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과 우리금융지주의 합병은 금융에서의 대운하, 4대강 사업이다. 마치 어항 속에 고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 고래는) 어항에 살기도 힘들다. 바다로 나가기에도 너무 어리고, 유치한 고래가 될 수 있다."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한림대 객원교수)의 말이다. 최근 저축은행 부실 사태와 함께 금융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메가뱅크(초대형은행) 논란에 대한 그의 비판은 날카로웠다. 정부가 금융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 중인 은행 대형화 논리는 한마디로 "1970년대식 토건경제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3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메가뱅크, 국민에게 득(得)인가 실(失)인가' 공청회에 참석한 이 전 원장은 정부의 메가뱅크 추진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국내은행이 작기 때문에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KB, 우리, 신한 금융지주의 자산규모는 작년말 기준으로 미국에서 7~8위권에 세계적으로도 60~100위권에 든다"며 "국내 총생산(GDP)과 비교해서도, 국내 은행들은 이미 과다할 정도로 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두고, "우리나라 은행들은 이미 덩치만 큰 어린아이"라고 평가했다.
이동걸 "산업-우리 합병은행이 만약 흔들리면, 한국경제 끝장난다"
이어 '메가뱅크 만들어야 은행산업 발전한다'거나, '원전수주 할 수 있다' 등의 정부 논리에 대해선, "국제 금융시장의 추세를 모르는 정말 1960년대식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산업과 우리금융이 합병하면 은행 기준으로 총 자산만 450조짜리 은행이 되는데, 너무나 크고 위험해진다"면서 "만약 이 합병은행이 잘못되면 우리나라 경제는 끝장난다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김 전 원장은 "원전 수주 등 대형 해외프로젝트에서의 자금조달 문제 역시 단지 국내은행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경험과 네트워크 등 질적인 실력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금융위원회가 최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김 전 원장은 "현 정부가 특정인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법까지 바꾸려 한다는 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그 특정인은 이미 고환율 등 정책실패로 입증된 사람이며,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의 최대 위험요소"라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이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강만수 현 산은지주회장을 두고 한 말로 보인다.
김태동 "10년 이내 또다시 위기 가능성...금융위원회 당장 폐지해야"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강만수 회장을 직접 언급하면서, "이미 두번의 금융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이 메가뱅크론을 주장하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G20 회의(세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합의문을 거론해가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형금융기관을 어떻게 줄이고, 규제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축은행 부실 사태 등을 두고, "과연 저축은행만 부실이 있겠는가"라며 반문하면서 "현재 금융산업은 모피아(과거 재정경제원 출신 공무원과 마피아의 합성어)에 의해 부동산거품을 유지하는데 동원되고 있으며, 앞으로 10년 이내에 또 다시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메가뱅크 추진에 대해선, "우선 현 정부에서 너무 강해진 관치압력을 금융부문에서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후 시장에서 은행들끼리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은행 간 합병이 진행된다면 굳이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날 공청회 발제자로 나선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위원도 "국내 은행산업은 이미 97년 외환위기 이후 두차례에 걸쳐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은행 대형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박 전문위원은 "은행 대형화 등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은 오히려 후퇴했다"면서 "WEF의 금융시장 성숙도 경쟁력은 2009년 58위에서 작년 83위로 추락했다"고 밝혔다.
박 전문위원은 "인위적인 은행 대형화는 자칫 은행의 부실과 금융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면서 "무리한 외형확대를 추구하다가 결국 공멸의 길로 접어든 저축은행을 보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김주영 변호사는 "정부가 추진중인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은 법의 제정 취지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법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임혁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위원장은 "최근 금융권에는 2MB라는 말이 떠돈다"라면서 "두개의 메가뱅크를 현 정부 임기 내에 만들려고 한다는 것인데, '대형화'라는 이름 아래 결국 관치를 통해 은행을 강제 합병시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강태욱 산업은행지부 위원장도 "산은금융지주는 일부 부족한 수신기반만 확충하면 충분히 독자생존할 수 있다"면서 "산은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거대 금융기관과 무리한 인수합병은 국가 차원에서도 손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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