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 아래 도교육청)이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로 추진 중인 창의·서술형 평가와 관련해 또다시 학생들에게 시험을 강요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실시한 고교생 대상 시험에 이어 오는 10일 치르는 중학생 대상 창의·서술형 평가 역시 상당수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응시 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 경기도교육청 주관 시험, 일선 학교들 강제 시행 논란)
이는 '희망 학교와 학생에 한해 응시'하도록 한 도교육청 지침과는 다른 것으로 성적 산출만 하지 않을 뿐 사실상의 일제고사형 시험이라는 주장이 뒤를 잇는다. 또한, '미응시 학생에 대한 학교 자체 대체학습 프로그램 제공'이라는 도교육청 지침도 지켜지지 않았다.
심지어 평택에서는 평택교육지원청 관할 전체 23개 중학교 가운데 22개교가 신청했는데 이들 모두가 사실상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고 3학년을 제외한 전교생(중3은 당일 고입모의평가 시행)을 대상으로 응시 신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22개교 1·2학년 전체학급 전 인원이 응시 신청을 한 것이다. 이로써 평택지역 약 1만1000여 명의 학생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시험을 보게 됐다.
여주교육지원청 관할 13개 중학교 역시 모든 학교가 신청을 했고 1·2학년 전체에 해당하는 2700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시험에 응시하게 됐다. 이로 미루어 선택권 없이 강제로 이 시험을 치러야 하는 중학생이 경기도 내 전역에서 수만여 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도교육청이 현장 조사를 통한 지도·감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이 같은 일은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가세했다.
도교육청은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평가에는 1학년 497개교 12만6889명, 2학년 490개교 12만9022명 등 총 25만5911명의 학생이 응시한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강제로 시험에 동원된 평택과 여주 지역의 1만4000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은 물론 경기도내 다른 지역에서 강제로 동원된 학생들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경기도 전역에서 강제로 시험에 동원된 학생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선택권을 보장받은 학생들은 도교육청의 발표 숫자에 훨씬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도교육청이 처음 신청을 받은 지난 4월말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학년 477개교 12만6321명, 2학년 484개교 12만4390명의 학생이 응시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7일 최종 발표에서는 1학년 20개교 568명, 2학년 6개교 4632명씩 각각 숫자가 늘었다.
도교육청이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채고서도 적극적으로 조사나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교사들의 주장과 비판도 잇따랐다. 평택의 한 중학교 교사는 "도교육청이 학교별 응시 현황만 제대로 살펴봤어도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랬다면 전교생이 한 명도 빠짐없이 시험을 보겠다고 신청을 하는 게 가능했겠는가. 인권조례로 학생인권을 보호한다는 도교육청에서 하는 일이 이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사는 "도교육청이 이런 학교들에 조사를 나가 확인하는 등 지도·감독을 제대로 했더라면 이처럼 관내 모든 중학교에서 경쟁하듯 강제로 시험을 보게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중학교 교사는 "교사들도 (창의․서술형 평가를 보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당부서 부장교사와 고사계 담당 교사가 임의대로 전체가 다 보는 걸로 신청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도교육청의 '대체학습 프로그램 제공' 지침 무력화
주변 학교들의 눈치를 보다가 전교생 일괄 신청을 한 학교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응시 희망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 이웃 학교들에게 응시 여부를 물어 본 것이다. "교장선생님이 담당 교사에게 다른 학교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라고 해서 이웃 학교 서너 군데에 전화를 걸어 확인 결과 모두 시험을 본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일괄 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는 것이 또 다른 중학교 교사의 증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응시 학생에 대한 학교 자체의 대체학습 프로그램 제공'이라는 도교육청의 지침도 이들 학교에서는 무력해지고 말았다.
채점과 관련해서도 학교별 '교과협의회에서 자체 채점 기준을 적의 수립 후 채점'하라고 한 도교육청의 지침 역시 소용이 없었다. 사전에 응시 여부를 선택하는 논의 과정이 없었고, 당연히 이를 위한 사전 교과협의회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청의 지침과 학교 현장이 따로 가고 있는 셈이다.
사전에 충분한 내용 확인과 준비 없이 교장이나 교무부장 혹은 담당교사 등 일부에 의해 학생들의 선택권도 보장하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신청을 하다 보니 시험 응시 과목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도교육청은 이 공문에서 "단위학교 교육과정 편성 현황에 따라 학교별로 시행 교과목 선택 가능"이라고 명시해 전체 5과목(국·영·수·사·과) 가운데 시행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평택지역의 모든 학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5개 전 과목을 일괄 응시 신청했고, 이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는 집중이수제로 인해 1학년은 사회 교과목을 배우지 않는데도 학생들은 4교시 사회/과학(통합형, 융합형) 시험을 봐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고 한다. 모두 창의·서술형 평가의 취지나 의도를 제대로 모르고 일괄 신청한 결과이고, 이를 제대로 확인·지도·감독하지 않은 교육청 탓이라는 게 지역 교사들의 말이다.
"우리 학교도 교사들조차 모르게 전교생 응시를 신청했다"고 밝힌 오산의 한 교사는 도교육청의 지도·감독 소홀을 적극 비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창의·서술형 평가가 정착돼야 하지만 도교육청이 지금처럼 자신들이 보낸 공문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조차 지도·감독을 포기한 채 잘 되고 있다고만 선전하는 건 미래가 뻔하다"는 것이다. "교사에게 수업과 평가에 대한 충분한 자율성이나 권한부여 없이 수업은 주입식으로 하면서 평가를 창의·서술형으로 하라는 건 선후가 틀린 얘기"라는 질책도 뒤따랐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지난 번 고등학교 시행 과정에서 강제 응시 논란이 있어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충분히 알렸다. 이 학생들을 위해 대체프로그램을 마련하라고 안내했고 이러한 내용을 몇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강제 시행 여부를 조사할 수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교육청에 정식 민원을 넣거나 게시판에 올리면 조사를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10일 도교육청이 '전국 최초 실시'를 강조하며 도내 고교생을 대상으로 치른 창의·서술형평가는 당시 상당수의 학교에서 전교생을 응시하도록 강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이 같은 논란 속에 오는 10일 도내 중학생을 대상으로 이 시험이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