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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동골상여소리 제33회 현산문화제에서 시연된 양양 수동골상여소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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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길을 가야만 하는데, 길이 갑자기 뚝 끊어져 있다면 어떻게 건너야 할까요? 혼자서 걷는 길이라면 펄쩍 건너뛰거나 빙 돌아서 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스무 명쯤은 되는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자박자박 발맞추며 걸어가다 갑자기 뚝 끊어져 있는 길을 만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런 길, 여럿이 상여를 메고 가다 뚝 끊어진 길을 협동과 지혜로 건너는 상여행렬을 봤습니다. 펄쩍 건너뛰는 것도 아니고, 끊어진 길을 피해 빙 돌아서 가는 게 아니라 흐르는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건너는 장면이었습니다. 발과 소리를 맞추며 산길을 오르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던 여느 곳에서의 상여행렬들처럼 수수께끼를 차례차례 풀 듯 건너지 못할 것 같았던 끊어진 길을 유유히 건너고 있었습니다. 

2010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양양 수동골상여소리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강원도 양양읍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남대천 둔치에서 펼쳐지고 있는 양양 현산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가지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었지만 2010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양양 수동골상여소리를 직접 보고, 듣고 싶어서 갔습니다.

대통령상을 수상한 양양 수동골상여소리
 대통령상을 수상한 양양 수동골상여소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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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에 앞서 관을 앞에 놓고 곡을 하고 있는 샂에들
 발인에 앞서 관을 앞에 놓고 곡을 하고 있는 샂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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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소리를 매기는 요령잡이의 선소리에는 다른 지역의 상여소리에 비해 백발가에 나오는 구절들이 또렷하게 많이 인용되고 있었습니다. 곡조 또한 흐느끼거나 신세타령이라도 하듯 길게 늘이고 있어 더 없이 처량하게 들렸습니다.

꽃이라도 시를 면은 오던 나비 도로 가고  어~허~ 어~허~ 어라기 넘자 어~허~
나무라도 병이 들면 눈먼 새도 아니 오고  어~허~ 어~허~ 어라기 넘자 어~허~
비단옷도 떨어지면 물걸레로 돌아가고     어~허~ 어~허~ 어라기 넘자 어~허~
좋은 음식 쉬어지면 수채 구멍 찾아가니   어~허~ 어~허~ 어라기 넘자 어~허~

제한된 시간동안 시연되는 상여소리였지만 여느 곳에서 시연되던 상여소리와는 달리 수동골상여소리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여느 곳에서 시연되던 상여소리에서는 대부분 상여행렬만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수동골상여소리에는 상여행렬에 앞서 맏사위를 달구던 풍습 등이 주마등처럼 재현되었습니다.

상여가 나가기 전에 상여꾼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있는 맏사위
 상여가 나가기 전에 상여꾼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있는 맏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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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양양 현산면 수동골 상여와 상여소리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양양 현산면 수동골 상여와 상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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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사위와 마주 앉은 상여꾼들이 술을 얼마나 낼 것인가를 놓고 흥정을 합니다. 흥정이 여의치 않은지 무릎사이에 나무를 넣어 고통을 가합니다. 이도 여의치 않은 가봅니다. 나무를 세워 가로 맨 나무에 양팔을 벌려 매단 맏사위와 흥정 아닌 흥정이 다시 시작됩니다. 얼마만큼의 술을 내겠다고 말해보지만 그 정도의 술로는 양이 차지 않는지 상여꾼들은 사위를 매단 끈을 더 바짝 조여 매답니다.

바짝 매달린 맏사위가 고통스러워하며 얼마만큼의 술을 더 내놓겠다고 하니 그제야 막걸리 잔을 나누고 상여행렬이 시작됩니다. 상여행렬을 뒤따르는 상제들의 곡소리가 너무도 애절합니다. 행사장에서 펼쳐지는 시연이 아니고 상제가 된 할머니가 진짜 부모님을 여읜 서러움, 당신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단함까지 토해 내듯 서러움이 철철 넘치게 곡을 해대니 두 눈은 촉촉해지고 가슴에서는 뭔가가 울컥합니다.

