로 고엽제 매립 범죄를 매립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기자회견에는 한국진보연대뿐만 아니라 참여연대·녹색연합·환경운동연합·언론노동조합·민주노총·평화재향군인회·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 고엽제 매립 진상조사에 환경단체, 시민·사회단체, 야당이 추천하는 전문가, 피해지역 주민 등을 포함시킬 것 ▲ 모든 미군기지에 대한 환경조사에 즉각 착수할 것 ▲ 피해지역 주민들에 대한 건강역학조사를 실시할 것 등을 주장했다.
"미군 범죄 묵살, 고엽제 문제는 안 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석운 대표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 공동조사단'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나타냈다. 최사목 평화재향군인회 대표는 "해방 이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저지른 범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범죄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한국 정부는) 조사하는 척하다가 그냥 넘어갔고, 모든 범죄는 묵살되었다. 미선이·효순이 사건만 해도 우물우물하다가 그냥 넘어간 지 9년 지났다"며 "고엽제 문제는 확실히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대표는 "(매립된 고엽제가) 과연 드럼통 600여 개밖에 안 되는지, 다른 지역에 또 비밀리에 묻혀 있진 않은지, (고엽제가) 미국 본토에서 왔는지, 월남에서 왔는지,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파헤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불평등한 SOFA(한미 주둔군 지위협정)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고엽제 매립'을 "천인공노할 범죄,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범죄"라고 규정한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은 "주한미군 범죄가 5000만 국민을 속이고 진행될 수 있었던 건 불평등한 SOFA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SOFA 개정을 촉구했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팀장 역시 "반환 미군기지를 치유하는데 미군은 단 1달러도 안 쓴다, 모든 지자체가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며 "한국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SOFA 환경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이날 오전 미 대사관 앞에서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녹색연합·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국정부에 고엽제 불법매립을 사과하고 한국 환경당국의 조사활동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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