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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암 스님의 수행 생활은 춘풍한설에 꽃피우는 매화 같은 구도자의 삶이 었을겁니다.
석암 스님의 수행 생활은 춘풍한설에 꽃피우는 매화 같은 구도자의 삶이 었을겁니다. ⓒ 임윤수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다 죽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 세속인이니 출가수행자니하며 따질 것 없이 다 죽습니다. 하지만 죽는다고 해서 다 같은 죽음은 아닙니다. 죽음과 동시에 서서히 잊혀져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월이 흐르면서 생전의 삶이 점점 살아나는 그런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완용 등과 같이 매국노로 되살아나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치욕스런 인생도 있지만, 세월이 흐르며 아주 명예롭거나 존경의 대상으로 추앙되어 영생의 명성을 얻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농사, 자식, 제자는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

농부가 농사를 짓고, 어버이들이 자식농사를 짓듯 출가수행자인 스님들도 불제자를 농사짓습니다. 출석을 부르는 학교처럼 제도적 교육이 아닐지라도 출가수행자로 살아가는 그 삶 자체가 구도의 길이기에 들풀처럼 살아 가야하는 불제자들에는 가뭄을 해소시켜 주는 가랑비가 되어 줍니다. 

 석암 스님 진영
석암 스님 진영 ⓒ <처처에 나툰 보살행>에서
농부가 흘리는 땀을 먹으며 농작물이 자라고, 어버이들이 쏟아주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먹으며 자식들이 자라듯 불제자나 중생들 또한 은사스님들이 모종해 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담긴 지혜, 구도자가 솔선하는 삼장과 자비(慈悲)를 밑거름으로 자라납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출가수행자 있다고 생각됩니다.

생계수단의 방편으로 선택해 오로지 직업인의 역할에만 충실한 '직업인' 출가자와 오로라처럼 형이상학적일 수도 있는 참 삶과 구제를 구현하기 위해 구도의 길을 찾아 나서 가슴앓이를 해가며 구도자의 상을 탁마(琢磨)해 가는 '참스승' 출가수행자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인 출가자나 구도자 출가수행자 모두가 다 같이 불단에 서서 불제자나 중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어느 사람이 직업인 출가자이고 어느 분이 참스승 구도자 인지가 한눈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농사의 풍흉(豊凶)이 가을걷이로 판가름 나고, 자식농사의 결실이 노후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판가름 나듯 출가 수행자가 지은 수행이력이나 불제자농사의 풍흉 역시 그 스님이 입적한 후에야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판가름 난다고 생각됩니다.

 <처처에 나툰 보살행> 석암스님의 수행과 가르침 / 김광식 엮음, 석암문도회 기획 / 불광출판사 펴냄 / 2011년 5월 15일 / 비매품
<처처에 나툰 보살행> 석암스님의 수행과 가르침 / 김광식 엮음, 석암문도회 기획 / 불광출판사 펴냄 / 2011년 5월 15일 / 비매품 ⓒ 임윤수
역사 이래 수많은 교육자가 있었음에도 석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가 4대 성인으로 손꼽히는 것은 이 네 분의 역량이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역량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잘 지은 '제자농사'때문 일거라는 생각입니다.

이들 4대 성인 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역사 이래 없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들 4대 성인만큼 제자농사를 잘 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명성이나 철학이 후대까지 전달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박식했으며 지식 전달에는 충실했고, 지략은 뛰어났을지 모르나 이심전심으로 나눠주는 제자 사랑에는 야박했고, 부지불식간에 이식하고 돌봤어야 할 존경의 종자를 뿌리는데 궁색했다면 입적이라는 매듭으로 사제 관계가 끝남으로 스승, 출가수행자로서의 위상도 동시에 사라진 때문일 겁니다.

직업인 출가자라면 재직 당시 제아무리 명성이 높고 영향력을 발휘했어도 입적과 동시에 그 명성과 영향력을 잃게 됨으로 생전에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사그라지기 때문입니다.

참 구도자, 올곧은 출가 수행자였다면 입적으로 육신의 영향력은 소멸되었을지언정 생전에 탁마한 참교육이 은사스님에 대한 존경, 고승을 기리는 유형무형의 자산으로 싹트고 번창하리라 생각됩니다.  

24년 만에 다시 피어난 석암스님의 불법(佛法) 농사

24년 전인 1987년 5월 13일, 세수 77세, 법랍 57세에 입적하신 석암스님을 기리는 동국대연구교수인 김광식 박사가 엮고, <불광출판사>에서 비매품으로 출간한 <처처에 나툰 보살행> -석암스님의 수행과 가르침-을 읽으며 석암스님의 생전 삶이이야 말로 세월이 흐르며 다시 되살아나는 참 출가수행자의 삶을 사신 진정한 구도자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명성이나 영향력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빛이 바라거나 점차 잊혀 갈 법하지만 2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생전의 수행이력이 돋아나고, 생전의 가르침이 꽃피우며 열매로 영글어가고 있으니 석암스님의 수행이력을 덩달아 흠모하게 됩니다. 

