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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데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진다면? 지난 3월 여의도 교차로에 수억 원의 만 원권 지폐가 뿌려졌다. 날리는 돈의 출처를 모르겠거니와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현실인지 분간도 안 가는,지 몇몇 시민은 황당해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며 선뜻 돈을 줍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일부, 시민 태반은 땅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느라 도로는 마비됐다.

 MBC 창사 50주년 기념 다큐 <타임 - 돈> 화면
MBC 창사 50주년 기념 다큐 <타임 - 돈> 화면 ⓒ MBC

'하늘에서 돈이 우수수수', 지난 9일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돈>이다. 창사 50주년을 맞아 MBC가 2일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타임>의 두 번째 이야기 편으로, 이번 특별기획은 우리 사회의 지난 50년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매주 하나씩 조명한다.

1편 '연애'를 시작으로 '돈', '술', '간첩', '교육' 등 자유로운 소재만큼이나 PD를 비롯해 영화감독, 문화평론가 등 다양한 구성원이 연출에 참여해 기존 다큐멘터리 문법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도전으로 방영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특히나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김현석 감독의 <돈>은 지상파에서 최초로 시도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였다는 점에서 '하이브리드 다큐 <타임>'이라는 기획에 걸맞게 다큐멘터리 실험의 장이 됐다.

하지만 이러한 기획의도, 소재, 연출진 등의 파격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다큐 <타임-'돈'>의 시청률은 8.1%(TNmS 제공)에 그쳤다. 이는 지상파 최초의 페이크 다큐라는 상징성과 관심이 과감한 시도와는 달리 예상에 못 미쳤다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남은 <타임> 다큐시리즈가 대중들의 공감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됐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어째서 페이크 다큐 <돈>은 하이브리드 다큐 실험의 장 <타임>시리즈의 매력을 반감시켰을까.

진실을 위한 페이크인가, 페이크를 위한 페이크인가

페이크 다큐(fake docu)는 패러디와 풍자를 위한 방편으로 다큐멘터리에 사실이 아닌 허구적 요소를 실제처럼 끌어들인 것으로, 모큐멘터리(mock 조롱, 가짜 + documentary)라고도 한다.

본래 다큐는 만든 사람의 개입과 연출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핵심 질료는 허구가 아닌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반면 페이크 다큐는 사실 기반이라는 전제를 역이용해 연출된 상황이나 실화의 재연을 통해 허구의 것들로 다큐멘터리를 채운다. 하지만 사실과 허구, 객관과 주관, 다큐와 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페이크 다큐의 이러한 형식은 결국 진실을 위함이다. 즉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로 진실을 이야기한다는데 페이크의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tvN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화면
tvN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화면 ⓒ tvN

그런 측면에서  MBC <돈>의 페이크는 불륜과 치정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기 위해 페이크 기법으로 시청자의 관음 욕구를 교묘히 자극시키는 케이블 채널의 페이크 다큐 프로그램과는 그 목적이 다르다. 한참 논란이 됐던 케이블 tvN <독고영재의 현장르포-스캔들>만 보더라도 모자이크 처리나 음성변조, 몰래 카메라 동원 등의 페이크 기법은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기보다는 재연을 희석시키고 마치 실제 상황을 포착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시청자를 헷갈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말 그대로 시청자에 대한 페이크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돈>의 김현석 감독은 리얼 다큐멘터리에 영화적 요소와 드라마틱한 요소를 가미함으로서 '돈으로 인해 왜곡된 인간관계의 모습'이라는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여의도 한복판에 돈을 뿌리려는 가상의 인물 장세춘과 그의 두 아들도, 교통사고를 당한 아내를 돈 줍느라 당시 주변 사람들이 돕지 않고 죽도록 내버려줬다는 사연도, 사람들의 양심을 시험하기 위해 뿌린 돈을 다시 돌려주는 사람에게 열 배로 되갚아주겠다는 계획도, 심지어 옥상에서 살포된 2억여 원의 돈과 이를 줍기 위해 도로를 점령한 시민까지 모두 가짜다. 돈에 눈 먼 인간의 모습이라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한 페이크였던 셈이다.

재연배우 연기 같은 페이크는 있으나마나

하지만 이러한 철저한 계산과 계획으로 만들어진 페이크 다큐 <돈>은 아쉽게도 시청자를 제대로 속이지 못할 만큼 어설펐다. 또 진실로 보여줘야 했을 결정적 순간마저도 가짜와 연기로 페이크를 유지함으로써 페이크 다큐 시도의 의미를 무색케 했다.

 MBC 창사 50주년 기념 다큐 <타임 - 돈> 화면
MBC 창사 50주년 기념 다큐 <타임 - 돈> 화면 ⓒ MBC

다큐 <돈>의 페이크 장치는 방영 후 충분히 오해와 논란을 일으킬만한 것들이었다. 이를 의식해서 제작진은 다큐 초반 이것이 페이크 다큐라는 자막 공지를 내보냈다. 김현석 감독의 아쉬움을 산 부분이라고는 하지만 대신 3월 28일 실제로 방영된 MBC 뉴스 보도와 문지애 앵커의 멘트를 다큐 첫 장면으로 삽입하면서 반감된 긴장감을 되살렸다.

<돈>은 거짓을 마치 사실인 양 전하려고 한 애초의 목적을 충분히 살려 흥미롭게 출발했지만, 그 이후 각색된 재연은 몇몇 케이블 다큐의 어색한 연기를 떠올리게 할 만큼 부자연스러워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령 아버지 장세춘의 재산을 놓고 다투는 두 아들 내외의 갈등이라든가, 큰아들의 제보로 이들 가정을 취재하기 시작했다는 등의 설정은, 어디선가 본 듯한 재연배우들의 불륜연기로 화면의 내용이 실제상황이 아님을 시청자가 확실하게 느끼는 케이블의 몰카 형식의 어설픈 페이크와 다를 바 없다.

김 감독은 주인공 장세춘을 비롯한 대부분의 등장 인물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기를 해 본 사람이 나오면 너무 극적이라 파고다 공원을 돌아다니며 캐스팅했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실제 이야기가 아닌 이상 일반인 역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부자연스러움은 오히려 극대화된 측면이 있다.

페이크 <돈>과 200명의 엑스트라 일당 3만 원

시청자가 제대로 속지 못할 만큼 어설펐던 페이크 장치 말고도 다큐 <돈>에 대한 아쉬운 점은 또 있다. 연출진이 페이크로 다소 편하게 '돈'의 실체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면, 이 다큐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 즉 뿌려진 돈을 줍는 시민은 페이크가 아닌 실제였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뿌린 가짜 돈을 모두 회수해야 한다는 실질적인 어려움과 실험에 동원된 실제 시민이 과연 방영을 허락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예상되긴 한다. 하지만 '돈이 굴절시킨 인간의 모습'이라는 주제까지 모두 동원된 200여 명의 엑스트라 연기로 전달되는 순간 시청자는 생각한다. 이럴 거면 굳이 왜 다큐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돈과 야망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배신하는 신파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을 통해서 '돈'으로 뒤틀린 인간성을 충분히 봐오지 않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페이크 다큐 <돈>의 러닝타임 내내 돈을 대하는 우리의 진실한 자세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못했다. 오히려 엔딩 크레디트가 한참 올라가는 번외 속에서 돈 줍는 연기를 했던 200여명의 엑스트라들이 3만원의 일당을 받기위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에서 이 다큐가 던지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채 1분도 안 되는 이 엔딩을 위해 다큐<돈>은 페이크를?


#페이크 다큐#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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