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53년 전 겨울, 아버지와 사시던 단칸방에서 저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이후 세월은 저벅저벅하여 저도 나이가 들어 사랑하는 아내와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했기에 보증금조차 없는 단칸방의 월세에 들어갔지요.
반 지하의 허름한 누옥이었는데 바로 옆방의 아저씨는 자개농 작업을 하는 이였습니다. 요즘이야 자개장롱이 별 인기가 없으나 예전엔 안 그랬죠. 더욱이 자개장롱은 소위 먹고살만한 사람의 축엔 들어야 겨우 장만할 수 있는 그런 살림살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자개농을 하는 아저씨 때문으로 온종일 먼지가 부석부석한 바람에 출산을 앞둔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더군요. 그래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 아내는 저의 분신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데 당시에도 방은 달랑 하나였죠.
4년 뒤에 살던, 그 때도 달랑 하나 뿐의 방에서 아내는 둘째인 딸을 순산했습니다. 이후 약간의 여유가 되기에 방이 두 개인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 3년 가까이를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미루나무처럼 쑥쑥 자라는데 반해 그러나 무지렁이인 저의 생업은 늘 제자리걸음 뿐이었죠.
그 바람에 저는 지금껏 방이 두 개인 집의 울타리와 경계를 벗어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서부터는 경제적으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져 늘 그렇게 대략난감의 나날이었죠. 하여간 자린고비로 노력을 경주한 까닭으로 어찌어찌 두 아이를 모두 대학까지 마치게 했습니다.
내처 매달 피같이 아까운(!) 월세를 지불해야만 했던 월세의 방도 전세로 치환했지요. 제가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 집은 단독으로 구성된 한옥이자 누옥입니다. 원래는 방이 세 개인데 옆방은 집 주인이 따로 월세를 주어 2년 가까이를 살았습니다.
여하튼 작년에 월세에서 전세로 바꾸노라니 집 주인이 그러더군요. "옆방 사는 이가 이살 가면 그 방까지 다 써." 옆방 아저씨가 그제 마침내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니까 이는 줄곧 방 2개짜리서만 살았던 이 가난한 필부에게 있어선 금세 방 하나가 도깨비방망이만치로 '뚝딱~' 더 생긴 셈이었죠!
사흘 째 쉼 없이 지긋지긋하게 폭우가 내리던 어제 때마침 와 준 아들과 처조카와 함께 안방에 있던 육중한 무게의 장롱과 마루의 김치냉장고 따위를 죄 옆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니까 어젠 그야말로 '이사'를 한 셈이었죠.
그렇게 정리를 하고나니 여간 뿌듯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 제사를 지낼 적에도 공간이 부족해서 겨우 절을 하던 것도 '안녕'이구나." "그러게요!" 아들은 누가 센스쟁이 아니랄까봐 '이삿짐'을 얼추 옮길 즈음엔 중국집으로 전화를 해 이것저것 맛난 음식만을 모아 + 모아서 시켰습니다.
"이사하는 날엔 이런 음식도 먹어줘야 한다고요." "그런가? 그럼 오늘 같이 좋은 날에 술이 빠지면 안 되지!" 저는 냉큼 달려가 소주를 다섯 병 사 왔지요. 이제 딸이 집에 오면 안방을 내주고 저는 거실로 '쫓겨나' 새우잠을 자야 했던 것도 추억의 정류장으로 보낼 수 있을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