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강원도 홍천에서 아름다운마을 초등학교와 생동중학교를 14명의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다. 공동생활을 하며 서석면 효제곡 마을 생활을 경험했다. 생태뒷간을 쓰며 그 오줌과 똥으로 농사를 짓는다. 2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학교와 생활관을 오가고, 오가는 길에 보는 풀, 나무, 곤충, 열매를 본다.가끔은 가까이서 관찰하는 다람쥐, 고라니, 멧돼지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봄에는 봄나물을 뜯어 먹고, 여름에는 오디를 따 먹으며 자연의 흐름을 자연스레 몸으로 익혔다. 오가며 만나는 마을 주민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며 어엿한 마을 주민이 되어 갔다. 이 흐름을 이어서 홍천이 속한 강원도 땅을 공부하기 위해 강원도 동북부 순례길에 올랐다. 강원도 땅에 서려 있는 질곡과 역사를 알아보고, 거기서 시작되는 평화와 생명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이다. 2011년 7월 18일에서 22일까지 홍천에서 시작하여 인제, 양구, 고성, 속초를 돌아보며 강원도 동북지방을 순례했다. <기자 말>
어느 땅이 정말로 절망과 절규의 땅인가?인제에서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갔다.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한반도의 큰 등줄기를 형성하는 백두대간에 속한 고개이다. 진부령은 이들 고개 중 가장 북쪽에 있는 고개다. 그리고 인제와 고성을 가르는 경계점이기도 하다.
고성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군이다. 통일전망대를 보고 동해안을 따라 7번국도를 타고 화진포에 갔다. 화진포는 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화해하기 힘든 두 사람의 별장이 차로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김일성과 이승만의 별장이 그것이다. 김일성과 이승만은 역사의 라이벌이며 무력통일을 기도했던 인물이다. 이들의 별장이 어떻게 화진포에 함께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38선과 휴전선의 차이를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한다. 38도선은 원래 분단선이 아니었다. 세계2차대전에서 승리한 미소 양군이 각각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무장해제할 구역을 만들기 위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긋고, 소련이 이에 동의함으로 생긴 하나의 경계선이다.
이후 1948년부터 장군 김일성은 이곳을 가족들과 함께 휴양하는 별장으로 삼았다. 그런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한반도 땅을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지금의 휴전선을 중심으로 대치선이 형성된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소련의 제안으로 휴전회담이 열리고 대치하고 있는 선을 기준으로 지금의 휴전선이 결정되었다.
고성은 38선보다 이북에 있고 휴전선보다는 이남에 있다. 다시 말하면 1945년부터 1950년까지는 북한에 속한 땅이었고, 1953년부터는 남한에 속한 땅이 되었다.
이승만별장에는 현재 이승만기념관이 들어섰고, 김일성별장에는 '화진포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안보전시관이 들어섰다. 두 별장을 모두 다녀온 친구들의 소감은 "헷갈린다"는 것이었다.
먼저 이승만기념관에서 소개된 이승만은 독립투사이며 이 나라를 건국한 영웅이다. 4·19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잠깐 소개된 그 내용도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이야기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하들의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고, 권력에는 욕심이 없는 그가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담담하게 스스로 하야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화진포의 성에 소개된 북한의 모습은 참혹하다. 북한 주민들의 굶주린 모습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대비시켜 놓았다. 또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총살당하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을 절망과 절규의 땅이라고 묘사한다.
서로를 그리는 방식을 바꿔야 평화와 통일이 온다이런 극단적인 묘사는 여전히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는 우리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함께 여행을 떠난 한 친구가 질문한다.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그곳을 절망과 절규의 땅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우습습니다." 북한은 우리를 어떻게 묘사할까? 용산참사 현장을 보여주고, 대기업 총수의 호화스러운 삶과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도 힘든 사람의 모습을 대비시키고, 등록금이 없어 자살하는 대학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생태계를 보여주지 않을까? 그리고 남한은 절망과 절규의 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결국 평화를 지향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서로가 서로를 그려내는 모습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안보전시관'이라는 틀에서 여전히 서로를 욕하고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는 저급한 우리의 인식 수준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큰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부풀리고 왜곡해서 혹 달린 괴물로 서로를 묘사하는 유치한 코미디를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친구들의 기억에 남한의 한 지도자와 북한의 모습을 대비시켜놓은 이 풍경이 강렬하게 남은 듯하다. 몇몇 친구들은 잠시 후 시작되는 방학 때,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해 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련하여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가"라는 평가와 "남북 분단을 초래한 자이며 독재가"라는 평가 사이에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떤 입장을 표명하고 평가를 내리기 이전 다양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균형감각과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포용력, 그리고 지적인 성실함을 키우는 것이 공부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우리 학교 친구들에게 좋은 공부의 계기가 되었다.
사람은 서로 가르고 물길은 서로를 잇는다 현재 대부분의 지도는 행정구역과 도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옛지도, 특히 대동여지도를 보면 우리 땅을 산줄기와 물줄기를 중심으로 이해한다. 특히 우리 땅은 산 그 자체이다. 흔히 70%가 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 않은가. 산줄기와 물줄기가 땅의 모양새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 산과 강은 무질서하게 나열되지 않고 일정한 질서를 지닌다. 우리 선조들이 지도를 만들고 우리 땅을 이해하며 발견한 대원칙. 곧 "산은 곧 물이고, 산은 강을, 강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이다.
