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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마라톤 참가자.
자전거 마라톤 참가자. ⓒ 김정우
그날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지난 6월 18일, 캐나다 비씨주 암센터에서 주최한 '암 극복 자전거 마라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밴쿠버 써리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 사이로 비가 주르륵 내리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비가 그치길 바랐지만 비는 멈추지 않았다.

이날 자전거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은 3000명이 넘었다. 이들은 비씨주의 각 도시에서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해 참여한 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을 돕기 위한 또 다른 봉사자도 100명이 넘는 대규모 행사였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암을 극복하기 위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비씨주 암 재단' 주최로 열렸다. 행사를 통해 마련된 기금은 암 환자 후원 및 연구에 사용된다.

써리시에서 출발하여 미국 워싱턴주 레드몬드까지 2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완주하는 1박 2일 코스였다. 이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담고자 기자는 1박 2일 간의 행복한 동행을 시작했다. 비가 내렸지만 이들의 얼굴에서는 강한 의지와 희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출발부터 넘어지는 사람,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 나는 사람, 비에 미끄러져 다치는 사람이 늘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상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사전에 해둔 덕분에 부상자 치료 및 이동이 수월하게 이뤄졌다.

또한 자전거 마라톤 봉사자들이 안전하게 도로를 달릴 수 있도록 안내 표지판이 잘 정리돼 있었고, 지나가는 차량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양보하며 봉사자들의 길을 환영해주었다. 긴 여정의 피로를 풀 수 있도록 중간에 쉼터도 여러 곳에 만들어 놓았고, 쉼터에서 쉬고 가는 봉사자들에게 음식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 피로를 덜어줬다.

68세 할머니 "하늘에서 날 보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힘껏 달렸다"

캐나다-미국 국경을 넘어선 지점에 마련된 중간 쉼터에서 자전거 마라톤 참가자들을 만나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흰머리가 가득한 할머니였다. 68세의 이 할머니 이름은 제인이었다.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다. 68세 할머니가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비를 맞으며 이곳까지 왔을까 궁금했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 기쁘고 너무나 행복합니다. 하늘에서 날 보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힘껏 달려왔습니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암을 극복한 영웅들과 언제나 함께할 것입니다."

할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행사 둘쨋날이 바로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라며 그리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 할머니! 제인 할머니는 세상의 모든 암 환자 및 가족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극복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 후 눈물을 감추고 다시 긴 여정을 떠났다.

 제인 할머니.
제인 할머니. ⓒ 김정우

 마라톤 첫날 미국 국경을 넘어 워싱턴주에 들어온 후 첫 번째로 만난 쉼터에서 자전거 라이더들이 중간 점검 및 스트레칭을 하며 쉬고 있다.
마라톤 첫날 미국 국경을 넘어 워싱턴주에 들어온 후 첫 번째로 만난 쉼터에서 자전거 라이더들이 중간 점검 및 스트레칭을 하며 쉬고 있다. ⓒ 김정우

이번 행사 참가자들 중에는 제인 할머니처럼 암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이 많았다. 다들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이 행사에 참여했지만 이들은 정말 씩씩했다. 암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병이며, 모든 사람에게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내년 행사에도 꼭 참석할 것이라고 밝힌 이들도 정말 많았다.

"친구가 암으로 먼저 떠났지만 지금도 늘 곁에 있다"는 여성 4인방을 만났다. 이들은 매해 이 행사를 통해 암환자들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참으로 용감하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참가자들이었다.

"우리들의 친구가 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위해 모두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여기 있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암 환자 가족이고 그중에는 암환자도 있습니다. 이들을 응원하고 암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참여했습니다. 비가 오고 춥고 힘들지만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이렇게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도착한 자전거 마라톤 참가자들 중 같은 팀원이 손을 맞잡고 들어오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도착한 자전거 마라톤 참가자들 중 같은 팀원이 손을 맞잡고 들어오고 있다. ⓒ 김정우

암 환자에게 전하는 희망, 페달에 싣고 달린 사람들

자전거 마라톤 봉사자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버논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하룻밤 캠핑을 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피로를 풀었다. 비가 와서 날씨가 춥고 바닥이 축축했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환한 표정으로 각자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캠프촌은 수천 개의 텐트로 메워졌고, 중간 지점까지 무사히 도착한 참가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몰려든 가족과 친구들의 감동적인 응원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자전거 마라톤 참가자들을 돕고자 이곳에 전날 미리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주변을 정리해준 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한국 유학생들이었다.

밴쿠버로 어학 공부를 하러 왔다는 이 학생들은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하고자 이렇게 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샤인 인터내셔널 에이전시'의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하게 됐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탓에 추위에 떨며 잠 한숨 못 잤지만 마라톤 참가자들을 도울 수 있어 즐겁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 워싱턴주 버논의 캠프장에서 자전거 라이더들이 캠프장에 도착해 쉴 수 있도록 텐트를 치고 있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 워싱턴주 버논의 캠프장에서 자전거 라이더들이 캠프장에 도착해 쉴 수 있도록 텐트를 치고 있다. ⓒ 김정우

먼저 떠난 아들 사진 품고 매년 달리는 아버지

 완주한 아버지가 기다리던 딸을 만나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완주한 아버지가 기다리던 딸을 만나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김정우
다음날 참가자들은 종착점인 워싱턴주 레드몬드까지 다시 달려야 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참가자들, 종착점에 미리 나와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볼 생각에 떨려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는 사람, 머나먼 길을 완주하기 위해 일찍 출발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모두 '희망'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희망을 보았다. 종착점까지 완주하는 내내 아들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달린 한 아버지였다. 이 사람은 쌍둥이 중 둘째가 소아암으로 세 살 때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전거로 달리는 내내 아들은 내 옆에 있었다"는 이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함께 달려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먼저 떠난 아들의 이름인 핀(FINN)을 따서 '팀 핀(TEAM FINN)'을 만들어 매해 이렇게 아들을 위해 달린다는 이 아버지는 암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갖기 바란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모든 암 환자에게 전했다.

 핀의 아버지.
핀의 아버지. ⓒ 김정우

둘쨋날에도 비는 하염없이 계속 내렸다. 오랫동안 내린 비로 체온이 내려가 감기에 걸린 사람도 있었고, 길이 미끄러운 탓에 중간에 넘어져 다친 참가자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러한 어려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렸다. 그렇게 두 시간여를 더 달리자 종착점인 레드몬드가 보였다.

눈물을 흘리고 감격스럽게 포옹하는 모습이 레드몬드 곳곳에서 보였다. 가족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 무사히 완주한 참가자들을 향한 힘찬 격려와 박수로 레드몬드 전체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3000여 명의 노력과 열정 덕분에 이번 행사를 통해 마련된 기금은 무려 1100만 달러를 넘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암 환자 돕기 자전거 마라톤'은 많은 환자에게 희망을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준 아름다운 행사였다.

 완주 후 감격의 키스를 나누고 있는 부부. 암으로 가족을 잃은 이 노부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맞추며 종착점에 함께 들어왔다.
완주 후 감격의 키스를 나누고 있는 부부. 암으로 가족을 잃은 이 노부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맞추며 종착점에 함께 들어왔다. ⓒ 김정우


 무사히 완주한 참가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가족을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무사히 완주한 참가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가족을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정우


#암#자전거#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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