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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병사 상호간에 명령이나 지시 등도 하지 못하도록 국방부 훈령을 강화할 방침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좀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 중에는 이번 조치를 가리켜 '당나라 군대'라고 걱정을 하기도 하고 군 입대를 눈 앞에 두고 있는 부모님이나 당사자들은 환호하는 분위기를 인터넷 댓글을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 '시대가 변하니 군대 문화도 변화해야 한다'고 의견이 엇갈리는 병영 생활의 현주소 속에서 저의 지난 병영 생활을 문득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죠.

1994년 1월 20일, 혹독하게 춥던 그해 겨울, 스물 한 살의 나이로 논산훈련소에 입대했습니다. 일명 '똥국'이라 불리는 희멀건 된장국엔 야채 벌레의 사체가 둥둥 떠 있었지만 늘 배고픔과 추위와 '빡센' 훈련에 그마저도 아쉬운 판국이었죠.

하느님만큼이나 위대하고 맹수처럼 무섭고 사나운 조교들의 호령과 눈빛에 추운 날을 더 얼어붙게 만들었던 그 시절. 6주 신병교육 후 주특기인 인사행정병과(900)를 받아 성남에서 다시 후반기 교육을 받고 그해 4월 중순경,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부산 ○○ 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처럼 높고 맹수처럼 무서웠던 논산훈련소 조교들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자대를 받아보니 운 없게도 빡세기로 소문난 신병교육대였다.
하느님처럼 높고 맹수처럼 무서웠던 논산훈련소 조교들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자대를 받아보니 운 없게도 빡세기로 소문난 신병교육대였다. ⓒ 윤태

자대 들어가니 화장실 불러내더니 쪽지를 내민다 '서열표'

그러나 참으로 불운이었습니다. 자대 배치 받아 간 곳은 다름 아닌 ○○ 사단 신병교육대였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을 키우는 것처럼 그곳 또한 훈련병을 이등병으로 만드는 신병교육대였지요. 논산훈련소의 무서운 조교들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자대가 신병교육대라니...

저는 본부중대 소속에서 병사들의 입대, 휴가, 전역 등의 행정업무를 보는 행정병이었고 고참들은 대다수 조교였습니다. 조교들은 빡세게 병영생활을 하는데 행정병들은 편안한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니 행정병들을 향한 고참 조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만날 듣는 소리가 '행정병이 빠져가지고......' 이런 것이었죠.

자대배치 첫날, 고참 이등병 하나가 저와 함께 들어온 신병 둘(이 친구들은 저보다는 두달 후임이지만 후반기 교육 없이 바로 자대 배치 받아 같이 들어온 것)을 화장실로 불러내더니 손바닥만한 종이쪽지를 내밀더군요. 서열 순으로 빼곡하게 적혀있는 고참들의 이름 50여 명. 이른바 '서열표'였습니다. 순서대로 외우랍니다.

담배를 피울때도 직각으로 이동 '이곳은 신병교육대다'

구타생활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시간만 나면 고참 이등병은 화장실로 불러내 고참들의 이름을 외우게 했고 더듬거리거나 순서가 틀리면 어김없이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배를 후려 갈기는데 숨통은 막혀오고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빠졌다'며 또 주먹과 발길질 날아오고.... 아마 그 고참 이등병도 똥줄이 탔을 겁니다. 막내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병, 상병이 줄줄이 당하는 시스템이었으니 말이죠.

그곳은 문화는 남달랐습니다. 취사장, 연병장 등 일단 내무반을 나서게 되면 이등병들은 무조건 조깅하듯 뛰어서 목적지에 가야만 했습니다. 식당에 가서 뻣뻣하게 앉아 있으면 바로 윗고참들이 밥과 반찬을 퍼다 주는데 아무리 배가 불러도, 속이 안 좋아도 밥을 남기면 조용한 시간에 주먹이 날아들었죠.

"야, 막내들 배고프겠다. 많이 먹어라"라는 왕고참들의 한마디에 식판의 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봉으로 올라갔지요. 간혹 "야, 좀 적당히 퍼줘라"라고 마음씨 좋은 왕고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고참이 조금만 퍼주라고 말은 했지만 그대로 실행하면 바로 위 이등병 고참이 괴로웠으니까요. 그곳에서는 이등병 일정 기간 동안에는 바로 위 고참이 식기까지 닦아주는 참 희한한 시스템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참 더웠습니다. 등나무 아래에서 벤치에서 담배를 피울 때도 절도와 패기 있게 담배를 입에 가져갈 때나 내릴 때 가능하면 직각으로 손을 이동시켰습니다. 신병교육대에는 늘 각이 나와야 한다면서요. 세워진 나무토막처럼 담배를 태우다가 간부라도 지나가면 편안한 자세로 잠시 돌렸다가 다시 각을 잡는 자세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그해 여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서울 불바다, 물바다니 하면서 한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던 1994년이었습니다. 더욱 긴장하고 비록 후방이었지만 언제 어떻게 전쟁이 날지 모르니 군기를 더욱 잡아야 한다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네요.

내무반, 널브러진 병장이 넌지시 V 표시하면 담배와 재털이 쏜살같이 대령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재밌던 기억이기도 합니다. 내무반 생활 말이죠. 병장들이 널브러진 자세로 텔레비전 앞쪽에 앉아 TV를 보고 있고 이등병들은 멀찌감치 뒤쪽에서 뻣뻣하게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등병들은 TV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시선은 TV 아래 각진 곳을 보고 있으면서 왕고참들의 시중을 들었던 겁니다.

