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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겉표지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겉표지 ⓒ 비채
젊은 여성이 포르노영화를 한 편 찍고 사라졌다. 그럴 경우 주변의 반응은 어떨까. 그 여성의 가족들은 열심히 그녀를 찾아볼테고, 알고 지내던 지인들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안부를 걱정할 것이다.

어쩌면 포르노영화에 출연한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스스로 모습을 감췄다고 짐작할 수도 있다. 반면에 그 영화를 제작한 회사에서는 배우 한 명이 사라져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포르노영화에 출연하고 윤락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수는 아주 많다. 출연을 원하는 여자들이 줄을 서있기 때문에 한 명이 사라져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물며 그 바닥에서는 배우가 아니라 모델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모델의 가족들도 그녀를 찾지 않을지 모른다. 포르노영화에 출연할 정도라면 오래전에 가족들과는 연락을 끊고 살았을 수도 있으니까.

실종사건을 의뢰받는 여탐정

기리노 나쓰오의 1994년 작품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기리노 나쓰오 저, 비채 펴냄)에서 주인공인 여탐정 무라노 미로는 이렇게 사라진 여성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의뢰인은 혼자서 출판사를 꾸려가며 '성인비디오의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와타나베 후사에다.

와타나베의 모임은 성인비디오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지켜나가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 달에 300편 이상의 성인비디오가 생산되는데, 여배우들은 출연료 미지급이나 임신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와타나베가 무라노 미로를 찾아온 것도 비슷한 문제 때문이다.

<울트라 레이프 이제 나도 자기부정>이란 비디오의 내용이 명백한 집단 강간이며 거기에 출연한 여배우는 이를 원하지 않았는데도 폭력에 의해서 할 수 없이 촬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와타나베는 이 비디오에 출연한 '잇시키 리나'라는 이름의 여배우를 찾으려하지만 도저히 행방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리나를 찾아달라고 미로에게 의뢰한다.

미로는 와타나베의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낮은 보수에 의뢰를 받아들이고 일을 시작한다. 물론 이런 일은 쉽지가 않다. 미로는 혼자서 영화기획사를 찾아가서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오히려 곤란한 지경에 놓인다. 영화사의 직원들은 미로를 강간하려는 듯이 공포분위기를 조장하고, 그녀의 집 현관 앞에 내장이 튀어나온 고양이 시체를 놓아두기도 한다.

미로는 이런 협박속에서도 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던 도중에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된다. 여배우 리나는 이후에 <학문 그리고 자살의 권유>라는 비디오에 출연해서 칼로 손목을 긋고 자살하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그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로 죽었다는 것이다.

여배우 실종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은 '여탐정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이다. 전편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에서 미로는 친구가 실종된 사건에 휘말려들어가서 얼떨결에 탐정 노릇을 하게 된다. 반면에 이번 편에서는 번듯하게 탐정사무소를 개설해서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한다.

하지만 초보탐정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미로는 수사를 시작하면서 몇차례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에는 탐정이 겪어서는 안될 최악의 치욕을 맛보기도 한다. 미로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다. 미로의 아버지는 예전에 야쿠자의 조사원으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은퇴했지만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미로도 탐정이 되었는지 모른다. 미로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씨앗을 여기저기 뿌려놓으면 정보는 저절로 들어올거다'라는 식의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직접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날아와서 수사를 도와주기도 한다. 시리즈의 전편에서 여탐정 미로가 탄생했다면, 이번 편에서는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배우와 얽힌 엽기적인 사건도 흥미롭지만 미로가 진화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커다란 재미다.

덧붙이는 글 |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기리노 나쓰오 지음 / 최고은 옮김. 비채 펴냄.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비채(2011)


#기리노 나쓰오#무라노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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