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0일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81번지에 소재한 한옥. 평소에는 한정식을 하는 옛집에서 수원안택굿 한마당이 벌어졌다. 이날 굿을 주관한 남무(男巫) 고성주(남, 55)는 4대째 강신무의 맥을 잇고 있는 흔치 않은 무가(巫家)의 사람이다. 오전에 준비를 마치고 오후 2시경부터 시작한 안택굿은 밤 12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예전 같으면 밤새 굿을 해야만 하지만, 요즈음은 주변에서 밤늦게까지 굿을 하면 신고가 잦아 12시를 넘기지 않는다. 이날의 안택굿은 경기도 굿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그동안 쇠퇴되어 가고 있던 경기도 강신무굿을 재조명 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걸판진 수원 안택굿 한마당
원래 수원은 강신무들 중에서도 큰 만신이라고 불리는 만신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이다. 이렇게 큰 만신들이 수원으로 모여 든 것은, 한양 성중(城中)에서 축출을 당해 성 밖으로 쫓겨난 강신무들이 노량진에 자리를 잡아 '노들만신'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만신들이 수원부가 있는 수원인근에 상권이 크게 번창하자,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맥을 이었다고 본다.
수원에는 전설적인 많은 만신들이 자리를 잡아 지역의 독창적인 굿을 만들어 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굿은 일 년간 집안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안택굿'이었다. 이러한 안택굿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고성주가 수십 년 만에 '수원안택굿'을 재현해 낸 것이다.
방마다 가득 찬 사람들은 연신 웃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굿판으로 빠져든다. 상마다 먹을 것을 가득 차려 놓고, 술 한 잔에 온갖 시름을 털어버리는 자리이다. 우리의 굿은 '열린 축제'라고 한다. 누구나 다 그 자리에 참여를 할 수가 있으며, 굿판은 항상 문이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입소문을 타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대감이 따라주는 술 한 잔에 웃고, 울고 난리법석이다. 사람들은 점점 굿판의 흥에 젖어들어 가고, 나중에는 춤까지 추어가면서 굿판을 즐긴다. 그야말로 걸판진 굿판이다.
도깨비대감이 납시다안택굿은 먼저 '바깥굿'이라고 하는 대문 앞에서 지신밟기로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모든 부정을 가시는 바깥부정을 치고 집으로 들어와 안당고사라고 하는 성주고사를 드린다. 성주고사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을 문 밖으로 나가게 하고 삼현육각을 울려 굿청을 정화시키는 '주당물림'을 한다.
주당물림이 끝나면 본 굿이 시작이 되는데, 굿의 순서는 앉은부정 - 본향(산, 본향, 군웅, 산대감) - 안당제석거리(불사, 제석, 칠성, 중상바라) - 부인호구거리 - 대신거리 - 대감거리(양반, 성주, 몸주, 텃대감, 업대감) - 조상거리 - 안택성주거리 - 창부거리 - 서낭거리 - 터굿 - 뒷전(걸립, 지신, 맹인, 수비영산)의 순으로 진행이 된다. 이 많은 굿의 제차 중에서 본향(김진섭), 부인호구거리(이지선), 대신거리(김은실)을 뺀 모든 절차는 고성주가 맡아했다.
대감굿을 하던 무격이 갑자기 두 자루의 신칼을 들고 뛰더니 쌀 말 위로 성큼 뛰어오른다. 도깨비 대감이 올랐다. 수원안택굿에서는 도깨비대감이 접신이 되면 쌀 말 위로 오른다. 안택성주거리로 접어들자 대들보에는 소창 한 필이 걸려 마당으로 늘어진다. 징을 앞에 놓은 고성주와 성주대를 잡은 김은실이 마주 앉는다. 대가림을 하기 위해서이다.
'대가림'이라는 생소한 말에 사람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성주굿에서는 먼저 성주대를 잡고 성주축원을 하면, 성주대가 성주를 모실 곳을 알려준다.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김은실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성주가 집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 성주를 모셔들였다. 성주를 모시고 나면 굿판에 모인 사람들이 소리에 맞추어 소창을 잡고 춤을 춘다. 지신밟기를 하는 것이다.
"아니 이런 굿을 왜 안 하는 것이여"시간이 많아 흘렀지만 집 안에는 굿의 재미에 름뻑 빠진 사람들이 일어설 줄을 모른다. 장고잽이 변남섭과 고성주가 대문간으로 간다. 뒷전을 하기 위해서이다. 뒷전은 굿판에 모여 든 모든 잡귀들을 잘 풀어먹여 보내는 거리이다. 그래야 집안이 편안해진다는 것. 뒷전에서 맹인의 차례가 오자 고성주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온다. 맹인굿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예전에는 이 뒷전은 '뒷전무당'이라고 해서 뒷전거리만 전문으로 하는 무당이 따로 있었다. 굿판의 절정을 볼 수 있는 거리이다. 굿을 잘 마무리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재담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봐 이 집 사장. 이런 굿을 왜 안 보여 주었나.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굿판에서 연신 막걸리를 마시며 즐거워하던 어르신의 푸념이다. 10시간여를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던 수원 안택굿 한마당. 굿이 끝난 시간은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돌아갈지를 모른다.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 우리의 걸판진 축제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