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김백일(金白一, 본명 김찬규, 1917∼1951) 장군 동상이 온갖 수난을 당하고 있지만,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는 철거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오는 광복절 이전까지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제철거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경남 거제시가 행정대집행에 나설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는 지난 5월 27일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동상을 세웠다. 1950년 9월 흥남철수작전을 주도한 인물이 김백일 장군(육군 제1군단장)이라 보고 동상을 세웠던 것. 강원도에 세우려고 하다가 거부당하고 이곳에 세웠다.
그런데 그 뒤 김백일 장군의 친일 행적이 드러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내면서 그가 "일제강점기 봉천군사학교를 졸업하고 간도특설대의 창설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독립군을 토벌하는 일에 앞장섰다"며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에 거제경실련 등 9개로 구성된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는 지난 5월 30일 "동상을 철거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민단체는 의견 수렴도 없이 친일파 동상을 세웠다며 거제시까지 맹비난했다. 시민단체는 지난 6월 15일 동상에 계란 세례를 퍼부었다.
거제시의회도 나섰다. 거제시의회는 6월 29일 '동상 철거 촉구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옥영문 의원은 한동안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7명의 의원들은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거제시가 동상을 세우면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남도는 거제시에 동상 철거 공문을 보냈다.
급기야 거제시도 동상 철거를 요청했다. 거제시는 지난 7월초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에 동상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보낸 것이다. 거제시는 자진철거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그래도 동상이 철거되지 않자 시민단체가 또 나섰다.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는 지난 7월 20일 김백일 장군 동상을 차양막으로 덮어버리고, 쇠사슬로 묶어버렸다. 다음날 거제시는 차양막을 거둬내고 나무로 각을 만든 뒤 비닐로 덮어 놓았다. 지금은 동상은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보수 단체, 집회 열기도 ... 유족, 고소장 제출
보수단체들도 나섰다. 거제시의회․거제시청 항의방문에다 집회에 이어 고소까지 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6·25참전유공자회, 고엽제전우회, 자유총연맹은 지난 7월 29일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앞에서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 중지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철거 계고장을 보낸 거제시와 시민단체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부 시민단체가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거나 "6·25전쟁 영웅인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행위를 규탄한다", "전쟁영웅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망동을 즉각 중지하라", "종북세력 국론분열 북한도발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ROTC구국연합 김정식 사무총장은 "김백일 장군동상 철거준동은 소수의 일부 거제시의원들과 시민단체연합회의 의도된 선전선동으로서 이들의 경거망동은 일천만 실향민을 실망시키고 850만 대한민국 재향군인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며 "국가 정체성을 지켜온 모든 애국 세력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갑제씨도 김백일 동상 철거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고소도 이어졌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유족, 함경남북도민회는 동상에 검정색 차양막을 씌우고 쇠사슬을 묶은 시민단체 대표를 '사자의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지난 7월 29일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이 사건으로 인해 유가족들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통탄의 아픔을 겪게 했을 뿐만 아니라 김백일을 존경하는 선·후배 군인들의 가슴과, 김백일이 6·25전쟁 당시 구출해 낸 10만 명이 넘는 피난민들의 가슴까지 갈기갈기 찢어 고통받게 했다"며 "이는 이미 죽은 자를 다시 죽이는 일종의 '인격(人格) 살인'으로서 응분의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15일까지 자전철거 않으면 강제로 할 것"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는 오는 8월 15일 이전까지 동상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광복절 때 강제 철거에 나서기로 했다.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 진휘재 집행위원장은 "15일 이전에 철거하라고 시한을 정해 놓았다. 지금으로서는 그때까지 기다려볼 것"이라며 "만약에 그대로 있다면 강제 철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거제시도 동상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보냈다. 거제시는 자진철거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는데,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소에 대해, 그는 "차양막을 치고 쇠사슬을 묶은 게 사자명예훼손이라는 주장인데, 처음에는 노끈으로 묶으려고 하다가 쉽게 풀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쇠사슬을 사용했다"면서 "(명예훼손 고소에 대해) 대응할 것이다. 동상으로 인해 거제시민의 명예가 훼손된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