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권 작가의 캐리커처와 함께 연재하는 '신인물열뎐'은 독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인터넷 만인보'로 꾸려갈 예정입니다. 어떤 일의 중심에 있거나 화제가 되는 인물에 대한 비화나 에피소드를 통해 그 사람의 '진면목'이나 일반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면모가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적극적인 제보와 참여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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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는 한나라당 소속 4선 국회의원(인천 연수구)이다. 그는 4·27 재보선 패배 이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임기 1년의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또한 안상수 대표최고위원의 사퇴에 따라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까지 겸하고 있다.
이런 정치지도자를 칼럼에 '우려되는 황우여'라고 명토박아 비판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김진의 시시각각'이라는 문패를 달고 칼럼을 쓰는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의 5월 30일자 칼럼 말이다.
칼럼에서 김진의 시계는 1997년 대통령선거에 멈춰져 있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측근이었던 황우여가 '결단'을 못해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진이 말한 '결단'이란 당시 한나라당 전국구 예비후보 0순위였던 박찬종 고문이 원내 입성을 원해 '이회창 몫'으로 전국구 의원이 된 황우여에게 요청한 '의원직 사퇴'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가 사퇴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결국 박찬종이 이인제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가버린 통에 이회창 후보가 39만 표 차이로 져 보수-우파가 50년 만에 정권을 내주었다는 가설이다. 여기까지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설적 부채' 운운하며 그를 '가설적 죄인'으로 몰아간 것은 혼자 보기 아까운 가관이다.
"국회의원이 됐다면 박찬종 고문이 탈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선대위원장으로 부산·경남을 돌며 '이회창'을 외쳤다면 수십만 표를 모았을 것이다. 황 의원이 의원직을 고수하는 바람에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 그래서 황우여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가설적 부채'를 지고 있는 셈이다. 많은 보수·우파는 진보·좌파 10년 집권이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들에게 황우여는 채무자를 넘어 '가설적 죄인'이다."
박찬종의 의원직 요청이 사실임을 전제하면, 이회창에 전국구를 요구했다 반응이 없자 이인제로 말을 갈아탄 박찬종은 부도덕하다. 그리고 그런 부도덕한 거래가 오간 사실을 알고서도 사실을 기록하지 않은 김진 정치전문기자 역시 '역사의 죄인'이다.
1997년 정권교체를 '해묵은 남 탓'으로 돌린 것만으로는 모자란 것일까. 김진은 '우려되는 황우여'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찾은 '황우여의 눈'까지 탓하고 '역사적 채무자' 운운하며 겁박했다. 아무래도 '김진의 눈'에는 황우여가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20일 봉하마을에서 기자들에게 '노 전 대통령은 소탈하고 서민적이었으며 불의에 진노한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중략) 노무현은 보수·우파가 중심이 된 한국의 현대사를 '불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규정했었다. 그렇다면 황우여의 눈은 노무현의 눈과 같단 말인가. (중략) 중도의 표가 좀 필요하다고 한나라당 지도자가 역사를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 황 대표는 자신이 보수·우파에 역사적 채무자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명분과 실리' 모두 취한 '어당팔'의 뚝심
그의 행보를 우려하는 건 김진만이 아니다. '친이'(이명박)계는 물론 청와대와 대립각도 불사하겠다는 그가 박근혜 전 대표를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로 만나 당헌 개정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자, 이번엔 '친몽'(정몽준)계인 전여옥까지 나서 "황 원내대표는 박 전 대표의 '원내대표격'인 의원이냐"며 "한나라당의 대표대행이자 원내대표로서 체통을 지켜주시라"고 비꼬지 않았던가.
그러나 웬걸? '어수룩한 게 당수가 8단'이라는 뜻의 '어당팔'답게 그는 '우국 남매'를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어떤 격식도 제 머릿속에는 없다"는 말로 전여옥을 뭉개더니, 김진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바로 그날,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6월 임시국회 개회협상에서 현 정부에 부담될 수밖에 없는 저축은행 국정조사와 대학등록금 부담완화의 입법화에 전격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북한인권법의 법사위 상정'을 관철시켰다. 대학등록금 완화는 정부가 반대하고, 북한인권법은 야당의 반대로 6년 동안 법사위 상정조차 못 한 사안이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 '당은 청와대의 거수기가 아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한 셈이다. '어당팔의 뚝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등록금 부담완화'는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반값 등록금' 정책의 '짝퉁' 성격이 짙다. 한나라당에서는 '표퓰리즘'이니, '야당 따라가기'니 하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겠다"면서 "내가 생각한 페이스대로 갈 것"이라며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였다. 야당이 좋은 '구슬 서 말'의 '저작권'을 갖고 있어도, 그걸 꿰어서 보배로 만드는 것은 집권당의 '힘'이라는 정치의 생리를 알고 있단 얘기다.
전병헌 전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누가 먼저 들고 나왔느냐 따지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전제하고 "청년들과 부모님들에겐 '부모님 등골 빠지게 하는 등록금'을 언제 얼마나 빨리 제자리로 돌려놓느냐 만이 관심사일 것"이라며 "한나라당 신임 지도부가 반값등록금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사실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고 환영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황 원내대표는 31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전날의 대학등록금 시위와 관련 "합법적 시위를 해야 하지만 오죽하면 학생들이 거리에 나섰겠느냐"고 당국의 선처를 호소하는 소신 행보를 이어나갔다.
온화한 경청가지만 한번 결정하면 끝을 보는 스타일
황 원내대표의 이런 '뚝심'은 소명의식이 강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그의 정체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지역구인 인천시 연수구의 '연수중앙교회' 장로로, 국회 조찬기도회 회장도 맡고 있다.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은 개신교 장로인 집권당 다선 의원이 국회의원 4년 임기 동안 맡는 게 관행인데, 그전에도 부회장을 4년 동안 맡은 바 있다.
국가조찬기도회 사무총장으로서 황 대표를 8년 동안 겪어본 장헌일 명지대 객원교수는 "의견을 충분히 듣는 온화한 경청가여서 다소 답답하고 진도가 더디다고 느낄 수 있으나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관철시키는 스타일"이며 "합리성과 함께 소외된 약자에 대한 배려의 품성을 가진 분으로 북한인권법에 강한 애착을 가진 것도 그런 품성 탓"이라며 계파를 초월한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특히 '민주당 기독신우회' 회장 출신의 김진표 원내대표가 황 대표의 카운터파트인 점에 주목했다.
"두 분이 모두 장로이기 때문에 적어도 공의와 정의 그리고 평화와 관련된 의정에서는 전부 합의를 하실 것이다. 두 분의 조합을 보면, 하나님께서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뢰의 정치'를 복원할 기회를 주신 것 같다."
이쯤 되면 황우여-김진표 조합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타협의 정치'를 복원한 전임 김무성-박지원 원내대표를 능가하는 '짝패'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온다.
"민심을 떠받드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 야당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황우여의 원내대표 취임일성은 이랬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정치적 수사'로 흘려들었지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전광석화처럼 6월 임시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해 취임일성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보여줬다. 그는 취임 당시 '추진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고 보시라. 이 말만 하겠다."
'두고 보시라'를 달리 표현하면, 이런 게 아닐까. '나 '어당팔'이야, 걱정도 팔자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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