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동물원. 2대 8 가르마를 단정히 탄 가장이 가족들을 이끌고 간만의 휴식을 위해 들르는 곳. 인파에 잃어버릴 새라 손을 꼭 잡은 어린 자녀들에겐 고운 옷을 차려 입히고, 솜사탕 하나씩 들려주고 나니 그윽한 만족감으로 가장의 얼굴은 밝아진다. 그리고 동물원을 관람한 후에는 반드시 특별식을 먹어야 했다. 공원 옆에 있는 돈가스 집에서.
70~80년대 대구 달성공원은 꼭 그런 풍경을 가진 곳이었다. 모처럼 가족들의 단란한 나들이에 빠질 수 없는 볼거리 먹을 거리 코스들로 채워진 곳. 그리고 간만에 가족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였다.
지금이야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가 필수품이지만 그 당시 카메라는 매우 고가품이었다. 그래서 화질 좋은 카메라를 목에 건 채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사진을 찍어주던 사진사는 제법 벌이가 괜찮은 직업이기도 했다.
그들은 공원 방문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곤 손님의 주소를 받아두었다. 그리고 인화된 사진을 집으로 보내주었다. 봄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은 초여름이 시작될 즈음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와서 전해 주었다.
달성공원 하면 떠오르는 명물 중 하나는 공원 입구의 거인 아저씨였다. 공원의 광고 효과를 위해 매표원으로 근무하게 된 그는 그 저음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내려다 보며 스케치북에 사인을 해주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지금의 씨름선수 최홍만 보다 훨씬 큰 키와 체격의 거인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이제 그도 세상을 떠나고 없다.
봄이면 초등생들의 사생대회가 열리고, 여름이면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나무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노래 부르며 놀다 가는 곳, 가을엔 단풍으로 뒤덮혀 눈이 시린 곳, 그리고 겨울은 동물들만 한가로이 머무는 호젓한 공간.
현재는 노인들이나 종일 진을 치는 한적한 달성공원엔 그 마음을 아는 동물들만이 무료한 초여름을 맞고 있다. 1963년 부터 자리한 공원 옆 돈가스 가게만이 그 역사를 지켜보면서.
브라운색 소스가 뒤덮힌 보송보송한 돈가스, 우유와 밀가루 냄새가 스쳐가는 고소한 스프, 케첩과 마요네즈을 섞었을 뿐이지만 너무나 그리운 옛날 샐러드를 지금도 내면서. 그리고 한 아이의 추억 속 한 정점을 찍으며 일요일의 공원은 돈가스 냄새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