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의 심봉사는 세상을 보지 못한다. 맹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당수에 몸을 던진 딸의 효심이 하늘을 움직인 덕분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라는 말이 있다. 철학에 눈을 떴다, 역사에 눈을 떴다, 요리에 눈을 떴다… 식으로 쓰이는데, 어떤 사람이 특정한 분야에서 수준급 경지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동원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물론 "심봉사가 '눈을 떴다'"고 할 때의 '눈을 떴다'와, "김철수가 역사에 '눈을 떴다'"고 할 때의 '눈을 떴다'는 그 의미가 서로 다르다. 심봉사는 육체의 눈을 떠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고, 김철수는 인식의 눈을 떠서 역사의 의미를 날카롭게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열네 살, 서평에 눈을 뜨다'라는 표현은 후자의 경우이다. 14세 아이들이 잘 알지 못하던 서평 분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 그런 글을 쓰기도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권윤한 외 5인 저, 한티재 출판사 펴냄)의 학생 저자들이 책읽기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세상'은 (심봉사가 본 눈앞의 '세상'이 아니라) '자연', '사회', '삶' 등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킨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는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 중1 아이들이 그 깨달음을 서평 형식으로 표현한 다음, 그 서평들을 모아 출판한 책이다. 정말 열네 살 아이들이 서평을 쓸 수 있을까? 대구 북동중학교 1학년 권윤한, 윤다은, 이채영, 장은아, 정우성, 홍소영, 이렇게 여섯 아이들이 읽고 평가한 책들은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연어>, <죽음의 수용소에서>, <동물농장>, <길모퉁이 행운돼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두 친구 이야기>,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기적의 섬으로>,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들인데, 과연 어떤 서평을 써놓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합 독서'로 세상을 읽는 눈 키워물론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는 사계의 전문가가 같은 분야의 다른 전문가가 쓴 책을 평가하는 기존의 '서평'과는 다르다. 상식적으로 중1 학생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 리가 없으니, 애당초 그런 서평을 쓰고 또 책까지 발간할 이유도 없다. 이 책이 단순한 독후감 쓰기를 뛰어넘는 새로운 독서교육, 글쓰기교육의 지평을 보여준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에 서평을 실은 아이들은 줄거리나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고, 이어 느낀 점과 앞으로의 각오 등을 나열하는 구태의연한 독후감은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읽은 책의 내용, 그것과 연관이 있는 본인의 경험 및 사회 현상, 다른 책이나 언론매체에서 본 주장, 본인의 생각들을 두루 엮어내는 '종합 독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는 글쓰기 훈련의 전범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저자 중 한 명인 이채영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서평이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새롭고, 책과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글을 이용해 생각나무나 마인드맵을 그린다는 느낌이 들었죠. (중략) 책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고, 책을 통해서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면 '서평 쓰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좀 어렵겠지만 쓰다 보면 어느새 책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서평은 나를 보여주는 또 다른 거울이라고 생각해요."<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는 '학생 저자 10만 양성을 위한 대구시교육청 책쓰기 프로젝트' 사업으로 채택되어 발간된 책이다. 이 책은 표지에 우물 그림을 담고 있다. 학생 저자들이 표지에 우물 그림을 넣은 이유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세상을 좁게 생각하다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우물 안에서 나와 세상을 넓게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의 경우를 본받아, 청소년들이 종합 독서와 서평 쓰기 훈련을 통해 '세상'을 보는 깊고 넓은 눈을 갖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 (권윤한 외 5인 지음, 한티재 출판사, 2011년, 1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