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의 숭배와 존경의 마음이 발기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착하고 순수한줄 알았던 애인이 바보로 보일 때가 있다. 바보하고는 성행위 할 수 없다.""여성상위는 여성이 남자 배 위에서 춤을 추니까 조루를 지연시킬 수 있다."
지난 1일 오후 한양대에서 진행된 교양과목 '성의 이해' 수업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내용의 일부다. 1995년부터 올해까지 16년 동안 한양대에서 이 과목을 가르쳐온 김아무개(53) 교수는 이날 봄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발기부전의 원인, 여성 성욕 저하의 원인, 조루 치료법 등에 대해 이와 같이 설명했다. 종종 농담을 섞어가며 진행되는 수업은 학생들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수업 내용의 과학성과 발언 수위에 있어서는 아슬아슬해 보였다.
실제로 김 교수는 이전에 에이즈 증가원인이 동성애자의 증가에 있다고 가르치는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 문제가 돼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김 교수 본인이 쓰고 수업의 주교재로 삼고 있는 <성과학의 이해>는 에이즈의 증가원인을 꼽으면서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매춘부들에 의한 감염이 증가하고 있고, 성문화의 무분별한 개방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성애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2월 한 일간지는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의견을 인용해 "성차별·인종차별·성적소수자 차별 등의 내용이 담겨 있어 대학교 교재로 부적합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3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K 교수의 강의 중단을 촉구하는 사람들' 역시 지난 3월 성명서를 발표해 "HIV/AIDS 및 동성애에 대해 차별적이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트랜스젠더를 '성전환도착자'로 명명하고 성적소수자의 성을 치료되어야 할 이상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강의 교재로서 부적합하다"며 강의 중단을 촉구했다.
김 교수의 교재에는 트랜스젠더를 '이상 성행동' 챕터 내 성전환증(transsexualism)로 규정하고 있고 수업 프리젠테이션(PPT)에서도 이를 '비전통적인 성행위'로 다루면서 성전환 도착자에 대한 개선요법으로 "남자다운 행동의 학습, 말투, 걸음걸이, 여자 나체 사진의 이용, 여자에 대한 관심 유도"라고 제시하고 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지난 3월 발표한 성명서 내 의견서를 통해 "정신의학적으로 성전환자는 성도착이나 비정상적인 정체성이 아니라 성전환을 위한 의료적 조치 과정을 거침으로써 안정적인 정체성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의학적 사실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비과학적인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교수 "성 전환 이상은 내 생각... 교재 내용 바꾸는 건 굴복하는 것"
수업자료에는 이 외에도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인 사진들이 많았다.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가 직접 노출된다거나 남녀의 성행위 영상을 캡처한 사진들이 불필요하게 많이 쓰여 음란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성적인 농담도 잦았다. 이날 강의에도 김 교수는 여성 성욕 저하의 원인은 권태감 때문이라며 "착하고 순수한 줄 알았던 애인이 바보로 보일 때가 있다, 바보하고는 성행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수업 자료를 살펴본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수업 자체를 포괄적인 의미의 환경형 성희롱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상의 내용들과 관련해 김 교수는 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동성애 관련한 부분은 잘못된 게 아니라 빈도가 높다는 것이다"며 "동성애자들이 항문성교를 많이 하므로 에이즈 감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실 동성애에 대해 잘 몰라서 조금만 집어넣었다"고 덧붙였다. 트랜스젠더를 '이상 성행동'으로 분류한 것과 관련해선 "성을 전환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고 밝혔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에 대한 교재 수정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교재 내용을 바꾸는 것은 굴복하는 것이다"라면서도 "물론 일부 내용을 바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해당교재 개정판(2009)에는 학생들의 매매춘에 대한 생각을 인용해 교재에 포함시켜 문제가 됐던 내용은 빠진 상태다.
