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주무림제국 건국 당일, 초대 황제 등극과 '천룡비결권' 1948년 8월 15일, 입김까지 열기를 내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서울의 한복판 중앙청에 흰색 바탕에 음과 양, 그리고 건곤감리 네 괘가 태극을 보좌하는 대한무림제국의 상징인 태극기가 창공을 가르며 힘차게 하늘로 뻗어 올랐다.
한인창공자의 자제님이신 환웅고황방이 마늘과 쑥으로 내공을 보(補)한 웅자조선랑의 무림방인 웅진공방으로 낙하하여 입식면면한 것은 세계 무림의 초석을 닦은 대국 조선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환웅고황방이 웅진공방(雄鎭工房)의 여성도방인 웅자조선랑을 대면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으로 여성지배권이 활황하던 시기였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초면에 하늘의 이궁을 전수받은 고황방과 땅의 기운이 전해주는 중단전의 원초적 본성을 획득한 조선랑이 서로의 내공을 확인하고 합궁에 이른 것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상의 세계에 하늘과 땅의 조화로운 우주만물을 구현하는 무림의 평화를 펼치려던 환인창공자의 참된 재림이념은, 절대적 무공비력으로 무장한 천하도인인 환웅고황방과 웅자조선랑의 합궁(순간 우르릉 쾅 먼개가 땅과 우주를 연결했다)으로 완성된다.
그리하여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유아독존'을 피력하신 부처님의 현신으로 탄생한 단군왕검천황자의 화려한 등장으로 반도를 빛내니, 그 당시 천하의 빛이란 빛은 모두 조선으로 모여 반도를 제외한 지구촌은 암흑으로 몇 날 며칠을 세워야 했다.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범우주적 무림의 내공을 태어나자마자 터득하고, 아직 구심침정(口心沈井, 입)을 통하여 '가갸거겨권'도 터득하지 못한 무리들이 지구촌을 배회할 무렵, 이미 대 조선무림국의 지구통치권을 선언한 단군왕검천황자의 위상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구상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 순환이 지배하는 뚜렷한 '사계절정기(精氣)권'이라는 하나의 무도에 네 개의 서로 다른 비협이 존재하는 특이하고 오묘한 무술비권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름하여 '천룡비결록'.
'수행의 공력으로 무장한 도인의 하단전의 기가 보하여 승장혈이라는 신체의 부위에 수(水)가 흐르면 단샘을 이루는데, 이를 옥장금액이라 한다. 그러면 고요한 신체에 열기가 생기고 열기는 체내를 두루 돌아 기공을 최고조로 성장시키는데, 이 상태를 주천화후라고 한다'고 무림의 비기는 한결 같이 전한다.
이 주천화후가 도법과 조우하면 천하의 규화보전도 무기력, 그 자체가 된다. 우리 민족 최초의 무림황제인 단군왕검천황자의 무림비기인 '천룡비결록(天龍秘潔錄)'은 부처님이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터득한 '천상천하유아독존'에 버금가는 지구의 영광이었다.
이러한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범세계적 평화의 근본이념을 받들고 탄생한 대한민주무림제국은 자주독립과 자유민주주의, 무림국에 사는 민중 개개인이 모두 맹주가 될 수 있는 이상적인 무국이자, 창조적인 기틀을 내재한 하나님(절대적 지킴이의 존재)이신 환인천공자의 각별한 보살핌이 천하에 두루 빛나는 동방의 화려강산이다.
이 화려강산은 대 쥬신국, 고조선의 영화를 시작으로 남방의 마한, 진한, 변한으로 다시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을 거쳐 고려, 조선을 두루 돌고 대한민주무림제국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이 제국의 영원무궁을 위해서 등장한 첫 황제 승만박사공은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가 더욱 떨리는 감격스런 음색이 되어, 부드럽게 반도의 대지를 털어내고 박사공이 입은 모시의 틈을 시원하게 타면서 원고의 끝을 흔드는 바람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며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나갔다.
"나, 박사공은 일천구백사십팔년 팔월의 기똥차게 좋은 날, 대한민주무림제국의 탄생과 영원한 번영을 대내외에 선포하며 이 자리에 서 있습네다. 나이가 들어 공력이 쇠잔해진 관계로 인하야 다리가 약간 비틀거리지만 오랜 기간 동안의 '외교독립고양권'과 '민주국가식재권'을 두루 섭렵하고 단군왕검천황자의 '천룡비결권'을 곁눈질한 나의 공력은 우리 민중과 두루 소통하고 다스릴 수 있는 내공이 흥흥합네다."승만박사공의 입에서 '천룡비결권'이 회자되자 순간, 단상 뒤 귀빈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대한무림제국의 시조 임시대한무림국의 주석공자 김구천하도랑이 눈을 떴다.
