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瀑布)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곧은 소리는 소리이다곧은 소리는 곧은소리를 부른다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높이도 폭(幅)도 없이떨어진다 답답한 여름 내내 콘크리트 도시에 갇혀 지내는 현대인에게 '폭포'보다 더 시원한 낱말이 어디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종종 김수영 시인의 '폭포'를 읽는다. '폭포'는 언제 읽어도 시원하다. 제목 자체가 '폭포'인데다, 내용 또한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옆에는 사진첩을 놓고 뒤적인다.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폭포의 추억'을 떠올리는 정서적 피서법을 실행하는 것이다.
대구에는 큰 폭포가 없다대구에는 폭포가 별로 없다. 팔공산의 저 유명한 폭포골도 정작 들어가 보면 폭포가 있는 듯 없는 듯해서, 폭포골이라는 이름마저 생뚱맞을 정도다. 큰 바위채를 등지고 떨어지는 물줄기들이 곳곳에 있지만 폭포(瀑布)의 인상은 아니고 그냥 낙수(落水) 수준이다. 삼베[布]를 확 펼쳐놓은[瀑] 듯이 넓고 흰 물줄기가 허공에서 절벽으로 떨어져야 그게 폭포인데, 폭포골에서 가장 큰 '폭포'도 그 경지에는 한참 모자란다. 그래서 이름도 그냥 '폭포'다. 구룡폭포 식의 고유 명칭을 얻지 못한 채, 달랑 두 글자의 이름 '폭포'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팔공산 폭포골의 대표 폭포인데, '팔공산폭포'나 '공산폭포'식의 이름을 붙여주지 않고 너무 홀대한 게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폭포골을 끝까지 올라 신령재에 닿은 다음 되돌아 하산하지 않고 건너편으로 내려가면 제법 위용을 갖춘 폭포가 나타난다. 그 폭포의 이름이 바로 공산폭포이다. 공산과 팔공산은 같은 이름이니, 치산계곡의 공산폭포가 버젓이 있는 마당에 폭포골의 '폭포'에다 '팔공산폭포'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팔공산 치산계곡의 공산폭포가 제법 그럴 듯하기는 하다. 폭포 낙하 지점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위용은 상당한 수준이다. '접근 금지' 밧줄을 붙들고 멀찍이서 바라보거나, 작은 전망대에 올라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물줄기가 상당히 위력적인 까닭에 산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살 또한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폭포는 물줄기가 '곧은 절벽'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보는이의 가슴을 감동으로 물들이지는 못한다. 애써 '삼단폭포'라는 미명까지 붙여보지만 직선의 웅장한 낙수를 폭포로 여기는 일반적 인식 앞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모쪼록 폭포의 물은 직하(直下)를 해야 한다.
금강산 구룡폭포가 볼 만하다. 치솟은 절벽의 끝에는 기암절벽 뒤로 은밀히 얼굴을 내미는 하늘이 걸려 있고, 폭포의 발원지 좌우로는 칼날 같은 바위들이 포진하고 있다. 오른쪽 벼랑에 김규진의 붓글씨 '彌勒佛'이 새겨져 있는 것도 금상첨화의 미덕이다. 게다가 분단조국의 '잔혹사' 탓에 언제든 자유롭게 구경 올 수 있는 조건도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안타까움에 짓눌린 채 구룡폭포를 바라보는 눈은 하염없이 감상에 젖는다. 아니나 다를까, 남북관계의 악화로 언제 다시 금강산을 밟아보게 될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빠졌으니, 사진으로 다시 보는 구룡폭포의 서늘한 애잔함은 이 무더운 여름의 열기를 짓누르고도 남음이 있다.
금강산 구룡폭포가 우리나라 최고의 폭포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구룡폭포가 백두산에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금강산의 구룡폭포가 단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면, 백두산의 구룡폭포는 장엄한 웅혼미를 뽐낸다. 어느 폭포가 더 멋지다기 보다도, 그 두 폭포는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있는 '다른' 두 개의 폭포이다.