지난 2월 말 몇몇 일간지에서는 김 교수 강의의 음란성과 성차별적 표현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한겨레>는 "김 박사가 직접 쓴 이 책에는 '성폭력은 남성에게 내재하고 있는 고유한 본능', '(유산은) 성격적으로 미완성인 경우와 독립성이 강하고 욕구불만인 여성에서 나타난다' 등의 황당한 서술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측은 당시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내부 조사를 거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학생들의 의견 수렴과정 등을 거쳐 학사과를 통해 '성의 이해' 과목에 대한 수정·조정 협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보도가 나간 후 학교 측과 학생대의기구 차원에서 아무런 조사와 의견수렴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양대 학사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과목은 교수님의 재량이고 수업내용도 교수님의 자율권이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수업을 모니터링하고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는 없다"고 밝혔다. 심지어 한양대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양성평등센터에서도 "그 부분은 학교 수업계에서 담당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며 답변을 피했다.
총여학생회에서도 "우리가 나서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16년 동안 학생들의 불만이 없었다는 것으로 볼 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언론보도와 성명서 발표 후 우리도 내부회의를 했었다, 우리도 그 교재가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구체적 근거를 가지고 교수님께 교재 시정을 요구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강의 자체를 폐강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못박았다.
언론보도 후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한 쪽은 한양대 총학생회다. 당시 총학은 "이것은 엄연한 교수님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또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사"라며 해당 내용을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사에 사과를 요구했고 학교 측과 논의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총학 측 한 관계자는 1일 전화 인터뷰에서 "학교 측과 딱히 대응방안에 대해서 협의를 하진 않았다"며 "언론사에 사과요청을 했지만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와는 별도로 총학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전화통화를 한 총학 관계자는 "기사, 여성단체가 반박한 내용 자체가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김 교수 수업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어떤 한 학생(수업에 문제 제기를 한 학생)이 카페에 올린 소스 자체가 수업 때 잘 사용하지 않는 교재 내용"이라며 "소스 자체가 잘못된 기사라서 학교 내에서도 대응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교재를 수업 때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총학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프리젠테이션 자료 자체가 수업교재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교수 역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술형 시험문제를 교재에서 내므로 교재내용을 (프리젠테이션에) 거의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교·총학 "수업 제재 권한 없고, 문제 없다"...총여 "교재 시정 요구하겠다"
이 과목은 한양대 교양과목으로 공학대학 학생의 경우 이 과목을 포함한 핵심과목 하나를 이수해야 졸업요건이 충족된다. 2011년 1학기에는 서울캠퍼스와 안산캠퍼스에서 총 800명이 이 과목을 수강했다. 현재 여름계절학기 과목으로도 개설돼 160명 수강정원을 두고 있다.
이번 학기에 이 수업을 수강한 법학과 4학년 유아무개 학생은 "전반적으로 강의 내용에 만족한다"며 "다른 학교에도 개설돼야 한다고 보고 후배들에게도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이 과목을 내리자는 운동은 나의 생존권을 박탈시키자는 것"이라며 "아직까지 학교 쪽에서 아무런 제재도 없었고 학생들이 원하면 4~5년 이상은 더 강의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한양대 <성과 이해> 수업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 카페 운영자인 한양대 4학년 아무개 학생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았고 함께 운동을 전개하려고 한다"며 "인권위 진정도 생각해 지금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단계이고 학교 측에도 정식으로 항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임은 계절학기 동안에도 대자보 활동 등을 펼칠 계획이다.
성명서 발표에 참여했던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일 전화통화에서 "당장 가시화된 계획은 없지만 우리도 지속적으로 연대하고 있다"며 "만약에 향후 대응 계획에 대한 요청이 온다면 함께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역시 "지금 당장 어떤 대응이나 개선점을 찾을 것인지 확실한 의견을 드리긴 어려움 있어서 다시 한 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해 보겠다"며 "만약에 수업이 다시 개설이 되고 전혀 시정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문제제기를 하고 다른 단체들과 함께 행동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