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궐선거 이후 정치권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의 자기혁신을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야권도 통합과 혁신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내년 총선과 대선의 흥행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이러한 흐름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흔쾌하지만 않다. 정치권의 이런 논의 속에는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할 유권자는 보이지 않고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공학만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는 더욱 답답하다. 4·27 선거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 나름대로 힘을 기울였지만, 선거 과정에서 필자를 포함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가 실시된 4월,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는 누가 뭐래도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방사능오염 문제였다. 사람들은 외출할 때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는 채소와 생선을 먹어도 되는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또한 비가 오는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할지, 휴교를 요청해야 할지도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이 방사능 공포 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4·27 선거에서 원전의 안전성이나 방사능문제, 나아가 원자력위주의 에너지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결국 원전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임에도 선거 이후 국민들의 관심과 정치에서 멀어지고 있다.
원전만이 아니다. 4대강사업 현장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고 곳곳에서 문제점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4대강사업이 중단되거나 속도가 조절되었다는 기사를 찾아보기 어렵고 해당부처 장관이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실수로 돌리는 황당한 발언을 해도 그 책임을 아무도 묻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축산업을 한꺼번에 위태롭게 만든 구제역에 대해서도 분명 정부의 잘못이 있었음에도 이를 끝까지 추궁하고 대안을 마련할 국회의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군에 의한 고엽제 불법매립도 시간이 좀 지나면 불평등한 SOFA협정을 이유로 책임자를 처벌하거나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 채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녹색후보' 당선을 위한 '녹색정치포럼' 시작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4대강이나 원전문제와, 구제역 등과 같은 환경현안에 대해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춘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도 이 같은 현안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슈가 되고 표가 될 때만 움직이지 일상에서는 이들 이슈가 우선순위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 '녹색당'이나 녹색정치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 정치집단이 있었다면 4·27 선거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며, 선거 이후에도 원전문제는 지속적으로 쟁점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은 독일의 예를 보면 분명하게 확인된다.
한국과 달리 지난 3월 27일 실시된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 원자력발전소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녹색당이 24.2%를 획득하여 사상 처음으로 주지사를 배출하였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엥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인 기민당의 텃밭으로, 기민당이 주지사 자리를 내준 것은 무려 5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원전문제는 선거에서만 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선거가 끝나고 두 달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독일사회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었고, 마침내 독일정부는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완전히 폐기하기로 결정하였다. 만약 녹색당이나 녹색정치세력이 없었다면 이러한 역사적 전환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4·27 선거와 독일의 3·27 선거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분명한 교훈은 4대강사업이나 원전문제 같이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녹색정치 세력이 한국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죽임의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MB-한나라당 정권을 심판하고 4대강의 생태계를 다시 복원시키는 데 대한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이와 함께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기 위한 정치적 일정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러한 일을 기존 정치권에만 맡겨둘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지금 녹색운동 진영에서 '녹색정치포럼'을 구성하여 내년 총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이들의 당면 목표는 당연히 4대강사업 심판과 4대강의 재자연화(생태복원), 그리고 탈핵사회를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내년 총선에서 녹색진영을 대표할 후보를 낼 것이며, 녹색정치 그룹을 형성하여 지금과는 다른 정치를 열어갈 것이다.
물론 야권통합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녹색정치세력이 독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녹색정치세력화는 지금 큰 틀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치구조 재편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녹색정치 실험은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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