현재도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수동골상여는 길었습니다. 그 정도의 길이라면 상여꾼들이 4줄로 멨을 텐데 수동골상여는 동해의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상두꾼들이 한쪽에 8명씩만 메고 있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마지막 가는 길

살아있는 동안 겪어야하는 인생길이 녹록지 않듯 죽어서 가는 길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난 상여가 못가겠다면 버팁니다. 상제들이 산이라도 깎아 내릴 듯이 절을 하고, 구름이라도 움직일 듯이 애끓는 소리로 곡을 합니다.

비탈지고 미끄러지는 산길을 넘어가는 상여행렬
 비탈지고 미끄러지는 산길을 넘어가는 상여행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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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하게 올리는 절과 가슴을 쥐어 짜내는 듯한 곡소리는 언덕조차 낮추는가 봅니다. 뒷걸음질을 치던 상여꾼들이 발을 옮기고, 오르지 못하던 상여가 가파른 언덕길로 주춤주춤 올라섭니다. 

오르막길이 나오면 힘겹고, 내리막길을 만나면 조심스럽습니다. 앞서 매기는 선소리에 마음 맞추고, 이어받는 후렴소리로 발을 맞추니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그냥 걸어야하는 길이 됩니다.

힘겹게 오르고 조심스럽게 걸어야하는 울퉁불퉁한 산길을 건너고 나니 좁디좁은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한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좁은 외나무다리, 조심스럽게 상여를 멘 두 사람이 걷기엔 불가능해 보이는 외나무다리로 상여꾼들이 올라섭니다.

부챗살을 이루며 건너는 외나무다리

몸을 일직선으로 하여 똑바로 걸었던 평소와는 달리 상여를 멘 상여꾼들이 양쪽에서 외나무다리로 발을 모으고, 몸을 옆으로 뉘어 벌리며 균형을 잡으니 두 사람의 상여꾼이 V자를 그리며 걸어갑니다. 외나무다리를 꼭짓점으로 활짝 펼친 부챗살처럼 비스듬하게 대열을 갖춘 상두꾼들이 조마조마한 발걸음으로 외나무다리를 건넙니다.  

V자 대형을 이루며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상여행렬
 V자 대형을 이루며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상여행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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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나마 균형이 깨지면 상두꾼들이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지는 것은 물론 망자를 모신 상여까지도 내동댕이쳐지듯 한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행렬입니다. 

상여행렬을 볼 때마다 협동과 조화, 지혜와 믿음을 실감하는 장면입니다. 힘을 모으지 않으면 건널 수 없고,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장면입니다. 낭떠러지로 내 몸을 뉘고 걸어야만 가능한 행보이니 지혜와 믿음이 없으면 절대 꾸릴 수 없는 협동과 조화, 지혜와 믿음으로 선조들이 피워낸 무형의 가치입니다.

외나무다리를 건넌 상여행렬이 끊어진 다리를 만났습니다. 혼자라면 펄쩍 건너뛰고, 야트막한 물길이라면 덤벙덤벙 발 적셔가며 건너면 되겠지만 조심스럽게 모셔야 할 망자를 여럿이 모시고 가는 상여행렬입니다.

끊어진 다리 어떻게 건너나 봤더니

끊어진 다리를 만나니 앞잡이의 신호에 맞춰 상여가 멈춰섭니다. 상여 맨 앞쪽을 메던 상여꾼들이 뒤로 물러서며 상여꾼 6명이 장강(상여 틀을 구성하는 긴 막대로 장채라고도 함) 밑으로 어깨를 들이밀어 둘러멥니다.

