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세계 거대 여행 사업체들에 돌아갈 돈을 현지인들에게 주자는 취지의 '공정여행'을 널리 알리고자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를 기획했습니다. 공정여행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온 김현자 기자의 '차마고도' 여행기와 이정희 기자의 '내몽골' 여행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
시저우는 당나라 남조국시대에 대리(따리)의 문화·상업중심지였다. 현재 당시 고관들의 호화주택들과 백족(바이족)의 전통가옥(민가), 불교와 도교 사원이 많이 남아 있다. 말을 타고 창산에 오른 우리는 중화사에서 얼하이 호수를 감상한 후 걸어 내려와 시저우로 갔다. 백족의 삼도차(三道茶) 공연을 보고자.
전통 혼례를 춤으로 표현하면서 공연 중에 관객들에게 세 가지 맛의 차(茶)를 대접하는지라 삼도차 공연이다. 혼례를 치른 신랑을 매달아 놓고 발바닥을 때리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신부의 여자 친구들이 신랑의 볼을 꼬집거나 밀치는 등으로 괴롭혔다.
공연 중에 배우들이 차를 대접했다. 첫째 잔에는 쓴맛, 두 번째 잔에는 단맛, 세 번째 잔에는 단맛과 쓴맛과 신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묘한 맛의 차를 담아. 이 세 가지 맛의 차로 우리네 삶을 표현한 거란다. 공연보다 얻어 마신 차가 각별하게 와 닿았다.
점심을 먹은 후 리장(여강)으로 향했다. 대리에서 리장까지 대략 4시간. 얼마나 갔을까? 명색이 고속도로인데 마구 파헤쳐 놓고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조치조차 하지 않아 평평한 곳보다 움푹 파인 웅덩이가 더 많은 길이 나타났다.
버스 앞으로 눈길이 쏠렸다. 우리 앞에서 흙먼지를 잔득 뒤집어 쓴 채 심하게 요동치며 겨우겨우 가는 버스가 위태롭기만 하다. 저러다가 한쪽으로 넘어져 버리는 것 아닌가 마음 졸여야 할 정도로 심한 요동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가야 할 길이다.
앞쪽에 앉았는데도 차가 뛸 때마다 앉은 채로 같이 뛰고 출렁거려야만 했다. '이러다가 허리를 다치는 것 아닌가' 염려될 정도로 심하게 뛰곤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차가 뛸 때 머리가 버스 천정에 닿곤 했단다. 그날 우리가 달려야만 했던 그 형편없던 길은 어림짐작 30km정도는 되거나 넘을 것 같다. 3km가 아닌 30km말이다.
정부 지정 여행사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이런 법이 어딨어?
그렇게 도착한 리장 입구.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일이 우리를 불쾌하게 했다. 예전과 달리 이젠 여행사를 통해서만 리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방침을 세웠다는 것이다. 여행자 각자 여권 심사를 해야 한다며 우리의 여권을 모두 챙겨간 가이드가 나타날 때까지 '여기까지 와서 리장 고성에 가보지도 못하는 건가?'의 생각으로 조마조마해졌다.
윈난의 관광수입은 윈난이 아닌 중국 정부로 간단다. 그래서 윈난의 불만이 크단다. 그런데 이것으로도 모자라 얼마 전부터 리장에 가는 외국인들은 중국 정부가 지정한(?) 여행사를 통해서만 갈 수 있도록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800년 전에 건설된 리장 고성은 중국 혹은 윈난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중국을 대표하는 여행지이다. 십수년 전에 리장에 큰 지진이 있었는데 근래 건설된 집과 도로는 모두 파괴되었지만 800년 전에 건설된 구시가지의 집과 도로는 멀쩡해 그 가치를 인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1997년)되면서 세계인들에게 유명해졌다.
유네스코는 인류 전체가 공유하고 보존할 가치와 필요성이 있는 자연환경이나 유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해석을 달리하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들은 한 국가의 자산만이 아닌 인류 공동의 것이란 이야기다.
중국 정부의 이런 방침은 여행자들의 안전 때문이란다. 그런데 글쎄? 여행사를 통해서 가면 어떻게 안전이 확보된다는 걸까? 예전과 달리 특정 단체를 통해서만 갈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여행자들이 무엇을 더 부담해야 하는지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용은 다르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있는 일이므로.
세계문화유산 여행지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이런 방침을, 아니 횡포를 제제하거나 바꾸게 할 세계문화유산 관련법 같은 것은 없을까? 씁쓸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이제 막 비가 그치고 있는 리장 고성으로 들어갔다.
