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다. 휴대폰으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자가 들어왔다.
"'시민들은 시의원을 무엇으로 평가할까'요? 시의원 1년 평가를 준비 중인데 생각하시는 평가항목이나 기준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대전시의회 박정현 의원(민주·비례대표)이 주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였다. 잠시 고민 했다. 어떤 지방의원이 좋은 의원일까? 주민의 실생활에 시급한 조례를 잘 만드는 의원? 집행부를 잘 감시하고 견제하는 의원?
시민들로부터 자문을 구한 박 의원은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박 의원과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마침 박 의원이 지방의원으로 일한 지 1년 째 되는 날(6월 30일)이었다. 지방자치가 본격 시행된 지 20주년이기도 했다.
박 의원은 대전지역 시민운동진영에서 이름을 날려 왔다. 자그마치 23년간을 시민운동가로 일해 왔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창립멤버이기도 한 그는 시의원 배지를 달기 직전 직함은 이 단체의 사무처장이었다.
시민운동가에서 시의원으로... "'공존'의 원리 고민 중"
시민운동가에서 지방의원으로 탈바꿈한 1년은 어떤 느낌일까.
"시민운동과 지방의원 활동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시민단체의 주된 활동이 정책비판과 대안제시, 시민참여 유도라고 볼 때 지방의원도 집행부 견제와 감시, 주민과의 소통이 주된 일과예요. 다만 시민 운동할 때는 주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난 반면 시의원을 하고부터는 만나는 사람들이 무척 다양해 졌어요. 처음엔 생경한 느낌이 컸어요. 지금은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의 '공존'의 방식을 고민해요."
예전 같지는 않지만 시민운동은 '권력의 제 5부'라고 할 정도로 역할과 영향력이 크다. 박 의원도 시민운동가로 그 전성기를 누렸다. 시민들은 시민운동단체 임원과 지방의원 중 어느 쪽이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몇 달 전 모 방송사에서 대전원자력연구소 연구용 원자로와 관련 토론자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런데 며칠 후 대전환경운동연합 고은아 사무처장이 나오기로 했다면서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더라구요. 'NGO권력이 의회 권력을 앞서는 구나' 생각했죠.(웃음) 실제로는 시민들이 지방의원에 거는 기대치가 더 높은 것 같아요. 시민단체에 있을 때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요구를 해와요.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시민운동가로 본 대전시정과 시의원으로 본 대전시정에 대해서도 물었다.
"의원 배지 달고 몇 달 시간이 지난 후 부터 시청 관계자들로 부터 가장 많이들은 얘기가 뭔지 알아요? '세게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합리적 이더라'는 말이었어요. 얘기 들으며 '내가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과 '공무원들이 시민단체 인사들은 과격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교차했어요. 그렇지만 스스로는 시민단체 일할 때와 표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나름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시민단체에 있을 때보다 시정을 이해하는 폭은 넓어졌어요. 항상 전체를 조망하면서 핵심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어요."
시의원 활동 5개월 만에 '행정사무감사 우수 시의원' 선정
박 의원은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시의원이 되자마자 대전시의 토목개발위주의 정책방향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해 말 행정사무감사 과정에서는 롯데백화점 등 대형마트에 대한 교통유발부담금 등이 타시도보다 상대적으로 낮다고 문제제기하고 대형마트의 지역기여도 평가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이같은 적극적 활동이 인정돼 지난해 대전시민네트워크로부터 '행정사무감사 우수 시의원'으로 선정됐다. 올해 예산을 다루면서는 의회 본회의장에서 친환경무상급식 관련 예산을 삭감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예산안 통과에 반대했다.
그런 그에게 염홍철 대전시장 1년 활동에 대한 평가를 들어 보았다.
"염 시장은 취임사를 통해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버스운전에 비유하자면 승객 다수가 우회전을 원하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는 것이 소통이고 소통마인드라고 봐요. 종합해보면 염 시장의 소통마인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1조 4000억 원이 소요되는 대전도시철도 2호선 건립 논란과 관련 시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방향(지상고가 자기부상 열차)을 정해 끌고 가고 있어요. 도시미관을 해치고, 현 지방재정으로 감당이 가능한 지 등에 대한 정보제공과 의견수렴 절차는 빠져 있습니다.
