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휴대)전화가 없다보니 연락하는데 애를 먹었다. 향토 체육 역사를 담은 책자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차례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통화는 쉽지 않았다. 포기하려고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는데, 다행히 듣고 싶은 목소리가 들렸다.
최정규(60) 시인 이야기다. 최근 <통영체육사>를 펴냈다. 950쪽 분량에 일제강점기터 통영의 체육 역사를 담았다. 통영체육 100년의 역사가 담겼다. 그것도 통영시나 통영체육회의 지원 없이 최정규 시인이 자비로 발간했다.
경남 통영시 광도면 우동리. 최정규 시인이 사는 동네다. 통영 시내에 살다가 10여 년 전 아파트를 팔고 옮겼다고 한다. 위채와 아래채가 나란히 있는, 전형적인 농가다. 마구간이었던 아래채를 개조해 방을 넣고 응접실로 쓰고 있다. 마당에는 잔디가 푸르다. 장독대 옆에는 붉은 앵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손전화, 텔레비전도 없는 시인... 새마을운동 덜된 동네 찾아돌담은 옛날 모습 그대로다. 담쟁이 넝쿨이 돌담과 집을 칭칭 감고 있다. 최정규 시인다운 집이다. 시인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마을 여기저기에는 돌담을 뜯어내고 시멘트로 새집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어서 그런지, 최정규 시인의 집은 더 돋보였다. 그는 "새마을운동이 덜된 동네를 찾아들어왔는데, 잘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정규 시인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다. 그는 카드도 쓰지 않는다. 바깥소식은 주로 라디오를 통해 듣는다. 손전화를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크게 일을 안 벌이니까 꼭 필요함을 못 느낀다. 내 범주 안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규 시인의 <통영체육사>는 새마을운동이 덜된 동네에서, 손전화도 없는 속에 발간되었다. 이 책에는 새마을운동보다 훨씬 오래 전인 일제시대 이야기부터 담겨 있다.
그는 "통영은 항구가 있어서 그런지 일제시대부터 개화가 빨리 됐다. 통영의 근대 체육은 1908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 체육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 때도 있었다"면서 "옛날 자료를 모으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옛 사람들을 만나 녹음도 하고 해서 자료를 꾸준하게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최정규 시인은 체육인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유도를 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통영시체육회 사무국장을 오랫동안 해왔다. 1985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체육회 살림살이를 도맡아 해왔다.
이런 연유로 체육역사를 정리했던 것이다. 통영체육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통영시사>에 일부 들어가는 정도였다. 그는 "통영 체육 역사를 정리한 책이 아예 없었다"면서 "<통영시사>에 부분적으로 들어간 것이었는데, 원고 매수도 제한이 있어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책자를 준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통영시, 체육회로부터 재정 지원 받지 않아... 객관적 서술 위해"<통영체육사>는 최정규 시인의 자비로 발간되었다. 최 시인은 "통영시나 통영체육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다. 지원을 받는다면 용역을 주는 측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없다.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자비로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는 통영시장이나 국회의원, 시의회 의장의 축사도 없다. 최 시인은 "시장과 체육회장의 글을 받을 받지 않았다. 체육역사를 정리한 내용 자체로 평가를 받고 싶었다. 향토 체육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발간 비용을 물었더니, 최 시인은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지 않았다. 수천만원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준비하는데 들어간 비용이나 원고 관련 비용을 빼고, 순수 제작 비용만 해도 많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통영체육사>는 한정 발간인데, 300부만 냈다.
향토 체육사가 귀중하다는 것. 그는 "체육회 사무국장을 해보니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마다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스포츠가 주로 현장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통영체육사>는 '통영체육의 발자취' '근대체육의 태동' '일제 강점기의 통영 체육' '8․15광역 이후 통영 체육' '오늘날의 통영 체육' '통영 체육의 100년을 돌아보며' '경기 종목별 활동' 등 모두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 책에 대해, "통영 체육의 어제와 오늘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으며, 페이지마다 수많은 통영 체육인들의 땀과 눈물, 영광이 배어 나오고 있다"며 "내일의 통영 체육을 위해서라도 이 기록물은 길라잡이로서 크게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정규 시인은 "일제시대 체육 관련 기록은 말로만 전해져 왔는데, 당시 신문이나 기록을 찾아내서 복원했다"며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 정도로 해놓으면, 다음 세대들이 더 연구하면 일하기가 쉬울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무에서 시작했고, 돌 하나 놓은 기분이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체육에 대해, 그는 "다이시 체육운동은 보이지 않는 항일운동이었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일본 선수와 경기를 벌이면 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부분들이 통영체육의 맥을 이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축구 국가대표 선수 3명이 통영 출신이기도그는 100년 통영 체육에서 가장 빛났던 종목․시기로 1970년대 축구를 꼽았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가 국제경기를 벌일 때 선수 11명 가운데 통영 출신이 3명이나 한 그라운드에서 뛸 때가 있었다는 것. 김호·김호곤·고재욱 선수가 그들이다.
최정규 시인은 "통영 축구는 해방 이후부터 크게 활성화 됐다. 사람들이 관심이 많았다. 국제경기 때 11명 선수가 뛰는데 3명이 통영 출신이었다. 그야말로 베스트 선수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며 "당시 그 선수들이 국제경기를 할 때면 통영 분위기는 굉장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통영 출신 국가대표 선수는 30여 명에 이른다는 것.
다음으로 카누 천인식 선수를 꼽았다. 그는 통영 출신 첫 올림픽 출전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리고 그 선수는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3관왕을 차지했다. 천인식 선수는 장애인이지만 올림픽에 출전하고,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르기도 했던 것.
최정규 시인은 "카누는 앉아서 경기를 하다보니 장애인도 출전할 수 있었다"면서 "그는 통영에 있는 작은 섬인 '만지도' 출신이다"고 소개했다.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느냐고 묻자 최정규 시인은 "향토 체육사에 돌 한 덩어리 놓은 셈이다"며 "그런 거 뭐하려고.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오로지 책으로 평가받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정규 시인은 시집 <터놓기 만나는 날>, <통영바다>, <돌지 않는 시계 바늘>, <둥지 속에서> 등을 펴냈다. 유치환․유치진 등 통영 출신 친일문인들의 기념사업 반대 운동에도 앞장서온 그는 "앞으로 자료를 모아 통영의 문화예술 관련 책자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