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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사원 선문답 티베트 라싸 세라사원 스님들의 괴이한 선문답은 마치 싸움질을 하듯 격렬하게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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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오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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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시내에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라사원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이다. 세라사원은 한때 5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할 정도로 티베트 승려를 양성하는 스님들의 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약 300여 명 정도의 승려가 3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 문화혁명 당시(1959년) 승려들의 숙소와 사원이 거의 파괴된 데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을 갈 때에 상당수의 승려가 함께 망명의 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총카파(1357~1419, 티베트 불교 중심세력인 겔룩파 창시자) 제자인 사캬 예쉬가 세운 세라사원은 대법당을 비롯하여 3개의 대학과 13개의 캉첸(승려 숙소)이 들어서 있다. 세라 메, 세라 응악파, 세라 제 대학 중 '세라 제'는 승려들의 토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최라(Chora)'라고 불리는 선문답은 오후 3시 30분부터 약 1시간 정도 벌어진다.
토론장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스님들의 토론이 벌어지려면 아직 1시간 정도 남아 있다. 시계방향으로 돌며 대법당과 대학, 숙소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이곳에도 순례자들이 '옴 마니 반 메 훔'을 염송하며 코라를 돌고 있다. 티베트는 어디를 가나 기도를 하는 순례자들을 만난다.
3시경이 되니 다행히 비가 멎었다. 세라 제 앞마당 토론이 열리는 정원으로 갔다. 많은 관람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토론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스님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3시 반이 되자 드디어 스님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토론장은 곧 스님들이 지르는 고함소리와 손뼉 치는 소리,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 등으로 난상토론장으로 변했다.
"저게, 선문답이라니… 이해가 잘 안 되요. 스님들이 꼭 싸우는 것 같아요?""그러게, 우리나라 스님들의 선문답과는 영 딴판인데."
아내는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님들의 난상토론을 바라보았다. 스님들은 1:1 또는 1: 2 로 마주 앉거나 서서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고, 손뼉을 치고, 춤을 추듯 빙그르 돌기도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싸움질 하는 모습이다.
당신이 정말 그랬어?제대로 알고나 말해? 헛소리 말어?무슨 엉뚱한 소리여, 공부를 통 안 했군.말도 안 돼,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아니야, 내말이 맞아, 네가 틀렸어?
열띤 토론중에도 스님들은 한 번 정도는 왼손을 밑에 받치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 힘껏 내리치는 특이한 손뼉 치기를 했다. 이는 우주의 진리와 불교의 교리가 충돌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때 위로 치켜 든 손은 극락을, 떠받치고 있는 아래 손은 지옥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했다.
선문답을 하는 스님들의 표정은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무척 진지하고 재미있게 보였다. 우리나라 스님들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주고받는 선문답보다는 훨씬 자유분방하고 신나 보인다.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도 해소될 것 같다. 얏! 소리를 냅다 지르는 순간에 깨우침이 올까? 짝짝 손뼉을 힘껏 내리치는 순간에 번뇌가 사라질까?
임제 '할(喝, 소리 지르기)'과 덕산 '방(棒!, 몽둥이로 때리기)'은 이곳 세라사원에서 출발한 것일까? 스님들의 삿대질과 고함, 그리고 손뼉을 힘껏 내리치는 모습에서 당나라 시대 임제스님의 '할'소리와 덕산 스님이 내리치는 '방'이 생각난다.
임제스님은 학인들의 공부를 점검할 때 천둥소리처럼 "할(喝)!"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고, 덕산은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듯 "방(棒-몽둥이)"을 후려쳐 우매한 학인들을 깨닫게 했다고 한다. 지금 세라사원 스님들의 선문답이 마치 임제의 '할'이나 덕산의 '방'을 연상케 한다.
임제 할과 덕산 방은 '눈 푸른 납자'는 어떤 인연을 따르더라도 그 속에서 무심하게 바른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단번에 깨우치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다. 지금 세라사원에서 펼쳐지는 티베트 스님들의 선문답도 진리를 단숨에 깨우치기 위한 한 방편일 것이다.
"극락과 지옥이 저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이 보이네요.""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고하게 선문답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운동도 되겠네. 앗사! 우리도 손뼉 치기 한번 해볼까?""에공, 아서요, 아서."우리와 함께 온 사진작가 신종만 선생은 스님들의 선문답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티베트와 네팔에서 주로 인물사진만 찍고 있다. '지구촌 사람들'이란 주제로 몇 차례 전시회를 열기도 한 그의 카메라는 매우 바빴다.
"좋은 사진 많이 찍으셨나요?""몇 장 건진 것 같아요. 저기 미소를 짓고 있는 스님의 모습이 너무 좋군요.""아 저 스님이요. 아까부터 손뼉을 치며 삿대질을 하는 스님에게 그저 미소만 짓고 있던데.""네, 그 미소짓는 모습이 아주 일품입니다."
그의 눈에 비친 스님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발을 통통 구르고, 손뼉을 치며, 고함을 지르며 삿대질을 하는 상대방 스님에게 마주 앉아 있는 스님은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마하 가섭의 파안미소(破顔微笑)처럼 보였다.
어느날 붓다는 구름처럼 몰려든 영산회상의 대중 앞에서 한 송이 꽃을 들어 보여주시고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대중이 그 영문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오직 마하가섭 존자만이 그 뜻을 알고 홀로 빙그레 웃었다. 이것이 이른바 붓다가 가섭에게 법통을 전수하게 된 유명한 '염화미소拈華微笑' 이다.
염화란 꽃을 손에 드는 것을 의미한다. 붓다가 손에 꽃을 든 의미를 오직 두타제일(頭陀第一 ) 가섭만이 알고 미소지은 것이다. 가섭은 의식주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선문답을 하고 있는 한 스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가섭존자처럼 염화미소를 짓고 있는 것일까? 어떤 스님은 희열에 찬 표정으로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환희의 미소를 짓는다. 그는 마침내 한 소식을 한 것일까?
그런가 하면 어떤 스님은 홀짝 홀짝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스님을 함께 선문답을 하던 도반이 무언가 다정하게 타이른다. 무엇이 그 스님을 울게 만들었을까?
원래 청정한 마음은 임제의 '할'도 덕산의 '방'도 도깨비 작란에 지나지 않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지 않았던가? 모든 것은 다 마음의 조작에서 온다고 했다. 이 모두가 깨우침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세라사원의 스님들 선문답은 4시 반에 막을 내렸다.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손뼉을 치다보면 소화 하나는 잘 되겠어요.""그러고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지네."세라사원에서 내려온 우리는 라싸 시내로 돌아와 한국음식을 한다는 아리랑식당으로 갔다. 아리랑 식당은 길림성에서 온 조선족이 운영하는 라싸 유일의 한국식당이다.
"토장국 있습니까?""있고 말고요. 된장찌개, 김치찌개, 삼겹살도 있어요."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리는 한국음식에 굶주려 있었다. 구수한 토장국에 김치를 먹고나니 부러운 것이 없다. 석가모니 부처도 수자타의 공양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도를 깨쳤다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