세계적인 저성장시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청소년센터건립(약 300억 원)과 같은 토목공사위주의 지역발전 모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세계를 유치, 대전시 서구 관저지구 10만평 부지에 명품 아울렛 및 대규모 복합시설인 유니온 스퀘어를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요. 이런 측면에서 염 시장의 대전발전에 대한 비전은 불투명하고 소통은 형식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축구 모르는 측근인사 프로축구단 사장으로? 청문회하자"
또 다른 현안인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린 대전시티즌에 대한 대전시 정책에 대해서도 물었다. 대전시는 대전시티즌 소속 여러 명의 선수들이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자 최근 쇄신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일부 시민들은 대전시티즌 해체까지 요구하고 있는 때에 염 시장은 시티즌 사장 자리에 '축구를 잘 모르는 측근 인사' 인 김광희 전 대전 정무 부시장을 내정했어요. 낙하산 인사가 쇄신입니까? 개혁이예요?"
시티즌 사장으로 내정된 김 전 대전정무부시장은 지난 2006년 당시 도시철도공사 사장 재직 당시 공사에서 자신의 아들 명의의 콘도를 공사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나 구설수에 올랐고, 지난 2002년과 2003년에는 김 전 부시장 장남이 대전시내 2개소의 대형 유통할인점에 입점하면서 특혜 의혹을 샀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인사권과 관련 최소한 부시장과 시티즌 사장 등 대전시 공사사장에 대해서는 청문회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봅니다."
박 의원은 지방의회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의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려면 우선 전문위원실과 입법정책실, 보좌관을 연결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합니다. 개인적 관심사가 지방재정인데 지금처럼 예결산 전문위원 한 명 없고 보좌관 한 명없는 상태에서 전문성을 강화하기에는 한계가 많습니다. 매번 나오는 얘기지만 의회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한을 의회에 주는 것이 타당합니다.
현재 의회 직원의 인사권한을 단체장이 갖고 있다 보니 제대로 된 의회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예요. 지방의원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제도적 한계도 더불어 보완돼야 합니다. 의회와 시민들의 소통도 잘 안 되고 있어요. 우선 의회 건물부터가 권위적이예요. 이렇게 큰 의회 건물 내에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4층 회의실이 전부예요. 흔한 민원실 하나 없습니다. 의회 내에서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보다 필요하죠."
좋은 의원? "자세는 낮추고 귀는 열고 눈은 맞추는 의원"
그는 민주당개혁특위위원이면서 민주당대전시당 생활정치실현위원장을 맡고 있다.
"소수당 의원(전체 대전시의원 중 민주당은 4명이다)이지만 정당정치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선거 때 반짝하고 개점휴업 하는 정당이 아닌 대전시 전체에 대한 비전을 갖고 일상적인 활동을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은 '좋은 지방의원이란'이다. 지방의원 1년 차 박 의원의 답변을 이렇다.
"어느 드라마에서 한 군수후보가 그러더군요. '군수가 되면 자세는 낮추고 귀는 열고 눈은 맞추겠다'고. 이게 좋은 지방의원이 갖춰야 할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자세를 낮추겠다는 것은 시민과 눈높이를 맞춰 호흡하겠다는 거잖아요. 물론 그러면서도 자기철학은 있어야 겠죠. 귀를 열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듣겠다는 거죠.
눈을 맞추는 것을 다른 말로 공감능력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과거 리더십은 '나를 따르라'식으로 개인이 만들어냈다면 21세기 리더십은 대중이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공감능력이요? 아버지께서 자영업을 하다 아이엠에프(IMF)때 도산했어요. 그래서 자영업자들의 설움을 압니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애를 맡기고 찾느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보육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실 경험을 해왔어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공감능력은 높다고 자부해요(웃음). 그런 의원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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