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7월 지역투어지인 대구경북과 울산을 만나 보세요. [편집자말] |
|
▲ 천천히 이동하는 재첩 회천의 재첩이 한 걸음 한 걸음 기어가고 있습니다. 신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0년 7월 24일 회천에서 촬영했습니다.
|
ⓒ 정수근 |
관련영상보기
|
저 맑은 강물 속 금빛 모래밭을 수놓고 있는 녀석은 누구일까요? 느릿느릿 제 갈 길을 가며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솜씨를 뽐내는 것은 바로 재첩이란 놈입니다. 민물조개인 재첩이 바로 저 금모래밭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최근 저 금모래밭의 주인인 재첩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그 많던 재첩을 누가 한입에 다 먹어버리기라도 했을까요?
예, 바로 '4대강 삽질'이라는 괴물이 그 탐욕의 주인공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재첩의 터전인 금모래밭이 통째로 사라져버리면서 재첩까지 모두 자취를 감춘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지금부터 이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천의 금모래밭을 수놓던 재첩이 모두 사라지다
금빛 모래가 많아 내성천을 닮은 강 회천. 경북 고령과 경남 합천을 이어주는 회천은 모래가 많고 물이 얕아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게다가 물고기와 재첩이 많아 천렵 등을 하면서 생태교육을 하기에도 그만이라 매년 여름 두 아이와 함께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아름다운 곳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모래톱에 쌀알만 한 숨구멍을 내고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게 들어앉아 있던, 그 많던 재첩이 올해는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작년 여름만 해도 모래톱에 수도 없이 나 있던 숨구멍을 파보면 여지없이 오십원짜리 동전만한 재첩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재첩을 잡아 모아 재첩들이 곧추서서 기어가는 광경을 보면서 말 그대로 생명의 신비를 자연스럽게 습득했습니다.
경북 고령군 우곡면 포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올여름 '낙동강 생태학교'를 준비 중인 규리 아빠는 "지난 5월 내린 100㎜의 봄비에 이미 회천의 많은 모래가 낙동강으로 흘러가버렸다. 재첩은 모래 밑 평균 3~4cm 깊이로 들어앉아 있는데, 회천의 모래가 강한 물살에 쓸려가면서 재첩까지 모두 사라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요? 4대강 사업이 부른 이른바 '역행침식 현상' 탓에 모래가 낙동강으로 엄청 쓸려갔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재첩과 서식처가 모두 함께 사라졌다고 합니다.
역행침식 현상으로 장마 후 다시 무너진 회천
재첩의 씨를 말려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역행침식 현상'은 독일의 하천전문가 헨리히 프라이제 박사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낙동강과 연결되는 하천의 역행침식은 낙동강의 과도한 준설로 하천의 평형이 깨지면서 발생했습니다. 낙동강에서 6m의 과도한 준설을 하면서 지천과의 평형상태가 완전히 깨진 겁니다.
결국 지천의 물이 하상이 낮아진 낙동강으로 마치 폭포수처럼 떨어져 제방을 무너뜨리고 상류로 침식이 일어나는 역행침식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한 시간만 모래를 파면 한 망태기 가량의 재첩을 잡았던 이 강에서 올해는 단 한 마리의 재첩도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 재첩이 살았다는 흔적은 어렵게 찾은, 그것도 한쪽만 남은 재첩의 폐각뿐이었습니다.
"매년 봄부터 재첩을 잡는 이들로 북적였고, 그렇게 채취한 재첩이 대구 등지로 공급됐다"는 규리 아빠의 말로도 회천에 살았던 재첩의 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회천은 섬진강의 그것처럼 대구·경북 일대 재첩 주공급원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4대강 삽질은 회천의 그 많던 재첩을 모두 집어삼켰습니다.
멸종위기종1급인 귀이빨대칭이도 삼켜버리는 4대강사업
4대강 삽질이 삼켜버린 것은 회천의 재첩만이 아닙니다. 4대강 사업이라는 괴물은 환경부가 멸종위기 1급종으로 분류한 '귀이빨대칭이'라는 이름도 범상치 않은 조개도 삼켰습니다.
지난봄 이곳 회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류부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낙동강에서(합천댐 바로 위) 멸종위기 1급 '귀이빨대칭이'가 집단 폐사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그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던 귀이빨대칭이 수천 개체가 4대강 삽질의 속도전이 극에 달하던 지난 봄 이곳 낙동강에서 집단 죽임을 당한 겁니다. 4대강 사업의 과도한 준설에 따른 수질악화와 수위저하로 이들의 서식처가 물 위로 드러난 탓이지요.
