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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지음 도서출판 오래. 초판 2011년 6월 20일
▲ 박도 지음 도서출판 오래. 초판 2011년 6월 20일
ⓒ 도서출판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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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제비꽃>이라는 장편소설 한 권이 도착했다. 저자 박도 선생과의 친분 덕분에 받은 책이다.

제비꽃이라는 제목과 이 소설의 관계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이럴 땐 보랏빛 제비꽃이라도 한번 보고 나서 책을 읽어야 맛일 터인데, 장마철에 접어든 지금 제비꽃은 꽃의 흔적을 버리고 씨방과 이파리만 남겨두었다.

내년 봄이나 되어야 보랏빛 제비꽃을 볼 수 있을 터이다.

세상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구나

<제비꽃>의 무대는 1960년대 서울거리, 검은 교복과 교모, 그 시절 고교생들의 이야기와 현재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영혼의 대화가 모자이크 되면서 사나이들의 깊은 우정을 그리고 있다.

"글쎄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구나."

주인공 조현이 멧새와 대화하는 내용이다. 그것은 하나의 복선으로 조현의 절친한 친구였던 장지수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대화로 이 소설이 전개될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조현,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휴학하고 신문배달원이 되었다. 그의 짝이었던 지수는 고무신을 신고 절룩이며 신문배달을 하는 조현에게 목 자른 워커를 건네고, 그런 인연들이 이어지면서 절친한 친구가 된다. 10년이 지나고 나서 조현은 모교의 교사가 되고, 지수는 무역회사사원이 되어 한 번 만나고 소식이 끊겨버렸다. 다시 30년이 지나고서 조현이 수소문하여 장지수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도록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친구의 자격도 없고, 지난날 친구였다고 말할 수도 없어."

이수영 박사에게 장지수의 죽음 소식을 듣고 조현이 되뇌는 말이다.

나의 이야기

고교를 졸업하고 서른의 나이로 접어들 무렵, 절친하던 친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친동생처럼 친하던 후배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그렇게 한 달여 만에 친했던 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고등학교 시절에 친했던 친구를 찾고 싶었다.

그 친구는 경희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던 친구였다. 대학시절 막노동판에서 잠시 만난 것이 그와 나를 친하게 엮어주었다. 지금쯤은 시인 혹은 소설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친구를 찾기 전에 도착한 동문주소록에는 그가 이미 5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1982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고교시절과는 적어도 30년이라는 세월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

죽은 친구의 영혼을 찾아 뉴욕까지

조현은 친구 장지수의 뼛가루가 뿌려졌다는 허드슨 강 언덕 록펠로우 전망대까지 찾아가 추도식을 한다.

"뉴욕은 네 계절이 다 아름다워. 봄의 꽃들,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모두 멋있어. 하루 종일 숲 속을 거닐어도 지루한 줄 모르지. 내가 너를 보살필 수 없지만 자주 오너라. 특히 허드슨 강 언덕에 제비꽃이 필 때가 네 계절 가운데 가장 아름답지."
"너 아직도 제비꽃 좋아하는구나."
"그럼, 나의 첫 사람이었는데……."
"남자는 첫 여자를 잊지 못하고 여자는 마지막 남자를 잊지 못한다더니……."

조현이 알고 있던 장지수와는 달리 그는 가정불화로 매우 불우하게 살았다. 그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지수는 외국으로 떠났고, 고교시절부터 사귄 여자 친구 강숙자가 미국까지 찾아왔으나 매정하게 돌려보냈다. 장지수는 이복동생을 미워한 가족들의 죄를 자신이 속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장지수는 연애할 때 사랑하던 여인 강숙자를 '제비꽃'에 비유를 했다. 조현과 장지수의 영혼의 대화를 통해 장지수는 30년 만에 만난 조현에게 강숙자를 찾아 자기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었다는 말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제비꽃>은 그리하여 조현이 1960년대 고교가 있었던 인사동 근처에서 강숙자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조현과 장지수 모두 아픈 가족사로 가슴앓이를 하며 살았다. 이들은 마침내 '용서가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라는데 공감을 하면서 응어리진 한을 내려놓는다.

에필로그

이 소설에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0년대 서울거리와 그 시절 고교생들의 이야기가 아련한 추억이 되어 각인되어 있다. 나는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학교가 강남으로 옮기고 나서 그곳에서 고교시절을 보냈다.

경북 구미에서 서울로 올라온 낯섦만큼이나 시험을 봤더라면 감히 들어갈 수 없었을지도 모를 명문고(?)를 이른바 뺑뺑이로 들어간 나도 그만큼의 낯섦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른바 강남 주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나마 절친했던 강남 비주류(?)에 속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먹고사는 일에 치여 지금도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진한 사나이의 우정을 나눌 시간도 없이.

<제비꽃>을 읽고 '나는 왜, 이런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불알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술에 잔뜩 취했다.

"야, 너 어디냐? 내가 그리로 달려가마."

내가 있는 곳을 말해주자 전화기 너머로 "아저씨, 시속 140으로 ○○역으로! 고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얼마 전 퇴임을 하고 사업하는 친구다. 참 힘든가 보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전화를 하니 너무 취해서 집으로 들어갔단다.

"미안해, 힘들면 네 생각이 나. 그래도 인마, 넌 목사잖아."
"인마, 나도 힘들 때 많거든."

사나이의 우정 혹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제비꽃>이다.


제비꽃

박도 지음, 오래(2011)


#박도#제비꽃#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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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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