왕고참들이 TV를 보다가 조용히 손을 낮게 들어 V 표시를 할 경우 관등성명과 함께 쏜살같이 달려가 담배를 쥐어주고 불을 붙여줍니다. 또다른 이등병 역시 신속하게 달려가 재떨이를 대령합니다. 만약 TV에 정신 팔려 왕고참의 V를 인식 못하고 수초간 시간이 흘렀다고 하면 그날은 줄줄이 불려가 깨지는 날입니다.

간혹 어떤 고참은 "야, 누구 담배 있냐?"라고 친절하게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슬그머니 손을 낮게 들어 V를 표시하는 왕고참의 속내에는 '얘들이 얼마나 군기가 잡혔나'하는 것을 은근히 보고 싶어하거나 실험해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답니다. 괴팍하고 성질 불같은 고참들이 주로 그랬으니까요.

그 무더운 이등병의 여름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동기녀석과 고참 눈을 피해 PX(매점)에 뛰어 들어가 사오고 화장실 변기에 둘이서 쭈그리고 앉아 핥아 먹다가 옆칸에 누가 들어오면 숨죽이고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바라만 봐야했던 시절. 부모님과 친구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우주 끝까지 다다랐지만 결코 공중전화 한 번 허락지 않던 방식으로 군기를 잡던 고참들. 그냥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이 스쳐가네요.

'눈 깔아 씨발색꺄, 눈까리 뽑아서 갈아마셔뿐다' 정말 무서웠다

툭하면 '눈 깔아, 씨발색꺄, 눈까리 뽑아서 갈아마셔뿐다. 씨발놈아' 조교 고참들의 폭언과 구타에 정말 눈이 뽑혀 갈아 마심을 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눈을 아래로 깔고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숨까지 참아가며 통나무 상태를 유지해야 했던 그 시절.

종종 막내 조교들이 옥상에 올라 총검술을 익히며 고참들에게 무자비하게 까이고 착하거나 온순한 사병도 일단 조교로 보임을 맡게 되면 악하거나 과격해지는 성격으로 바뀌는 그 무섭고 비인간적인 현실을 보면서 섬뜩함과 동시에 안타까움마저 들기도 했던 그때입니다.

죽이고 싶도록 밉고 싫고 진저리나며 어느날 내가 미쳐버리거나 정신이 순간 나가버리면 저 고참 놈은 한번 찌르겠다고 상상 아닌 상상도 해봤지만 역시 상상에 그쳤지요. 부대 쪽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던 다짐은 허물어지고 제대 후 1년 만에 부대를 찾아가보니 부대내에 탁구장, 노래방 내무반에는 냉장고까지 들어서 있는 등 분위기와 시설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더군요.

복학 후 졸업과 동시에 다른 대학에 편입해 보니 이름과 눈빛과 분위기만 떠올려도 머리가 쭈뼛쭈뼛 서던 조교 고참이 같은 학교에 들어오게 됐으나.... 그냥 '○○이 형'으로 호칭을 바꿔 사이좋게 잘 지냈다는 후일담입니다.

제가 비교적 어린 나이인 21세에 입대를 했으니 고참 중에 저보다 나이 어린 고참이 단 한명도 없었기에(동갑도 없이 전부 1살 이상씩 많았음) 구타를 당해도 뭐 그리 억울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아, 형이 그러는가 보다' 생각하며 아니꼬운 맘은 전혀 들진 않았지요. 반면 후임병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많아 제가 거의 왕고참이 됐을 때 많이 존중해 줬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몇몇 후임병들이 메신저로 연결돼 있는데 나이가 같으면 서로 이름 부르고, 나이가 많으면 "박형, 김형" 이런 식으로 호칭하며 서로 존대합니다.

1994년 여름 무렵부터 그룹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과, 부활의 '사랑할수록'이 이라는 노래가 뼛속까지 스며들만큼 유행했고 지난 15년 동안 이 노래들이 나올때마다 군에서의 추억이 틀림없이 떠오르게 됩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며 지내고들 있는지....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때의 일을 들춰 봤습니다.

 병 상호간에는 명령은 물론 지시까지 하지 말라는 국방부 훈련이 내려졌다. 과거 전우애를 발휘하며 목숨까지 내 던지던 시절의 군인 정신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군대라는 특수 집단인 만큼 위계와 기강이 바로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병 상호간에는 명령은 물론 지시까지 하지 말라는 국방부 훈련이 내려졌다. 과거 전우애를 발휘하며 목숨까지 내 던지던 시절의 군인 정신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군대라는 특수 집단인 만큼 위계와 기강이 바로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 윤태

고참, 신참 터치 않고 개인주의로 흐르는 병영생활은 '노'

요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군대가 엄청나게 편해졌다고들 합니다.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가능하면 건드리려고 하지 않고 후임병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고참들과 내무실에서 독서를 하는 등. 물론 전방, 후방 등 어느 부대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이번에 병사 상호간의 명령, 지시 등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지는 않을겁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강력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근절될 일도 아니지요. 자꾸 음지로 숨어들 뿐이지요.

겉보기에는 건장한데 몸과 마음이 나약한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군 입대 날짜를 받아놨다면 입대 전에 힘든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면서 끈기와 인내를 길러볼 필요도 있을 겁니다. 너무 편안히 있다가 갑자기 강도 높은 훈련을 받게 되면 군 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군대는 전투, 국토 수호 등 특수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군인 집단으로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위계질서를 주먹, 명령, 지시 등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세우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시대도 아니고요. 고참은 고참 나름대로, 신참은 신참 나름대로 지키고 해야할 것들을 입대전이나 후 충분한 교육을 통해 인지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신참이던 고참이던 서로에게 크게 터치하거나 간섭받지 않고 제각기 할 일이나 하면서 개인주의 성향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인데, 이렇게 되면 부대원들간의 끈끈한 정이나 추억은 전에 비해 덜 할 것입니다. 그냥 '군대 회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병영 구타의 추억> 응모입니다.



#병영 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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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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