우리는 이 충격적인 사실만으로도 4대강 삽질이 어떤 '살육'을 벌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 살을 깎아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강
올해 장마 후 다시 찾은 회천은 지난봄과는 또 달라져 있었습니다. 강물의 흐름은 더 빨라졌고, 낙동강과 만나는 합류부엔 여지없이 침식현상이 일어나 지난 봄비에 무너진 둔치가 또다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양상이 훨씬 더 심각합니다.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하상유지공의 일부도 거센 강물에 뜯겨 흉물스럽게 변했고, 합수부의 물길은 또다시 바뀌어 있었습니다. 결국 붕괴하면 복구하고, 붕괴하면 또 복구하는 악순환을 지난봄부터 계속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공사비는 도대체 얼마일까요? 또한 회천의 모래가 낙동강으로 쓸려가 그동안의 준설을 '헛준설'로 만들고, 또다시 준설을 하면서 낭비되는 혈세는 또 얼마일까요?
강은 이렇게 인간을 조롱하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다시 평형을 찾아갑니다. 누군가 말했듯 "강이 제 살을 깎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겁니다. 강의 평형상태가 깨지면 이렇게 심각한 폐해를 낳습니다. 회천에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하천의 변화는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반생태적'인지 알려줍니다.
모래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는 게 바로 4대강 사업입니다. 우리는 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회천의 재첩을 통해서 지금 강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4대강에서 일어나는 역행침식 현상은 연쇄적으로 지천에서 지천으로 이어져 결국 전국의 모든 강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모래, 천연정수기이기도 하고 골재이기도
그런데 이렇게 쓸려가는 모래는 또 어떤가요?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서만 4억4000만 ㎥(경부고속도로를 6~7미터 높이로 쌓을 수 있는 양)의 모래가 사라졌습니다. 이 모래는 귀한 골재 자원이기도 합니다. 4대강에서 이 귀한 모래를 그동안 생태계가 허용하는 선에서 채취해 삶을 영위하던 골재노동자 1000여 명, 낙동강에서만 700여 명의 골재노동자가 4대강 사업 탓에 일자리를 잃고 쫓겨났습니다.
4대강 사업만 아니었다면 낙동강은 그들에게 평생의 생계를 보장해주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는 쫓겨난 골재노동자들의 생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아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수십만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면서 벌이는 이 사업으로 낙동강에서만 700여 명의 생계가 막막해진 것입니다.
골재노동자들에게 생계를 보장해주었던 모래는 또한 회천에서 확인한 것처럼 재첩과 같은 조개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생명의 서식처이기도 합니다. 모래는 재첩이 숨을 쉬고 알을 낳고, 모래무지를 비롯한 많은 물고기가 숨을 쉬고 생명을 이어가는 공간입니다.
정부가 준설해서 마구 방치한 모래(이렇게 방치한 모래가 농경지의 배수로를 막아 경북 성주에서는 참외하우스 450동이 장맛비에 침수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는 이처럼 수많은 생명을 품어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질을 정화하는 놀라운 기능이 있습니다. MB가 퍼낸 낙동강의 모래는 사실 수질 정화를 위한 귀중한 천연필터였습니다.
자연정수기 역할을 하는 이 귀한 모래를 다 파내버린 채 정부는 수질 개선을 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강물마저 가두면서 말입니다. 흐르는 강물을 막고, 천연정수기인 모래를 다 파내어버리고서 수질을 개선하겠다니, 이 정부는 정말 국민을 바보로 여기고 있습니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4대강 삽질 정부
그렇습니다. 4대강 사업 추진본부에서 하는 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거짓 홍보로 끝까지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삽질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정부는 막대한 홍보예산을 들여서 거짓홍보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국을 돌면서 벌이고 있는 '4대강 사진전'과 상금 440만 원을 걸어놓고 벌이는 '4대강 국민 공모전'이 바로 그 일단입니다.
"생명과 희망을 돌아오게 한다"느니 "환경을 생각한다"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구호로 치장한 이 사업으로 인해 지금 전국의 하천이 붕괴하고, 물고기와 조개가 죽고, 모래가 사라지면서 그 모습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것은 누구의 작품이란 말인가요?
당장 우리 아이들이 올여름 회천에서 재첩을 구경할 수 없다는 이 사실. 지금 낙동강을 비롯한 전국의 강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너무나 두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활동하며, 4대강사업으로 낙동강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