짐을 풀고 우리가 저녁을 먹은 곳은 '낭비일생객잔'이다. '일생을 낭비해도 후회가 없을 만큼 아름다운 객잔? 혹은 리장?' 정도로 해석했다. 나중에 보니 낭비일생이란 카페도 있었다. 8박 9일간의 여행 중 대부분 그 지역 소수민족들이 운영하는 객잔에서 잤는데, 객잔 대부분 이처럼 각별한 뜻의 현판을 입구나 객잔 처마에 걸어두고 있어서 현판 보는 재미가 남달랐다. 한문 실력이 형편없음을 부끄러워 할 만큼 모르는 글자들이 많았지만.
저녁을 먹은 후 리수진사 공연을 보고자 객잔을 나섰다. 리수진사 공연은 윈난의 여러 소수민족들의 전통의상과 화려한 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윈난 지역 최대 공연이다. 공연을 본 곳은 '윈난 리장 국제민족문화교류 중심극장'이란 다소 긴 이름의 극장. 우리가 머문 고성 구시가지에서 극장까지 가려면 800년 전에 건설된 구 시가지를 한참 걸어간 후 신시가지를 한참 걸어가야만 했는데, 구 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시끌벅적한 마이크, 처음 도입한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리수진사 공연을 보기 전 한 시간가량 흩어져 리장 고성의 밤풍경을 즐겼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는 골목에서나 겨우 고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리장 고성의 밤은 너무 시끄러웠다. 고성 광장 위쪽에 즐비한 술집들이 마이크를 통해 질러대는, 우리나라 유흥가나 로데오거리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들 때문에.
술집들의 풍경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성 안에서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술집 안을 보니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 있다. 남녀가 부둥켜안고 흐느적대고, 어떤 사람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희가 알몸에 가까운 채로 현란한 춤을 추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그리고 술에 취한 사람들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나가야 할 정도로 술집 앞은 정신없고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리장 고성에 이처럼 시끌벅적한 마이크를 처음 도입한 것은 한국인들이란다. 리장 고성도 사람 사는 곳이니 한국인 아니어도 누군가 도입했으리라. 근본적으로 리장 고성이나 중국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자리 잡을 수 없었으리라. 이렇게 이해해 보려고 했으나 리장 고성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최초를 기록했다는 씁쓸함이 쉬이 털어지지 않았다.
리장 고성이 늘 그토록 정신없고 시끄러운지, 마침 휴가철이라 유독 혼란스러웠는지 하룻밤 잠시 본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자칫 경솔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의 도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신시가지는 그렇다 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성 안에서의 시끌벅적한 음주가무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결코 좋게 기억되지 못할 것 같다.
리장의 평균 해발은 2400m다. 7월 18일 리장 고성의 밤은 추웠다.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밤새 되풀이하며 여행 안내서에 있는 거처럼 내의나 긴팔 옷을 챙기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두꺼운 솜이불을 돌돌 말아 누에고치처럼 고개까지 돌돌 말린 이불 속에 쑥 밀어 넣고 자면서 좀 깊이 잘 수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나야만 했다.
아침에 발견했는데, 우리가 잔 침대 매트리스는 전기로 난방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불 한장으로 몸을 돌돌 말며 한 장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도 소원했던 두꺼운 여벌 이불까지 TV 식장 아래 두 장이나 들어 있었다. 자신들은 난방을 하지 않지만 여행자들을 위해 설치해 둔 모양인데 제대로 살피지 않아 밤새 객잔 욕만 하고 잤던 것이다.
가급적 현지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것, 일회용품 줄이기, 그리하여 지구온난화 가속에 일조하지 않기 등도 공정여행 취지 중 하나다. 이를 떠올리며 따뜻하게 잘 수 있었음에도 추위에 웅크려 잤음을 위로해보려 했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좀 더 찬찬이 살폈더라면 따뜻하게 피로를 풀 수 있었을 텐데'하는 후회가 더 앞서는 것을 어쩌랴.
잠을 설쳐 개운하지 못한 데다가 간밤에 봤던 시끌벅적한 리장 고성의 소음과 풍경들 때문에 리장 고성의 이른 아침을 보리라던 애초 계획과 달리 미적미적, 아침 식사 시간 30분 전에야 골목에 나갔다. 그런데 금세 좀 더 일찍 나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눈에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눌렀다. 세월이 스며든 골목의 고풍스러움과 그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객잔을 나서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골목 귀퉁이에 불을 피우고 탁자와 의자를 놓고 음식을 파는 사람들과 길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도 그네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일 것이고 TV를 통해 본 적이 있음에도 그 모습이 신기해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길에서 아침을 먹는 그들을 방해할까봐.
