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 16일 오후 4시 30분]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친구인 천신일(68)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서울중앙지방법원 510호 법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입술을 꼭 다물고 피고인석으로 이동했다. 동행한 의료진은 재판부에 그의 혈압수치를 알려주었다.
이어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천신일 회장은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1시간 동안 판결문 내용을 경청했다. 괴로운 표정이 역력했다. 이제 재판장의 선고만 남았다. 천 회장의 지인들로 가득찬 법정에 긴장감이 돌았다.
"알선행위의 포괄적인 대가관계가 인정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우진 부장판사)는 16일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출 알선 ▲워크아웃 조기졸업 등의 청탁과 함께 47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천신일 회장에게 징역 2년 6월과 추징금 32억1060만 원을 선고했다.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을 적용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수우 대표로부터 계열사의 워크아웃이 빨리 끝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산업은행 부총재출신인 정아무개씨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 유리한 워크아웃 결정을 받아낸 대가로 26억1060만 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대표는 경영상 중요사안이 있을 때마다 천 회장과 수시로 만나 논의하거나 상황을 보고하고 현안을 해결해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며 "이 대표도 고마운 마음을 갚기 위해 금품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금품 공여 일시와 장소, 신용카드와 계좌내역 등 객관적 사실이 모두 부합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천 회장의 주장대로 친형제 이상의 관계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친분 때문에 명절마다 1억 원 상품권을 주고 매월 3000만 원의 월급을 줬다는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알선행위의 포괄적인 대가관계가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19일 검찰(서울중앙지금 특수1부)은 "천 회장의 건강문제 등을 참작해도 수수한 금액이 많고 국가기관부터 사기업까지 전방위적인 청탁을 해 사안이 중대하다"며 천 회장에게 징역 4년과 추징금 47억1060만원을 구형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특히 돈을 받은 시기는 2008년 이후로 언론 등을 통해 상당한 힘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된 후"라며 "공적 지위가 없음에도 국가기관 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게 사건의 본질"이라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재판부도 "금융기관의 전·현직 임원 등이 천 회장의 인맥에 포함되는데 그런 지위를 이용해 청탁을 하고 상당히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며 "산업은행 부총재,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을 동원해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 등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처음부터 돈을 바라고 개입하지 않았고, 월급이나 상품권도 천 회장이 먼저 요구하지 않았다"며 "또한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고령의 나이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양형 참작 사유를 나열했다.
이어 재판부는 "하지만 학연과 지연, 연고를 이용해 청탁하려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실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며 '2년 6월, 추징금 32억여원'을 선고했다.
지난 5월 결심공판 "브로커 역할을 안했는데 너무 억울하다" 검찰이 애초에 구형했던 것보다 형량이 낮아졌고, 추징금도 47억여 원에서 32억여 원으로 줄었다. 이는 천 회장이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위한 산업은행 로비 대가로 받은 26억여원과 공유수면 매립분쟁 해결, 국세청 특별세무조사 무마 등의 대가로 받은 월급(4억원)·상품권(2억원) 등 총 32억여원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특별사면 청탁 대가 등으로 돈을 받았다는 일부 혐의는 직무와의 연관성이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하자 천 회장은 굳은 표정을 한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을 빠져 나갔다. 그는 지난 5월 19일 결심공판에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게 내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도움을 주고 살았을 뿐 대가를 바란 적은 전혀 없다"며 "브로커 역할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최후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