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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대한민국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이다. 이 마을 앞 바닷가, 여기 사람들은 그곳을 중덕 구럼비라고 부른다.

 

그 해안은 제주최고의 경승과 사람이 살 만한 자연조건을 갖춘 마을이라는 칭호인 '일강정'에 걸맞게 맑은 물이 철철 흐르는 강정천이 바다에 가닿는 지점이다. 제주섬에 물이 흐르는 내[川]는 없고 바싹 말라 바위와 자갈투성이 뼈대를 온전히 드러낸 건천(乾川)만이 있다고들 한다. 그 상식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강정천이 흘러 맞닿은 강정바다의 물은 맑고 깊고 기품이 서려 있어 안온하나 동시에 호방하다.

 

수생자원이 다른 데보다 풍부한 것이야 당연지사, 두 말하면 잔소리다.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민물과 태평양을 달려온 바닷물이 만나 서로가 품을 수 있는 만큼 온갖 것을 나눠 품은 덕에 자원이 많기로 제주바다 중에서도 첫 손가락을 꼽아왔다.

 

그 중 딱 하나만 대표적인 생물을 들라면 서슴없이 강정앞바다에만 사는 '붉은발말똥게'를 뽑을 참이다. 퉁명스럽게 생긴 꼴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밝은산호색으로 짙게 물들여 단장한 큼지막한 집게발을 가진 게이다.

 

거기, 화산섬 제주의 기원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도록 화산활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약 2.5km에 걸쳐 펼쳐지는 장대한 너럭바위는 지리자원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태평양을 향하여 한껏 늘어놓은 그 기기묘묘한 형상과 온갖 색깔을 드러내는 아름다움이라니! 유네스코 자연 유산으로 등재된 모리셔스 섬이 자랑하는 '무지개언덕'을 저리 가라 할 정도이다.

 

강정은 우리가 살아오고 앞으로 살아갈 생활터전

 

제주의 랜드마크인 한라산을 가장 우람하게 품고 있는 강정, 마을 어디에서나 그 한라산은 압도할 듯 뒤 저만큼 물러앉아 지켜본다.

 

아니다. 아직 진짜 그 수생생물이 넘쳐나는 강정천이, 그 화산지질 표본실 같은 중덕갯바위가, 멸종위기종 붉은발말똥게가 살고 천연기념물 제442호로 지정된 연산호 군락이 넘실대는 강정바다가 왜 우리에게 없어서는 절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척 단순하다.

 

강정은 우리가 누대로 살아오고 앞으로도 살아갈 생활터전이다. 그 바다와 갯바위는 물질하고 고기 잡고 해초를 따서 하루를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 생존을 위한 바다밭이다. 바닷가 옆 땅뙈기는 비록 비좁지만 일용할 양식과 푼돈이라도 벌어 후세대인 어린사람들 공부하는데 학자금을 보태주는 화훼작물과 감귤을 경작하는 기름진 옥토이다.

 

이쯤에서 한 번, 딱 한 번만 눈을 살포시 감고 상상해 보기 바란다. 너무 애쓸 필요 없다. 제주도, 그리고 제주사회,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강정으로 대표되는 마을들, 마지막으로 그 터전을 싹 허물어버리고 건설하려는 해군기지, 이지스함이 드나드는 거대한 군 기지를 떠올려 보기를 간절히 권한다.

 

우리 정부는 해군을 앞세워 강제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하고 있다. 몇 년 전 정부가 평화선언한 '평화의 섬 제주'는 깡그리 잊은 듯하다. 며칠 전부터는 경찰수뇌부의 지시에 의하여 공권력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를 두고 제주의 한 언론은, '계엄 상황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썼다.

 

제주 4.3사건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예전에도 제주도는 국가권력에 의하여 유린당해 피바다 속으로 침몰한 적이 있다. 바로 '제주4.3사건'이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치름으로써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것을 반대한 것을, '북한에 동조하는 빨갱이 섬'이라고 매도하여 죽여 없애고,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 버리는 삼진(三盡)작전으로 섬을 쓸어버렸다.

 

그때 제주섬 사람들은 벌레처럼 죽어갔고 살아남은 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하여 강제로 이산의 길을 가야했다.

 

그러나 그토록 혹독했던 국가권력에 의한 힘의 횡포에 대하여 국가는 사죄하고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선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또 '사건'을 벌이려 하고 있다. 평화를 평화로 지키자는 제주도민을 다시 흩어놓으려 한다. 또다시 디아스포라가 이 땅에서 일어나는가? 어디로 어떻게 유배를 당해야 하는가? 왜? 무력으로 흩으면 그럴수록 디아스포라의 간극은 극과 극에 치우친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제주도민을 왜 그렇게 덫을 놓고 사냥감을 몰아가듯 이념의 그물로 포위하는가.

 

자. 눈을 감고 상상한 제주도를 말해주기 바란다. 무엇이 보이는가? 우리 삶터를 그냥 놔둬달라고 지난 4년간 간절히 바라고 절규하는 제주도가, 제주사람이, 혹시 대한민국 국토가 아니라 점령된 식민지이며 제주도민은 지배대상인 '식민지 백성'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종북세력'이 판을 치고 '좌빨'들이 선동하는 불온한 일부 세력이 집결하여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접근금지구역의 난동으로 보이는가?

 

강정마을 지키려는 이들을 불온세력으로 매도하지 말라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다행이다. 국가가 국가안보를 튼실하게 하는 것은 의무이다. 그러나 국민이, 국토가 볼모잡히듯 전제된 국가안보는 진실이되 진실이 아니다. 양비론을 편다고 할지 몰라 여기, 마침 전자우편으로 배달된 '사랑밭새벽편지'에 그 진실의 양면성에 대하여 쓰고 있어 여기 빌어다 쓰기로 했다.

 

"공식적으로 진실인 것이라고 해도 모든 이들에게 다 옳은 것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한 입장과 상황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진실은 반대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공감하고 양쪽 모두에게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따져보고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원저자의 양해 없이 여기 인용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라면서, 옛날 이솝이 주장한 바, "대체로 진실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기 전, 먼저 그 양면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라는 말에 대한 해설이 지금 강정마을에 일어나는 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전제해 봤다.

 

부디, 정부는 "불안하지만 결연한 마음으로 강정을 지키기 위한 비폭력·비타협의 결사항전에 돌입했다"는 '강정 마을회'와 이를 지지하는 대다수의 제주도민을 불온한 세력들로 매도하지 말기 바란다.

 

물론 개중에는 몇 사람, 외부인도 있고 정치인도 있을 법하다. 그렇다고 본말을 전도한 채 빈대 몇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할 텐가. 해묵은 명제이지만 '사람은 먹고 자고 입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한다. 자유와 평화가 보장될 때 비로소 행복한 사람, 행복한 도민, 행복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림화 기자는 작가이자 한국작가회의 제주지회장입니다. 


#강정마을#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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