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벼농사 망치려고 작정을 한 건가요?"
지난 5월 한쪽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랑 둘이서 모내기를 했다. 가지고 있는 논이라고 해봤자 손바닥만한 삼각지 논 정도고, 나머지는 몇 년째 아버지가 대신 부치고 있는 남의 논이다.
모내기 하느라 고생이고, 농약 값에 비료 값 들고, 가을걷이 할 때 콤바인까지 이웃에게 빌리자면, 그깟 쌀직불금이 문제가 아니라 남의 논농사를 빌어먹지 않는 게 더 이득이다. 하지만 촌부는 고집스레 논일을 해왔다. 평생 논의 진흙과 논둑에서 살아왔기에 논농사는 자신의 분신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간 동네 아저씨의 이양기로 모를 내고 아침저녁으로 농수로와 논둑을 살피고, 논물을 대고, 어린 모가 자리를 잡고 새 뿌리를 내리도록 돌봐왔다. 비가 오나 천둥번개가 치나 날이 푹푹 찌거나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랑 같이 아랫논에 내려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벼를 보고 별 탈 없이 커주길 바랬다.
그런데 얼마 전 아랫논과 이웃한 밭에서 농사를 짓는 외지인이 대형사고를 쳤다. 논물을 대놓고 어머니랑 철쭉나무를 심어놓은 밭의 김을 매다가 풀약 냄새가 나서 봤더니, 글쎄…. 그 전에 외지인이 자신의 밭과 논둑에 농약 분무기를 이용해 뭔가를 뿌려댔는데 그때 막았어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 서구는 서해에서 바닷바람이 불어 온다. 흔히 말하는 편서풍인데 그 바람을 타고 외지인이 뿌려댄 제초제가, 모내기를 한 논으로 날아들어 어린 모의 잎사귀는 누렇게 타들어갔다.
풀약을 줄 때는 바람이 잠잠한 아침이나 저녁에 뿌려야 하는데, 논농사는 오래전에 해봤다는 외지인은 마구잡이로 논둑과 자기 밭에다 제초제를 뿌려댔고, 그 제초제는 바람에 실려 우리 논과 밭으로 날아온 것이다.
재작년에도 그 밭에서 농사를 지어먹은 또 다른 외지인이 다 큰 벼에다가 제초제를 뿌려 벼농사를 망쳤는데, 또 다시 다른 외지인이 그 밭에서 제초제로 남의 벼농사를 말아먹고 만 것이다. 모뿐만 아니라 사과나무에도 제초제가 날아들어 나뭇잎이 짙은 갈색 구멍을 내며 타들어가고 있다.
이를 보고 어머니가 크게 노하셨는데, 아버지도 외지인이 제초제를 마구잡이로 뿌려 모가 타들어갔다는 말에 더 크게 역정을 내셨고 "그때 한번 참았는데 또 그랬다고? 그 사람에게 그 논 알아서 해먹든지 말든지 하라고 분명히 말해라"라며 분통을 터트리셨다. 그래서 외지인 부부가 밭에 나온 날, 내가 직접 따지고 주의를 줬다.
언제 어떻게 제초제를 뿌린 것을 봤고, 당신들 때문에 벼농사를 망쳤다고, 제초제를 함부로 뿌리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외지인은 구차하게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했지만, 그가 제초제를 뿌린 논둑과 제초제를 맞아 시름시름 앓는 모의 모습을 직접 보여줬더니 꼬리를 내렸다.
그래서 말이다. 제발 농사 지어 먹고살기도 고달픈 촌부들, 이웃들 민폐 끼치지 말고, 괜히 남의 농사까지 망치지 말았으면 싶다. 특히 농작물에 마구잡이로 농약을 치면 그 농약은 누가 먹나? 바로 당신들이 먹는다.
그렇게 농약 마구 뿌려서 한 해 밭농사 지어먹고 외지인들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계속 땅 파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생각 좀 하란 말이다. 벼농사 망쳐도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누구에게 피해를 보상받지도 못하는 촌부들 괜히 염장질 좀 하지 말란 말이다. 제발 부탁이다. 요즘 농촌 인심이 야박하다고 탓하기 전에 왜 그런지 곱씹어 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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