홍천에서 인제로, 인제에서 고성으로 고성에서 속초로 속초에서 다시 인제로 오는 여정에서 우리는 이 산줄기와 물줄기를 확인했다. 먼저 홍천 내면에서 인제 기린면으로 흘러가는 천을 확인했다. 내면과 기린면의 한 글자씩을 합쳐 내린천이라 부른다. 내린천은 상남면에서 방내천과 합쳐진다. 또 기린면에서 방계천과 합쳐 더 큰 물줄기를 형성하며 흘러간다. 그리고 내린천은 한계령에서 내려오는 한계천과 만나 소양강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한계천은 소양강에 이르기 훨씬 이전 북한에서 흘러오는 인북천과 만난다. 그러니까 북한의 한 물줄기인 인북천이 한계천과 만나고 이 한계천은 우리 학교 근처에서 시작하는 내린천과 만나 소양강을 이루는 것이다. 소양강은 다시 북한강으로 흘러간다. 이 북한강은 남한강과 양평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을 이루고, 한강은 한강하구에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임진강과 만난다.
산자락에서 흘러나온 시냇물이 천으로 흘러가고 천과 천이 만나 강을 이루고, 강과 강이 만나 바다를 이룬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선이 있다. 군사분계선, 남방/북방 한계선, 추진철책, 민통선 등등. 우리는 우리 땅을 가르고 경계 짓고 철조망을 치고 서로 구분 지으며 적대시한다.
반면 자연은 그것과 무관하게 서로를 연결 짓고 소통하며 우리 땅을 흘러 큰 바다를 이룬다. '남'이고, '적'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들의 큰 어머니인 자연은 인간의 적대와 전쟁, 시기, 반목과 관계없이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 왔다. 아무리 억한 인간이 저지른 만행 속에서도 자연은 그 모든 것을 품고 화해시키고 싶어 하지 않을까?
친구들과 함께 산줄기 물줄기를 공부하고, 그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물줄기'들을 걸으며 확인했다. 그리고 내린천과 한계천이 합쳐진 합강정에서 소양강이 시작되는 광경을 보았다. 이 소양강이 북한강으로 흘러가고 한강을 이루어 바다로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발을 물에 넣고 싶었다. 모두 신발을 벗고 강에 발을 담근다. 물이 참 시원하다. 우리도 '시원하게' 통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다음번에는 꼭 금강산에 가고 싶습니다" 마지막 일정으로 설악산 등반을 했다. 이번 등반은 두 가지 의미에서 새로웠다. 먼저 우리가 시도했던 산행 중 가장 긴 길이다. 외설악산에 속하는 신흥사에서 출발해서 마등령을 넘어 한용운 선생님이 불교에 입문하시고 <님의 침묵> 등 중요한 시를 쓰신 백담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대략 15km 정도이다. 초등학생과 중학교 1학년 친구들에게 만만치 않은 코스라 모두들 긴장하고 설레며 산행을 준비했다.
또 한 가지 의미는 산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것이다. 속초와 인제를 가르는 고개가 마등령이다. 흔히 산과 강이 지역을 가르는 중요한 경계점이 된다고 하지만 차가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중요한 운송수단이 되며 그 감을 잃어버렸다. 속초 신흥사에서 직접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인제 땅을 밟는 느낌이 우리 친구들에게 새로웠다.
외설악과 내설악은 산행의 느낌이 다르다. 외설악은 거칠다. 그렇지만 너무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내설악은 부드럽다. 백담사로 내려갈수록 환상적인 계곡이 펼쳐졌다. 거칠게 내뻗고 솟은 아름다운 자태와 광활하게 펼쳐진 계곡은 같은 산에서 두 가지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를 잘 보여준다.
큰 도시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면 이상한 눈빛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서로의 마음에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실수로 인사했나?', '내가 못 알아 본 게 아닌가?'라는 찝찝함이 있다. 아니 이런 찝찝함보다 익명의 대중 속에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나의 길을 가는 것에 더 익숙하다.
헌데 효제곡 마을에서 생활하며 저분이 누구고 어떤 분인지 모를 때도 꼭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 한 분 한 분을 알아가고 있다. 여기서 '인사'는 서로 잘 안다는 것의 표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산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신흥사에서 처음 산행을 시작했을 때 마주치는 사람에게 우리는 아무런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갈 그 길에서 걸어오는 분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힘을 냅시다'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주고받는 말이 산을 오르내리는 데 큰 힘이 된다.
산에서 '인사'의 의미는 또 다르다. 이 험한 곳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인사'의 의미도 '장'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아침 9시에 시작한 산행이 6시 30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모두들 감격에 찬다. 산행을 한다는 것의 매력은 뭘까? 숨이 차고 힘이 들 때 '내가 왜 이곳을 올라왔나?', '다시는 이런 곳 올라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긴 산행이 끝마치면, 꼭 다시 산으로 돌아가고 싶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오른 산행. 생애에서 가장 긴 산행이었던 설악산 등반도 우리 친구들에겐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오를 때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오고 싶단다. 그런데 대부분 친구들이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산은 금강산이이다.
"설악산을 등반해서 너무 뿌듯했어요. 다음번엔 금강산을 꼭 등반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나누고 경계 짓고 구분 지으려 하지만, 우리 산줄기와 물줄기는 서로를 통하게 하고 연결 지으려 한다. 자연의 품에서 '통'하는 세상을 함께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