사진을 찍다 할아버지 한분이 골목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것이 보여 다가가 인사를 건넨 후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카메라를 가리켰더니 카메라를 향해 웃는다. 그리고 사진 찍기를 기다려 카메라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한다. 지레짐작, 사진을 보여 달라는 것 아닌가 싶어 옆에 바짝 다가앉아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니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엄지를 세운다.
공정여행 안내지에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휴대하면 좋다는 내용이 있었다. '무리해서라도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준비했다면 사진 한 장 찍어 드렸을 건데'라며 아쉬운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피운 모닥불을 쬐면서 지난밤 리장 고성을 들썩이던 소음과 추위로 바짝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녹였다. 고생 덕분인지 할아버지가 피운 불이 유독 따뜻하게 와 닿았다.
아침을 먹은 후 리장 고성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감상할 수 있는 만고루에 올랐다. 고성의 수많은 지붕 위로 둥실 떠 있는 구름 속에 옥룡설산(해발 5596m)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리장이 해발 2400m쯤에 있고 만고루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이의 옥룡설산이 그다지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내 생애 저토록 높은 산을 마주하고 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계의 높은 봉우리들처럼 옥룡설산도 1년 내내 눈에 덮여 있는데, 그 모습이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아 옥룡설산이란다. 리장은 예나 지금이나 나시족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시족의 왕도인데, 나시족들에게 리장 북쪽의 이 옥룡설산은 특별한 존재다. 옥룡설산 성지순례를 평생의 소원이자 꼭 수행해야만 하는 과제로 여길 만큼 성스러운 산이다.
만고루에서 내려와 나시족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충의시장을 탐방하며 꽃차 세가지와 종을 샀다. 충의시장에 가기 전 잠시 멈춘 리장 고성 광장. 간밤의 갖가지 혼란스러움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광장에 전통복장을 한 나시족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 특이한 복장에 국제민주연대 미성씨에게 물어보니 매일 전통복장을 입고 세계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광장에 나와 나시족 전통춤을 추는 할머니들이라고 말해 줬다.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그게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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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시족 할머니들의 춤사위 리장 고성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소수민족은 나시족이다. 나시족 할머니들은 매일 전통의상을 입고 리장 고성 광장에 나와 나시족 전통춤을 추며 여러기지 춤사위를 보여준다. 땀이 날때까지 할머니들과 어울려 춤을 췄던 공정여행팀이 둘레에 모여 있다. 나도 있다. 기억보다 더 재미있었나 보다. 계속 흔들고 있는 것을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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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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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할머니들과 사진도 찍고 할머니들과 어울려 땀이 날 때까지 춤을 췄다. 지난밤 리수진사 공연 후 배우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중국 소수민족들의 춤을 배웠던 것처럼 나시족들의 춤사위며 스탭을 배우며. 우리 공정여행팀이 춤을 추자 서서 구경만 하던 중국인들도, 사진을 찍던 외국인들도 한 둘 섞여들어 할머니들과 함께 춤을 췄다.
그냥 구경만 할 때와 이처럼 어울리며 느끼는 것, 그 엄청난 차이를 새삼 설명하랴. 아마도 구경만 했다면 나시족의 전통춤(스텝)을 이미 까맣게 잊고 말았으리라. 아니, 몰랐으리라. 여행에서 돌아온 후 가끔 집안일을 하다 흥얼거리며 나시족 할머니들에게 배운 대로 발을 떼놓으며 리장 고성에서 보낸 시간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은 참가자들이 이처럼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직접 어울려 볼 것을, 말이 통하지 않고 그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좀 서툴지라도 적극적으로 다가가 인사 나눠 볼 것을,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직접 흥정하거나 구입해 볼 것을 여행 내내 권하고 독려하며 도움 되는 것들을 가르쳐 주곤 했다.
이런지라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곳을 여행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여행하는가? 라는 것. 그리고 누가 어떻게 이끄는가에 따라 여행의 질과 가치가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여행을 가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중국어 몇마디가 내가 자주 쓰는 일상의 말처럼 입에 맴돌고 있다.
국제민주연대가 이처럼 공정여행 참가자들을 현지와 현지인들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구경만 할 때와 적극적으로 어울릴 때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정여행 참가자들이 공정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여행자가 되기를, 바람직한 여행문화 확산 그 씨앗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리라.
프로그램도 패키지여행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 리장 고성을 찾는 한국 여행자들은 많다. 하지만 우리처럼 리장 고성의 속살까지 보며 고성의 진면목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우리처럼 고성 안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으며 현지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몇 시간 잠깐 머물며 구경하다가 떠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보고 느끼는 것의 차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당신은 어떤 여행을 선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