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만 있지 않다. 성경번역 작업이 활활 타올랐던 것은 더 획기적인 일이다. 이른바 1494년에 출판한 에라스무스의 히브리어 구약성경이나, 1534년에 184개의 목판화와 함께 출판된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판은 그 당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인쇄술의 보급과 함께 성경번역은 유럽각지로 파고들었다.
교황은 그때까지도 에라스무스나 루터의 성경번역본을 모두 금서로 규정했다. 일반 평민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우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대중들이 알지 못하는 라틴어로 된 '벌게이트 번역본'만을 성경 텍스트로 선언한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프로테스탄트들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된 성경번역본을 직접 번역하여, 각 나라말로 재번역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래리 스톤이 쓴 <성경 번역의 역사>를 보면 환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록과 보존과 전달을 둘러싼 역사 이야기다. 성경이 어떻게 필사가 되었고 또 보존 과정은 어떠했는지, 성경을 정경으로 간주하기까지 어떤 사건들이 놓여 있었는지, 그 사건 하나하나에 관심을 증폭시키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한글성경번역의 역사도 책 말미에 옮겨 놓고 있다.
"16세기 초의 잉글랜드에서는 성경 번역이 무척 위험한 작업이었다. 그것은 성경이 기존 교회와 그 교회를 개혁하려는 사람들 간의 권력 투쟁의 상징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모어 경은 '우리는 오직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면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묵상하는 것을 이단의 행위라고 정죄했는데, 이는 당시 다수의 견해를 대변하는 말로 신사적으로 토론할 주제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100년 전만 해도 성경의 권위를 사제의 권위보다 우위에 두었던 위클리프주의자들이 목에다 성경을 걸고 화형을 당했던 시대였다."(들어가는 말)사실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성경은 구약성경뿐이다. 모세오경과 예언서와 역사서가 전부다. 이른바 개신교가 39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구약성경이 바로 그것이다. 가톨릭은 거기에다 7권의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키고 있는 차이가 있다. 물론 교황 다마수스가 제롬에게 라틴어 번역판들을 개정토록 요구했을 때 그는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정경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그처럼 이 책 곳곳에 흐르고 있다.
더 재밌는 논쟁도 있다. 초기 기독교사회에서 '영지주의'에 해당되는 외경이 그것이다. 당시는 사도들의 저술이라고 내세우는 위작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른바 <마리아복음> <야고보의 비서> <진리의 복음> <베드로행전> <도마복음> 등이 그것이다. 그 당시의 복음서만 해도 현재의 4권이 아니라 무려 50권이나 유포되었다고 한다. 가짜 저작물을 가려내는 일에 얼마나 신중을 기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 가운데 <도마복음>이 무척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 펴낸 오강남 교수의 <종교, 심층을 보다>도, 더 멀게는 2003년에 펴낸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도 그걸 애용했다. 래리 스톤에 따르면 <도마복음>은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의 114마디 말씀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울러 초기 4세기의 역사가이자 신학자였던 유세비우스와 이레니우스도 <도마복음>을 비롯한 여러 영지주의 사본들이 정통 교리와는 완전히 어긋난 것이요, 이단의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 엉터리라고 말했다고 밝힌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다빈치 코드>에 빠져 든 이유가 뭘까? 브라운의 마케팅 전략에 홀딱 넘어간 꼴이라고 말한다.
"2003년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다빈치 코드>는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신약성경의 책들만큼이나(혹은 그 이상으로) 타당성이 있었고, 그것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 일은 콘스탄틴 시대에 일어났다고(이는 콘스탄틴이 유세비우스에게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위해 성경 50부를 만들도록 요청한 것을 잘못 해석한 것) 주장했다. <다빈치 코드>는 서스펜스와 음모와 살인이 넘치는 재미있는 소설이었지만, 이제까지 교회가 예수에 관해 가르친 내용이 틀렸고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주장을 하는 바람에 영지주의의 저술에 관심을 고조시켰다."(87쪽)어떤 사람들은 이런 궁금증을 품고 있을지 모르겠다. 예수의 일대기를 둘러싼 4복음서가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성경에는 왜 상스러운 세상 이야기가 많은지,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성경과 가톨릭과 개신교가 사용하는 성경은 왜 차이가 있는지, 또 외경은 왜 그리 많고, 그것을 둘러싼 정경 구분은 왜 또 까다로웠는지, 그리고 한글 성경도 왜 자꾸 새롭게 펴내는지 궁금해 할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과 함께, 성경번역의 뼈아픈 통사(痛史)론적 관점도 그려주고 있어서 더욱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