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재벌 개혁' 바람이 불었다. 여야 대표가 앞장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경제 민주화 실현"을 강조하는가 하면 22일 오전에는 한나라당·민주당·진보신당 의원이 모여 <재벌개혁, 왜 필요한가>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공동주최자인 김성식 한나라당 정책위부의장은 "색깔 칠해진 이념에 의해서 시장경제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정성을 상실해가고 정당한 거래 관계가 갑을 관계로 바뀌며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양산되는 현실이 시장경제를 위협한다"며 "낙수 효과가 약화된 상황에서 촘촘한 안전망, 분배 체계 강화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승용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공정한 거래를 확립하기 위해 국가가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개혁방안을 모색해보고자 마련한 이 토론회는 3당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기 때문에 재벌 개혁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벌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재벌을 건드리면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는데 이 시스템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냐"며 "대표적 재벌 기업 삼성·현대·SK·두산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되짚어봐야 한다, 재벌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야 의원들에 이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도 '재벌개혁' 흐름에 가세했다. 2시간 반 가량 이어진 토론회를 끝까지 청취한 정 위원장은 "경제 민주주의가 안 되면 정치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도 위협받게 되고,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며 "지속적 성장과 경제민주주의 달성을 위해 민주적 협력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익공유제 도입은 경제·사회 민주주의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익을 나누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실존적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재벌개혁의 'A-Z'... "낙수효과의 허구적 신화 극복해야"발제를 맡은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재벌 개혁의 A-Z'를 보여줬다.
그는 "30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능가하며, 특히 삼성그룹 하나가 전체 설비투자의 1/8에 차지할 정도로 막대한 집중이 이뤄지고 있다"며 "그렇지만 내수에 기반하지 않은 수출·투자 중심 성장전략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벌의 '금융 지배력' 추이도 짚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재벌의 금융계열사 수는 1996년 105개로 치솟았다가 외환위기 이후 70여 개 수준으로 줄었고,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50여 개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2010년 다시 73개로 늘었다.
김 교수는 "다방면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는 재벌들은 '일감 몰아주기'로 이익을 독식하고 있는데, 현재 논쟁이 벌어진 '두부' 등의 제조업 뿐 아니라 쓰레기 처리, 택배 등 서비스업에서의 일감 몰아주기도 심각하다"며 "'일감 몰아주기' 논의를 MRO(소모성 자재구매 대행), SSM(기업형 슈퍼마켓) 등 서비스업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개혁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그는 "현행 법제도의 엄정한 집행이 필요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한 제대로 된 과세, 기업 집단 자체에 법적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는 기업집단법 제정, '대기업의 선도적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으로까지 확산되도록 한다'는 낙수효과의 허구적 신화 극복"을 꼽았다.
'경제'로 시작해 '정치'로 끝난 재벌 개혁 토론회 이 같이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한 재벌 개혁은 '정치'로 귀결됐다.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대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재벌 개혁의 과제들은 검토만 됐고 시행을 못했다"며 "진보·보수를 불문하고 이 시대 과제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이것을 약속하는 정치인을 내년 두 차례 선거에서 대표자로 뽑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십년 동안 이어진 재벌 체제에 대한 대안은 이미 논의돼 있으니 이를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실현할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
토론회 좌장을 맡은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오늘 나온 얘기의 상당부분은 참여정부 인수위 때 검토했던 방안들"이라며 "삼성과 경제관료, 조중동이 삼각동맹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 해도 재벌개혁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며 다소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정 원장은 대신 '재벌개혁'의 가능성을 시민에게서 찾았다. 그는 "시민들이 무상급식을 관철했듯이 (시민들이) 현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정치권이나 학자에게 '방안을 내놓고 실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며 "앞으로 10년 정도의 여유밖에 없다, 지금 재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없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