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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한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 가족은 꿈과 희망이 보였어요." -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 신청자

오늘(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입니다. 난민은 원치 않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조건 때문에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 했던 '구조적으로 강제된 이주'의 피해자들입니다.

우리 땅에도 난민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2010년 말 기준, 그동안 누적된 난민신청자가 2915명이나 됩니다. 이를 좀 더 세분하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222명,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은 사람은 136명,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1577명, 자진철회는 556명이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지구상에는 1500만 명의 난민과 2700만 명의 국내실향민 및 난민신청자들이 있습니다.

 <한국, 도심 속 난민들> 표지
<한국, 도심 속 난민들> 표지 ⓒ 전영한
"난민들은 거지가 아니다." - 작가의 말

수년 동안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도시의 난민들을 카메라 뷰파인더로 만나고 있는 작가가 있습니다. "난민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국제법에 따라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소수자의 아픔을 사진으로 대변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있는 작가 전영한입니다. 그의 <한국, 도심 속 난민들>입니다.

작가는 현직 언론사 기자입니다. 고교 시절 민주항쟁 과정에서 사진기자의 활약상을 보고 사진기자를 꿈꾼 '의인'이기도 합니다.

2001년 탈레반 세력들의 미 공격으로 파키스탄 국경지역에서 미국의 보복 공격을 우려해 피난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등을 취재하면서 난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작업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이라크에 취재를 다녀왔고, 2007년에는 동아프리카 지역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우간다 국경지역에서 수단, 콩고, 소말리아, 부룬디, 르완다 난민을 취재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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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난민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2001년입니다. 2010년 말까지 222명이 공식적인 난민의 지위를 확보했는데, 신청자의 고작 9%에 해당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난민 수용률은 인구 1000명당 2명에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권입니다. 이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한국을 찾아왔지만, 한국 땅에서 합법적인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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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지난 시절 수많은 정치적 난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외국 땅에서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고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외국의 난민들이 한국을 찾아옵니다. 이들은 우리만큼이나 이 땅을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여전히 떠돌며 살아갑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또한 '체류자격만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낯선 나라 한국에서 누구 하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도 않습니다. 언어와 문화는 지극히 생소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땅에 적응하고 이 땅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느 콩고 난민의 이야기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인종적, 민족적 갈등이 다른 외국보다 심하다. 흑인과 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회피하는 경우가 있어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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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인 타파(33·가명)와 체롯(27·가명) 부부는 모국 정부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2006년과 지난해 각각 한국에 와 난민지위 인정을 신청했습니다.(2011년 4월 13일자 <한겨레>) 이들은 한국에서 결혼해 지난 3월 6일 경기도 안산에서 남자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한 달이 넘도록 국적도, 공식적인 출생 기록도 없습니다. 혈통주의를 택하고 있는 한국의 외국인 정책 탓에 출생등록을 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외국인은 자국 대사관에 가서 출생 등록을 하면 해당 국적을 얻게 되지만 미첼의 부모는 모두 난민이라서 콩고 대사관을 찾아가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민주 국가라고 해서 한국으로 왔는데 난민의 아이라고 출생등록조차 받아주지 않았다"며 "그러고도 어떻게 민주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동은 출생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이름과 국적을 가져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들의 눈에는 눈물 마를 날이 없습니다

불의와 고통과 인내의 순간을 기록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운명은 사진의 대상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난민들에게 '제도적 힘'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연민과 인간의 끈'으로만 함께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1993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소녀를 노려보는 독수리' 사진을 찍어 1994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이로 인해 세상의 비판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떠난 케빈 카터는 이런 말을 남긴 적 있습니다.

"나는 학살과 송장, 증오와 고통에 대한 줄기찬 기억에 시달렸다.… 굶주리고 다친 아이들과 광분한 총잡이들에 대해서도." - 다니엘 지라르댕, 크리스티앙 피르케르,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251면

"그가 증언자로 개입한 상황에서, 촬영 장면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또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까지 거리를 두어야 할지 말이다. 또 이미지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독자의 개입도 어디까지 해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다니엘 지라르댕, 크리스티앙 피르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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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진으로 난민의 현실을 알리고 대변하고 있습니다. 작가와 난민 간의 거리는 어디까지일까요? 우리는 작가의 눈을 통해 본 난민들을 향해 어떤 시선을 보내야 할까요? 비로소 깨닫게 되는 난민의 현실 앞에서 우리의 가슴은 어떤 색깔의 눈물을 내보여야 하나요?

"정들었던 고향과 가족을 뒤로 한 채 주변국보다 머나먼 동방 끝 대한민국을 택한 난민들, 희망의 손길에 제2의 고향을 꿈꾼다."

작가의 말입니다. 작가의 관점입니다. 작가의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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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이 한국을 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민주주의와 문화, 종교 등 차별과 갈등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난민들은 영어 자판이 아니라 한글 자판을 연습합니다. 아프리카 전통 의상이 아니라 태권도복을 입습니다. 하얀 쌀밥을 먹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그 눈물은 사람의 눈물입니다. 인간의 눈물입니다. 난민의 눈물이 아니라 우리의 눈물입니다. 작가의 눈물입니다. 작가의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존경심'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 도심 속 난민들>은 공식 출간된 사진집이 아닙니다.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 비주얼저널리즘전공 석사과정의 졸업논문으로 제출된 사진집임을 적어둡니다.



#난민의 날#전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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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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