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지난 10년 평균 영업이익률이 6.80%입니다. 현대자동차에 직접적으로 부품 주문을 받는 중소기업 즉, 1차 협력업체들의 지난 10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3.39%예요. 같은 방법으로 계산해서 삼성전자는 영업이익률이 13.40%,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 평균 영업이익률은 6.71%입니다. 항상 절반 수준이에요. 1차 협력업체들이 이 정도니 2차, 3차 협력업체들의 이익률은 더 나쁘겠죠."한국 대기업들이 지난 2008년 닥쳤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 10년간의 영업이익률 자료를 근거로 "대기업이 받았던 충격이 납품단가 조정 등을 통해 중소기업에 전가되었고 그 결과 대기업이 더 빠르게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5월 31일과 6월 7일, 두 번에 걸쳐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 하도급구조의 현황 및 과제'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 중 대부분이 대기업과 종속적인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고용 대부분을 창출하고 있는 만큼 하도급 거래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임에도 연구에 필요한 기초적인 데이터가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지속가능한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 "중소기업 간에 수평적 네트워킹을 만들고 협동조합 공동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중소기업 매출액 85.1%가 하도급 거래"하도급 거래란 위탁기업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고 납품하는 형태의 거래를 말한다. 김 교수는 "2005년 중소기업 매출액의 85.1%가 하도급 거래에 해당한다"며 "위탁기업의 주문 없이 중소기업이 자체적인 계획에 따라 생산하는 양은 14.9%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2005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중소기업 중 대기업에 종속적이지 않은 중소기업은 31.2%입니다. 그런데 이 기업들이 달성한 매출액은 14.9%에 불과해요. 그만큼 한국에서는 하도급 거래 즉, 주문생산업의 비중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한국 중소기업에는 시장이란 게 없어요."단순히 하도급 거래의 비중이 높다고 해서 중소기업의 미래가 어둡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하도급 거래 관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적인 구조가 될 수도 있지만 대기업의 일방적인 중소기업 수탈로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느 쪽일까? 김 교수는 "한국의 하도급 거래는 수탈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상호 간에 거래업체가 많고 적은지의 여부를 보면 그 관계가 협력적인지 수탈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부품·소재 부문 중소기업 중 2/3정도가 자기 주력제품의 절반 이상을 한 업체와 거래합니다. 상당수의 중소기업이 자신의 매출 반 이상을 한 개 업체에 의존하는 구조에요. 그래서 하도급 거래 구조가 전형적인 '갑'과 '을'의 관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지요."대기업 발 '단가 후려치기', 양극화와 비정규직 만들어
한국과 비슷한 풍경의 하도급 구조를 가진 일본의 경우, 대기업은 적절한 평가와 경쟁 속에 중소기업과 계속적인 장기거래를 맺는다. 또한 하도급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이 어느정도 공급과 품질보증에 책임을 지며 제품개발에 참여하고 자신의 몫을 가져가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은 하도급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대기업에 종속적인 모습이다. 1993년에 있었던 중소 제조업체 56,472개 중 2003년까지 생존한 사업체는 14,315개. 이 가운데 종사자 수 300인 이상의 업체로 성장한 기업은 75개, 500인 이상으로 성장한 기업체 수는 8개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이 완전히 막혀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하도급 구조 차이를 가져온 원인으로 수·발주 형태와 공급계약 기간, 거래업체의 숫자를 꼽았다.
"부품류를 예를 들면 수주, 발주에는 네 가지 정도의 형태가 있습니다. 볼트, 너트 수준의 부품 제작만을 맡기는 것을 '단품 수·발주', 단품 수준의 제품을 몇 개 결합한 단위를 '유니트', 그 다음이 '가공부문 일괄 수·발주', 그 다음을 '모듈화'라고 하지요.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부품류 주문은 단품 수·발주입니다. 그에 비해 일본은 모듈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요."단품 위주의 수·발주에서는 가장 단순하고 표준화된 제품을 얼마나 싸게 생산하느냐가 관건. 이 구조의 특징은 중소기업이 기술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납품 단가를 낮출 경우 곧바로 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제조업 부문의 하도급 기업을 대상으로 산업연구원이 지난 2006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기업과의 거래 불만족 사유 중 59.6%가 지나친 단가인하 요구"라며 "대기업의 지나친 납품단가 인하 요구는 중소기업의 경영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에 의한 이른바 '중소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한국 노동에서 비정규직과 양극화 문제의 해결을 막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안정적이지 않은 공급계약 기간 역시 한국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는 요소다. 김 교수는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10년이 지나도 거래기업 변동이 거의 없는 반면 한국은 43%의 중소기업이 장기 공급계약을 안 맺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요할 때마다 계약을 맺는 형태이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불안정한 환경인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품개발에 투자할 생각을 하기 어렵지요. 조립·가공업 부문의 한국 중소기업 중 독자적인 제품개발을 기대해볼 수 있는 3년 이상의 안정적인 공급계약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전체의 21% 뿐입니다."김 교수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거래하는 업체의 수가 적다는 것도 열악한 하도급 구조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일본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경우 평균 다섯 개의 완성차 업체와 거래를 하지만 한국은 자동차 부품업체 중 80%가 사실상 한 개의 완성차 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래가 가능한 업체가 적기 때문에 중소기업인 부품업체가 대기업인 완성차업체에 대해 갖는 협상력이 근본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MB정부 동반성장 정책, 방향 재고해야그렇다면 한국 중소기업들이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를 벗어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유효할까. 김 교수는 첫 번째로 해외시장 개척을 꼽았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종속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국내시장 안에서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대기업의 전속기업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지요. 해외시장 개척이 중소기업 발전에는 굉장히 큰 관건입니다. 국가에서 중소기업을 도와주려면 이런 점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은 거의 전적으로 대기업의 시혜적 조치에 기대고 있지요."또한 김 교수는 "기업의 수평적, 수직적 연결고리를 개선해야 한다"며 "수평적으로는 중소기업 협동조합의 개혁과 공동사업 활성화가, 수직적으로는 대·중·소기업 하도급 거래의 개선 및 상생을 모색하는 방안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함께 서비스업에 대한 보호 장치와 피해구제 제도의 개선도 언급했다.
"현재 한국의 재벌들이 중소기업의 영역으로 많이 들어가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체결되는 FTA 내용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서비스업에 대한 보호 장치가 강화되어야 하는데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감안한 과도기적 보호 장치가 필요합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앗으면 3배로 보상하는 3배 배상제 같은 류의 제도가 이른 시일 내에 도입되어야 합니다."김 교수는 강의를 마치며 "현재 공정위에서 하도급 거래의 실태를 주기적으로 조사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기초자료에 대한 빠른 공개와 하도급 거래의 실태 파악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