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으쌰으쌰! 함께 파이팅을 했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으쌰으쌰! 함께 파이팅을 했습니다. ⓒ 김민지

7월의 마지막 날, 잠깐 그쳤던 비가 또다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30일에 이어 31일에 수해복구를 하기 위해 간 구룡마을. 흐린 날씨와 줄기차게 내리는 비, 그리고 판자촌의 모습이 아직도 눈가에 우울한 영상으로 아른거립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니 그 많은 주민들에게는 보금자리일 텐데, 그곳을 보고 놀라고 슬퍼하는 것조차 죄송했습니다.

구룡마을은 저도 트위터를 통해 처음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된 곳입니다. 그동안 언론에는 많이 보도되었다지만 제게는 이곳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판자촌 구룡마을은 '강남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라는 놀라움을 결코 감출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전두환 정권 당시 빈민촌을 정리하면서 철거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판자촌이라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집의 모습을 갖춘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핸드폰 사진기로 찍으면 그 화면 안에 집안이 다 들어오는, 그런 크기의 집들이 아주 많이 붙어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인도 빈민가로 봉사를 다닌 저는, 그곳에서 받은 느낌을 대한민국,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구룡마을엔 1200 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번 폭우로 500여 가구가 침수됐다고 합니다. 보면 당연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그런데 우리는 이제야 이곳의 상황을 알게 되고 관심 갖게 된 것입니다.

김제동씨의 트윗 덕분에 30일, 정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구룡마을에 모였습니다. 취재를 하는 분들도 꽤 보였습니다. 찌는 날씨였지만 환한 햇살 탓에 대체로 발랄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예상은 했지만) 아쉽게도 자원봉사자는 우리뿐이었습니다. 제가 자원활동 중인 평화재단과 정토회에서 지난 금요일 청년들을 긴급소집 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청년 50여 명이 조를 나누어 복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 대야 할지 모를, 그곳 구룡마을

 구룡마을 일부의 모습, 이렇게 판자로 된 집들이 미로처럼 엉겨있습니다.
구룡마을 일부의 모습, 이렇게 판자로 된 집들이 미로처럼 엉겨있습니다. ⓒ 김민지

 수해피해를 입은 할머니의 집, 여러명이 붙어서 나르고 치우고 닦고 또 닦았습니다.
수해피해를 입은 할머니의 집, 여러명이 붙어서 나르고 치우고 닦고 또 닦았습니다. ⓒ 김민지

 할머니의 작은 집에서 많은 것들이 버려졌습니다.
할머니의 작은 집에서 많은 것들이 버려졌습니다. ⓒ 김민지

"똥물이 들어차서, 온 집안에 똥냄새가 진동해. "

어린 손녀와 사는 관절염을 앓으시는 할머니의 집, 치울 손이 없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집들이 건물로 치면 반지하 위치라 폭우에 취약한 구조였습니다. 할머니의 집도 그렇게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방안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났습니다. 구룡마을 전체를 휘감고 있던 그 냄새가 똥물 때문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던 그곳은, 할머니의 지시와 함께한 사람들의 힘으로 하나둘씩 버려지고 치워졌습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곳에서 또다시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애엄마는 애가 3살되기 전에 나가버렸고 애아빠는 만날 술만 마시다가 뇌졸중으로 넘어가버렸지."

집이 반쯤 치워졌을 때, 할머니가 같이 있자며 손녀를 데려왔습니다. 손녀는 이곳이 무서워서 오고 싶어하지 않아 반장아주머니네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있어도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던 아이는, 엄마가 도망간 사실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77세의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방안의 그 퀴퀴한 냄새는 끝까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통풍이 되지도, 해가 들지도 않는 구조였습니다. 아무리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지만, 저 어린아이가 이곳에서 엄마도 없이, 매번 이런 일을 겪어가며 자라나기엔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 전체에서 진동한 하수구 냄새

