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세 88세이신 모친께서 2009년 6월초 폐암 말기 진단을 받기 직전까지 우리 집의 모든 살림을 노친이 관장하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매월의 생활비를 노친께 드렸지요. 또 2005년 말 아내와 사별한 후 혼자가 된 동생도 두 아이를 큰집에 맡겨놓고 자신도 퇴근 후 저녁을 큰집에 와서 먹으니 일정 금액을 어머니께 드리곤 했습니다.
노친은 두 아들에게서 받는 생활비로 매월 적금도 치르고, 손자손녀들에게 용돈도 주시고, 적은 금액이나마 손쓰고 싶은 곳에 손도 쓰시고 했지요. 손수 시장에 가시어 음식거리들을 장만하시는 일은 거의 매일의 고정 일과였습니다.
그러다가 노친께서 병상생활을 하시게 된 이후로는 손을 놓게 되었는데, 병을 이기고 퇴원하신 후에도 생활비 관장에는 손을 저으시지만, 이런저런 조언과 지시를 하곤 합니다. 노친의 지시에 따라 시장 보는 일이 때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 집 살림에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 때에 맞춰 소용거리들을 꿰뚫고 계시는 노인네의 지혜와 안목에 탄복도 하고 감사하곤 합니다.
옛날 한때는 매월 25만원으로 생활을 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보증 빚'이라는 덫에 걸려들어 매월 수백만 원씩 빚잔치를 하던 시절이었지요. 당시 유치원생이던 아들 녀석이 "왜 우리 집은 매일 김치 한가지와 조기새끼만 먹어?"라고 물은 적도 있었지요. 그런 어려운 시절에도 노인의 지혜로 이런저런 덕을 많이 보고 살았답니다.
지금 노친은 손수 시장에도 가지 못하고 레지오 활동도 못하며 집안에서만 소일하지만, 집안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고 집 밖의 정보들도 많이 공유하고 계십니다. 노친은 집에서 TV만 보지 않습니다. 본당 주보와 교구 주보를 꼼꼼히 다 읽고,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내 글들을 세심하게 읽으십니다. 때로는 인터넷 글들도 읽으십니다.
우리 집에서 우리 부부만 알고 있는 집안일은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가정의 소소한 일들도 모두 노친께 알려드리고 의논을 합니다. 노친이 모르고 있는 가정사와 가족 관련 일이 하나도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는 식사 자리라든가, 외출 후 귀가할 때는 노친께 충실히 '보고'를 하고 정보를 드리곤 합니다.
노친은 내가 지난해 11월 이후 매주 월요일 저녁 서울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여하는 사실도 처음부터 아셨는데, 한때는 걱정도 하고 이해를 못하셨지만, 그 미사에 참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 '가슴 구조'도 이제는 잘 이해해주고 계십니다.
성모의 달이며 가정의 달인 5월을 지내며 이 글이 노친께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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