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은 변산반도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그중 채석강은 막상 바다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는 이들도 있다. 바닷가 절경이 일품인 채석강은 변산에서 가장 먼저 다들 찾는 곳이다. 변산반도 맨 서쪽에 있는 해식 절벽과 바닷가인 이곳은 옛 수운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의 이백(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채석강은 변산의 아름다운 8경 중의 하나로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일년 내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해넘이 축제를 하는데, 여기서 보는 서해안의 일몰 낙조는 너무나 아름다워 정말이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채석강에 비해 조금은 덜 알려진 적벽강은 채석강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은 채석강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어서 인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독특한 형태의 자갈들이 많으며 정비가 잘되어 있어 주변은 산책하기에 좋다. 높은 절벽과 동굴의 빼어난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인근 용두산 꼭대기에 있는 수성당을 보면 더욱 좋다.
수성당은 서해 바다를 돌보는 수호신인 개양할미를 모신 곳으로 한눈에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전망이 좋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찾아가는 길도 잘 되어 있고 작은 단칸의 건물이나 조용하고 아직도 일부 굿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성당에 수성할머니는 딸 여덟을 낳아 각도에 딸을 한 명씩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의 수심을 재어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고도 한다. 신당으로 다소 성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1960년대 초까지는 수성할머니의 그림을 그린 영정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부안 도청리 호랑가시나무군락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모항해수욕장을 지나서 조금 가면 도로변에 천연기념물 제122호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있다. 변산반도가 북쪽 한계선으로 전남 남해안과 제주 서해안에서 자라고 있다. 잎 끝이 가시처럼 되어 있어서 호랑이의 등을 긁는데 쓸만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호랑이등 긁기나무라고도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집안에 마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음력 2월 1일에 호랑가시나무가지를 꺾어 물고기와 같이 문 앞에 매다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전나무 숲 길과 꽃 창살로 유명한 내소사채석강에서 나와 전나무 숲길로 잘 알려진 사찰 내소사를 찾았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였다고 한다. 절 앞에는 큰 당산나무가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하늘을 찌르는 높은 전나무를 보며 감탄을 한다.
약 600미터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아름다운 숲길로 선정되었는데 천천히 여유를 두고 걸으며 시간의 여유와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대장금 등 드라마 촬영된 장소가 있다.
천왕문에 들어서서 대웅보전에 이르기까지는 서너 단의 돌 축대가 있다. 봉래루(蓬萊樓)라는 이층 누각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며 중간에 큰 천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는 느티나무가 가로막고 있는데 절의 배치에 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300년이 넘은 보리수 나무도 있다.
중심 건물인 대웅보전으로 가기 전에 내소사 고려동종(보물 277호)이 있다. 현재 범종각 속에 보호되고 있는 이 종은 고려 시대 동종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종이다.
종의 아랫부분과 윗 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고, 어깨부분에는 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종의 어깨 밑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4개 있고, 그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유두가 있다.
당좌는 연꽃으로 장식했고, 종의 몸통에는 구름 위에 삼존상이 새겨 있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청림사 종으로 만들었으나, 조선 철종 원년(1850)에 내소사로 옮겼다고 한다.
대웅보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서 있는데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이 탑은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4단의 층급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초기 석탑으로 추정된다.
대웅보전에서 가장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내부 불상 뒤쪽 벽에는 그려져 있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은 좌우로 위를 보면서 쭉 지나가다가 보살상과 눈이 마주치면 근심걱정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시고, 소원도 성취된다고 한다.
또 문 창살에 새겨진 꽃무늬 창살들인데 그 모양이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특이하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번 정도 꽃창살 무늬가 아름다워 엽서로도 제작한다고 한다.
설선당은 앞면에서 남쪽 2칸은 난방을 위한 부엌으로 큰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으며 큰 무쇠솥이 유명하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설선당과 요사는 4면이 연결되어 중앙 내부에 마당과 우물이 둔 回자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아늑한 개암사의 고요함 내소사 만큼은 아니지만 부안에서 곡 둘러보아야 할 절이 있는데 바로 개암사이다. 절 입구에는 새로 크게 일주문이 건립되어 있었다. 공포마다 각종 동물들을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공격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을 때, 우(禹)장군과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의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때에 원감국사가 이곳에 와서 절을 다시 지어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그 뒤에 여러 번의 수리가 있었다.
개암사 대웅보전 공포 양쪽에 있는 도깨비 문양개암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보전(보물 292호)은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이 건물에서 주목해서 보지 않으면 자칫 못 보는 곳이 중앙 공포의 양쪽으로 도깨비 문양(용이라도 한다)의 나무 조각이 정면을 향해 무서운 눈초리로 꿰뚫어 보고 있다. 법회 중이라 내부의 화려한 닫집과 삼존불상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대웅보전 앞에는 돌 석조에 명문이 적힌 것이 있다. 이 절에는 여러 사찰과 달리 탑이 없었다. 들어오면서부터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런 이유인지도 모른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응진전이 있다. 이 건물 안에는 불상과 16나한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9호)이 모셔져 있는데 그 표정과 자세가 매우 다양하고 가지 가지여서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며 채색은 새로 하였다.
지장전에 모셔진 청림리 석불좌상지장전에는 청림사(靑林寺) 절터로 불리는 곳에 있었던 불상을 옮겨온 청림리 석불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23호)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원래 목과 몸체 부분이 떨어져 있었는데 근래에 복원하였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와 등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갠 뒤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곧게 펴 맞대고 있다.
모아진 손바닥으로 구슬을 감싸 쥐고 있어서 지장보살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별도의 종각에 작은 크기의 종이 있는데 조선시대 종으로 숙종 15년(1689)년에 주조되었다. 지정된 문화재이나 안내문이 없어 지정된 문화재인지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알 수 없어 안내문 설치가 필요해 보인다.
대웅보전 뒤편의 울금 바위와 한 폭의 그림을 자아내는 듯 조용한 산사는 잘 어울린다. 울금바위가 있는 곳은 주류성(우금산성)으로 개암사 뒷길로 30여 분쯤 올라가면 된다고 하나 날씨 관계로 가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변산반도의 아름다움과 전나무 숲길의 여유를 부안을 찾아서 느껴 보는 것도 주말 여정에 여유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