 토사가 쏟아져내린 곳을 정비하고 축대를 쌓는 작업을 했습니다.
토사가 쏟아져내린 곳을 정비하고 축대를 쌓는 작업을 했습니다. ⓒ 김민지

 비 맞으며 일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한 할머니는 커피를 타서 오셨습니다.
비 맞으며 일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한 할머니는 커피를 타서 오셨습니다. ⓒ 김민지

대부분의 청년들은 축대를 쌓는 일에 투입됐습니다. 지난 폭우에 토사가 쌓여 둑이 차서 넘치듯이 흙탕물이 넘쳐버렸다고 합니다. 집들 대부분이 지나다니는 길보다 낮아 그냥 내리는 비에도 물이 차는데, 둑까지 넘쳤으니 그 피해가 말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또다시 폭우가 내려 또 넘치기 전에 그곳을 정비하고 축대를 쌓는 것이 작업의 목표였습니다. 정신없이 쏟아져 내린 통나무, 쓰레기부터 진흙더미를 포대에 넣어 옮기고, 굴러 내려와 박힌 커다란 바위를 빼냈습니다. 일하는 청년들에게서 땀과 빗물이 뒤섞여 흘렀습니다.

그곳은 유난히 냄새가 심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그곳은 마을의 하수구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물과 하수가 뒤섞여 내려가는 곳인데, 그런 곳이 넘쳤으니 마을 전체에서 하수구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장화가 부족해서 대부분은 운동화를 푹 담그고, 토사와 하수 부유물이 섞인 그곳에서 그냥 그렇게 일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너무 애쓰네, 애써. 미안하게…."

마을의 아주머니들은 우리에게 너무 미안해하셨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릴수록 더욱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직접 싸온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덕분에 컵라면까지 얻어먹게 됐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도 같은 작업이 계속됐습니다. 한창 작업 중에 구청에서 조사를 나왔다고 했습니다. 강남구청장도 들렀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장소를 지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봤습니다. 우리한테 고맙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습니다. 한 주민 분은 "그래도 여기도 강남구인데 와야지"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구룡마을이 조금이라도 주목받지 않았다면 이번에 구청장이 왔을까? 물음표만 남습니다.

구룡마을에서 아름다운 강정해안을 그리다

 이런 바위들이 산 위에서 쓸려내려와 바닥에 박혀있었습니다.
이런 바위들이 산 위에서 쓸려내려와 바닥에 박혀있었습니다. ⓒ 김민지

 내려가는 길에 본 구룡마을의 모습과 멀리보이는 타워팰리스의 조화
내려가는 길에 본 구룡마을의 모습과 멀리보이는 타워팰리스의 조화 ⓒ 김민지

비는 갈수록 많이 쏟아졌습니다. 금세 집집 골목으로 차오른 빗물을 보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쏟아지는 비에, 막판에 모두 붙어 작업을 했더니 생각보다 일찍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산 바로 아래, 꽤 높은 지대에서 작업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줄줄이 늘어선 판자촌의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들, 한 눈에 그것이 타워팰리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타워팰리스를 그날 처음 봤습니다. 구룡마을에서 타워팰리스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했습니다.

마치고 함께 일했던 팀과 둘러서서 소감나누기를 했습니다.

"이런 현장봉사는 처음이다. 술 먹는 모임에 대한 고뇌가 있었는데 보람찬 하루였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재밌고 보람 있었다."
"판자촌은 처음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인정하기 싫어도 현실이니까, 더 열심히 생각해봐야겠다."
"구룡마을이라기에 무리해서 왔고, 도움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좋았고 보람있었다는 소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도 함께해서 참 좋았습니다. 비가 오는 와중의 수해복구는 유대감을 더욱 돈독히 해줬습니다.

바로 지난주에는 강정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어느새 내 마음 속 아픈 이름이 되어버린 두 마을, 강정과 구룡. 구룡마을 판자촌에 서서 아름다운 강정의 해안가를 그려봅니다. 그렇다고 별로 슬프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렸습니다.


#구룡마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