임시대통의 영주로 임정을 이끌고 갖은 고생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대한민주무림국의 독립을 위하여 멸사하고 봉공한 자신과 독립운동에 매진한 무리단원들이었다. 그러나 개인 자격으로 초라하게 귀국하여 미군정무림청의 굴욕에도 묵묵히 인내해 온 삼 년. 반도의 통일은커녕 베고 누울 삼팔선에 자리 하나 변변히 잡지도 못한 채 맞이하는 반쪽짜리 무림국의 탄생을 보고 있는 자리였다.
1919년 4월, 상해 임정국청사 임시의정원 1차 회의장.
"자, 자, 조용히 하시고, 이제 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대한제국의 국운이 다하였고 비록 타국이나마 어엿한 정부가 세워져 방명 무림계의 도방들께서 참석한 자리에서의 회의니만큼 성실하게 임해주세요. 자, 먼저 제1안건. 국호를 정합세다.""나, 조도전대학을 나와 이곳 상해에서 고려교민침목무림도방을 설립한 석우창안공자 발언하겠습니다. 왕조 무림의 시대는 갔으니, 조선왕조를 대한왕조제국으로 만드신 고종천황자의 유지를 받들면서 민주적인 정부설림의 의지로 국호를 대한민주무림제국(약칭 대한무림제국)으로 할 것을 건의합니다."웅성웅성. 아옹다옹. 떠들썩떠들썩. 시끌시끌. 야 인마 저 인마. 회의 끝. 사회 왈.
"자, 의원님들. 결정하셨죠. 대한민주무림제국으로 하는데, 찬성입니까? 반대입니까? 거수해주십시오. 아니 투표로 할까요?""손들어 의사를 표시하긴 거시기가 좀 뭐시기하니까, 투표로 합시다." 투표 시작. 참석인원 대다수 찬성. 임시대한민주무림제국 국호 통과. 이 국호의 사용은 만세 사건 이후, 1905년 실질적으로 무림제국의 영화를 빼앗긴 15년 만의 대사건이었다.
다시 눈을 뜬 천하도랑은 잠시 연설 중이던 대한민주무림제국의 건국 단상에서 사상 첫 번째 황제의 연설을 경청했다. 중근열사공과 자신이 조선 무림의 저 비속한 중화(中華) 신하국의 비굴주의 편린사상(성리학)의 암흑기에서도 지켜 온, 단군왕검천황자의 '천룡비결록'을 운운하는 박사공을 쳐다보던 김구천하도랑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순결한 무도천하의 세계를 담은 비기를 완전히 터득하기 전에 조선인민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하여 순교한 열사공의 뜻을 고이 간직하며 대대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온 비기를 자신의 '백법비결록'에 녹여 몰래 도량을 갈고 닦은 지 40년.
대한민주무림제국의 건국을 맞아 성실한 황제, 능력 있는 황제, 민중들을 가르치고 이끌고 나가는 공리주의 황제로서의 자신의 진가를 마음껏 발휘하겠노라며 연설하는 승만박사공의 눈발이 하얗게 내린 뒷머리에, 대한 무림의 여명을 위하여 기꺼이 스러져 간 봉길홍구천자(윤봉길), 한국말이 어눌하던 봉창동경대공(이봉창), 석주탐방굴(나석주), 익상체제공(김익상), 수봉밀양청(최수봉) 등의 한결같이 비장하고 맑은 얼굴이 스냅 사진처럼 새겨졌다 사라지곤 하였다.
아, 아름다운 사람들! 김구천하도랑은 박사공의 연설이 끝나가며 자신이 연설할 차례가 오는 것도 아랑곳 않고 대문을 활짝 열어 무더위를 대량으로 방출하는 하늘을 힐끗 바라다보더니 눈을 감았다. 만약 눈을 뜬 채로 있으면 남자의 가슴으로 흐르는 뜨거운 액체가 뜬 눈을 통해 그대로 나올 것 같아서였다.
"참석하야주신 내외귀빈과 경성무림전파국의 단파라디오로 이 역사적인 제국의 선포식을 경청하시는 모든 인민 여러분들은 이제 바야흐로 탄생된 우리 대한무림제국의 영광된 미래를 기대하시고, 비록 반쪽만으로 시작한 무국이지만 곧 한반도의 통일무국 건설이 멀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나 박사공의 일거수일투족과 무도의 정진을 지켜봐 주십시오. 백성 여러분 감사합네다."노구(老軀)의 제국 첫 번째 황제가 준비된 원고를 읽기를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는 공간에 마치 천지창조보다 찬란하고, 제우스가 터트리는 잭팟, 번개보다 더 진하고 밝은 빛의 기운이 단상 주위를 감싸고 아름다운 황토의 대지와 입을 맞추면서 하늘로 승천하고 있었다.
참석한 전 세계 무림의 도방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로 대한민주무림제국의 탄생을 반겼고, 승만박사공의 얼굴에는 여유 있는 미소가 초저녁 노을빛처럼 잔잔하게 깔렸다. 바야흐로 지구촌 무림대국 대한무림제국의 문이 열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