<불광출판사>에서 비매품으로 출간한 <처처에 나툰 보살행> -석암스님의 수행과 가르침-에는 생존해 계시는 21분의 노스님들과 재가불자 2분이 다양하게 기억하고 말하는 석암스님의 삶과 수행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총무원장 자리를 닭 벼슬만도 못하게 생각한 석암스님  

하동 쌍계사 조실인 고산스님이 말씀하시는 석암스님에서, 고승열전에서나 읽었던 선사들의 단면, 벼슬을 닭 벼슬만도 못하게 여겼다던 고승들의 일면을 석암스님의 삶에서 접하게 되니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집니다.

 처처에 나툰 보살행, 석암 스님
처처에 나툰 보살행, 석암 스님 ⓒ 임윤수
1970년대 중반 서옹 스님이 종정을 하실 때, 내가 종단으로 불려 가서 총무부장을 했습니다. 서옹 스님께서 어느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하면 좋겠느냐고 해서 난 석암 스님이나 자운 스님 같은 분들이 좋지 않겠습니까, 했지요.

그랬더니 서옹 스님께서 석암 스님이 좋겠다고 해서 내가 모셔 오려고 부산으로 내려갔어요. 그때 월서 스님이 재무부장이었는데, 덩치도 크고 해서 호위병으로 같이 갔어요.

그래 선암사에 내려가서 인사를 드리고 나서, "서옹 종정께서 스님을 꼭 총무원장으로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허락을 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런 내 말에 스님은 "내는 그런데 생각이 없다. 그러니 차나 한잔 들고 가라" 그래요.

그래 난 "종정 스님께서 꼭 모셔 오라고 하니까 이번 기회에 종단을 위해서 허락해 주세요, 스님! 제가 스님을 모셔 온다고 장담을 했는데, 그님 종단을 위해서 그만 올라가시지요" 했더니, 스님은 "내가 한번 안 간다고 하면 절대로 안 간다. 자네가 고무신 열 가마니를 떨우고, 몇 년을 다녀 봐라 나는 절대로 안 간다" 그랬어요.

그래 난 할 수 없이 "알겠습니다" 하고 올라온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스님은 청렴결백하고, 청빈한 것에서는 제일이었습니다. - p255

매화 꽃 같은 수행, 매실처럼 영근 불법

 석암 스님도 24년전 이렇게 다비 되셨습니다.
석암 스님도 24년전 이렇게 다비 되셨습니다. ⓒ 임윤수

어떤 스님이 말씀하시는 석암 스님은 신맛을 더해가는 6월의 매실처럼 새콤하고, 어떤 스님이 기억하시는 석암 스님은 누렇게 익은 떡살구처럼 달콤하고, 빨갛게 익은 자두만큼이나 자극적입니다.

춘풍한설에 꽃피우는 매화처럼 구도자의 삶을 사셨으니 매실이 익어가는 6월에 한 권의 책 속에서 잘 익은 매실처럼 영생의 출가수행자, 참교육을 실현한 진정한 구도자로 우리 곁으로 나투신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절에서 벌이는 야단법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스님들 중 몇몇 분이나 당신이 입적에 드신 먼 후일 이런 결실을 맺을지가 궁금합니다. 교육자라는 타이틀로 살아가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선생님이나 교수들 중 제대로 제자 농사를 짓고 있는 교육자는 몇 사람이나 될까도 궁금합니다. 교권이 무너지는 것을 탓하기 전에 현실적으로 직업인으로서의 교육자만 넘쳐나는 것은 아닐까가 먼저 염려됩니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석암 스님의 수행과 가르침이야말로 농사를 짓는 농부, 자식 농사를 짓는 부모, 제자 농사를 짓는 참스승이 아니었을까 어림됩니다. 석암 스님께서 평생 지은 불법 농사, 이제야 풍년을 맞은 듯하니 흥얼흥얼 풍년가를 불러봅니다.

덧붙이는 글 | <처처에 나툰 보살행> 석암스님의 수행과 가르침 / 김광식 엮음, 석암문도회 기획 / 불광출판사 펴냄 / 2011년 5월 15일 / 비매품 / 책의 구입에 대한 문의는 석암문도회(051-241-0691)로 연락)



그대가 보살입니다 - 관음경과 관음기도

석암, 우리출판사(서울출판)(2012)


#석암스님#불광출판사#고산스님#김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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