끊어진 다리를 건너는 상여행렬
 끊어진 다리를 건너는 상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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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상여꾼들이 상여 앞부분을 굄돌처럼 괴고, 상여꾼들이 뒤로 물러서 생긴 여분의 장강과 맞닿아 있는 횡강에 길잡이가 매달립니다. 상여에 매달린 길잡이를 먼저 건네고, 다시 뒤로 물러선 상여에 상여꾼 2명이 매달려 건너옵니다.

상여 앞부분을 지탱한 2명의 상여꾼을 건네니 뒤 이은 상여꾼들은 자연스레 장채에 매달려 끊어진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앞뒤로 오가더니 유유하게 끊어진 다리를 건너는 장관을 연출하니 박수가 쏟아집니다.

끊어진 다리까지 다 건너니 어느새 산소를 만들어야 하는 묘지에 도착합니다. 상여꾼들이 빙 둘러서니, 달구질이 시작됩니다. 땅을 쿵쾅쿵쾅 다져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때문인지 달구질소리는 여느 곳의 달구질소리처럼 빠르고 신났습니다.

끊어진 다리 이렇게 건넜습니다.
 끊어진 다리 이렇게 건넜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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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흐르는 남대천 물에 푸푸 거리며 세수를 하고나니 뜨끈뜨끈했던 몸이 시원합니다. 가슴을 부풀리며 맘껏 심호흡을 하다 보니 어느새 대관령 터널입니다.

대관령터널을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전통'이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해 봤지만 점점 아리송해지니 알 수가 없습니다. '전통'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해보니 찾아보니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관습·행동 따위의 양식'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수동골상여소리, 기록으로 계승되는 전통으로 보존되길...

수동골상여소리 시연이 끝나고 수동골상여소리를 지도, 연출하고 있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시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지시를 하듯 조금 두드러지게 행사를 조절하고 있는 분이 있어서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수동골상여소리를 지도, 연출하고 있는 누구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수동골상여소리 시연에서는 상여행렬 순서가 공포(그곳에서는 수건이라고 하고 있었음), 만장, 혼백을 싣는 요여 그리고 상여, 상주와 복인들 순서였습니다.

이에 어떤 근거나 전문이 있어 상여행렬을 그렇게 구성하였는지가 궁금하다고 질문을 하니 이 지역의 전통이라고만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주자가례에 나오는 순서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상여행렬 순서가 이렇게 정해진 사연이나 기록을 들을 수 있느냐고 여쭸습니다. 그랬더니 뭔가를 착각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주자가례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시는 건지 주자가례가 지방에 따라 다르듯이 양양지역에선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결국 상여행렬을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고, 단지 생존해 계시는 어르신들이 기억에 의존해 전해주는 구전에 따르는 전통(?)이라고 하였습니다.

보편적으로 긴 수동골 상여, 한쪽에서 8명씩 16명이 메는 상여
 보편적으로 긴 수동골 상여, 한쪽에서 8명씩 16명이 메는 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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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행하고 있는 의식, 더더구나 수십 수년 전부터 전해지는 전통의식이나 의례에는 무시해도 좋을 것 같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다 이유가 있고 설명이 뒤따릅니다. 그러기에 전통이란 미명만으로 아무렇게나 뒤바뀌거나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게 우리의 전통입니다. 구전이나 기억에만 의존하는 전통에 의문이 제기되면 고증을 거쳐 확립하고 그 근거나 기록을 확보해야 합니다.

기억과 구전으로만 계승되는 전통이라면 누군가가 깜빡하는 기억으로 뒤죽박죽으로 전한 전통일 수도 있습니다. 술 한 잔 마시면 노랫가락쯤 뒤바꿔 흥얼거릴 수 있듯이 기록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상여행렬 순서도 뒤바꿔 기억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지역의 특색과 사연이나 사정이 담긴 전통이야 고스란히 보존되고 계승되어야 하지만 무소불위로 내세우는 전통이라는 단어로 고집되는 전통이라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제자리를 찾을 때에 전통으로서의 가치가 더더욱 오롯해지리라 생각됩니다. 


태그:#수동골상여소리, #현산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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