왜 그 두 폭포가 이름이 같은지 궁금할 수도 있다. 구천(九天)이 잘 말해주는 바와 같이 구(9)는 극한의 숫자이다. 그리고 용(龍)은 장엄하고 구불구불한 형체를 말한다. 즉, 구룡(九龍)폭포는 폭과 낙하의 규모가 웅대하고, 만들어낸 계곡수의 굽이가 엄청난 폭포를 가리킨다. 그것이 금강산에도 있고 백두산에도 있는 것이야 천지신명의 조화인데, 굳이 이름을 다르게 지을 까닭이 없다.
백두산의 폭포를 '구룡폭포'라 부르자백두산의 구룡폭포를 중국에서는 장백폭포라 한다. 우리 겨레의 영토가 좁아지면서 백두산 북녘에 대한 소유권이 중국에 넘어가자 그들은 구룡폭포라는 이름 대신 장백폭포라는 중국식 명칭을 부여했다. 그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이가 많다. 하지만 아니다. 중국인에게는 장백폭포일지라도 우리에게는 구룡폭포이다. 우리가 왜 그들을 따라하나.
금강산의 구룡폭포도 백두산의 구룡폭포도 둘 다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다. 둘 다 폭포 옆을 지나갈 수도 없다. 금강산의 구룡폭포는 본래 양쪽에 절벽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만, 백두산의 구룡폭포는 다른 연유로 그렇게 되었다. 본디 폭포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천지까지 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중국 공안들이 지키고 서서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신라 향가 <처용가>에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겼으니 어쩔 것인가' 하는 대목이 있지만, 그저 원통하고 서러울 뿐이다.
두 구룡폭포도 규모가 있으니 으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세계 3대 폭포의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의 낙수 지점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높이가 20층 빌딩에 해당하는 60m나 되는데다 폭은 물경 670m나 되는 이 폭포에 누가 감히 들어갈 것인가.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이다. 그것도 전경을 보려면 100달러를 내고 헬기를 타야 한다.
1인당 10달러씩 요금을 내고 유람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헬기처럼 전경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는 열망 때문이다. 하지만, 물덩이가 낙하하는 인근까지 간신히 갔다가 돌아올 뿐이다. 폭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낙수에서 발생하는 이슬비 같은 는개만 목격할 따름이다. '안개 아가씨호'를 타기 전에 챙겨 입은 비옷 덕분에 일상복이 흠뻑 젖는 것은 모면하지만, 숲만 볼 뿐 나무는 보지 못하는 '수박 겉핥기'식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에 그저 '본전 생각'이 간절할 따름이다.
폭포는 못 보고 물만 보는 나이아가라 관광나는 '폭포'가 좋다. 나이아가라 폭포, 대단하지만 그저 크다는 인상만 준다. 우리나라의 구룡폭포도 떨어지는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멀리까지 흘러내려온 계곡물을 즐기는 게 전부다. 그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근본적 문제는 '갈 수 없는 땅'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훨씬 작은 공산폭포도 아이들을 데리고 그 안에 들어가 놀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팔공산 폭포골의 이름 없는 '폭포'는 그렇지 않다.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떨어지는 낙수 아래로 가도 언제나 편안하다.
유명하지만 눈으로 보는 데 그쳐야 하는 그런 거대 폭포보다, 이름도 없지만 폭포수 속에 손을 담그고 두 발로 걸어볼 수도 있는 그런 무명의 폭포가 좋다. 비유하자면, 거대폭포는 부귀영화를 가졌지만 정이 없는 친인척이고, 이름없는 폭포는 가난하되 눈물과 웃음을 서로 나누며 사는 '이웃사촌'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하루 종일 풍덩거리다가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이웃사촌 폭포, 나는 그런 이름 없는 '폭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