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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총장 후보자에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명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병문(78)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27년 전 그가 한 후보자의 수사지휘로 인해 겪었던 '43일간의 구속'이라는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일 오전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만난 이씨는 "한상대 후보자는 검찰총장으로서 자질이 없다"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구속기소했다가 공소유지도 못해서 무죄를 만들어낸 사람이 무슨 검찰총장이냐? 이명박 대통령이 자격미달인 그를 고려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던 이씨를 이렇게 격분하게 만든 '사건'에는 '검찰 기소독점(편의)주의'의 폐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사건은 5공화국 시절인 지난 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상대 검사가 43일 구속한 이씨,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 받아

 

 한상대 후보자의 초임검사 시절 43일간 구속됐다가 무죄판결받은 이병문씨.
한상대 후보자의 초임검사 시절 43일간 구속됐다가 무죄판결받은 이병문씨. ⓒ 구영식

건축업에 종사했던 이씨는 83년 1월 A사를 '50 대 50'의 지분으로 공동경영하기로 하고 박아무개씨와 '동업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동업자 박씨가 이씨와 상의하지 않고 A사 소유 부동산의 50%를 제3자에게 양도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씨는 박씨에게 자신이 출자한 투자원금(7000만 원 정도)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박씨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이씨는 같은 해 11월 박씨를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이 고소사건은 구로경찰서를 거쳐 서울 남부지청 19호 검사실로 넘어갔다. 당시 '19호 검사'는 한상대 현 검찰총장 후보자였다. 한 후보자가 83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곳이 남부지청 19호 검사실이었다.

 

초임검사였던 한 후보자는 이씨의 동업자인 박씨를 84년 1월 구속했다. 그리고 같은 해 2월 고소인 조사에 나섰다. 이씨는 남부지청 19호 검사실에서 처음으로 한 후보자와 마주했다. 이씨의 증언이다.

 

"그날이 토요일 오후였다. 고소인 진술을 받겠다는 연락을 받고 19호 검사실에 출두했다. 그런데 한 검사가 30~40분간 몇마디만 묻고는 조사를 끝냈다. 그는 저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얘기해놓고 검사실을 나갔다.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 후보자를 기다리던 이씨는 오후 9시께 영등포 구치소에 전격 구속됐다. 박씨를 무고했다는 혐의였다. 경찰서에 제출한 고소장의 내용이 박씨를 무고했다는 것이다.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모두 경찰서에 수감되는 아주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상자기사 참조).   

 

무고혐의로 구속된 이씨는 구속된 지 43일 만에 보석허가를 받아 석방됐다. 그는 84년 8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85년 12월). 그리고 대법원도 그의 무죄를 확정했다(86년 9월).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가 제출한 고소장 내용은 모두 객관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이씨가 그 고소내용이 허위인 것을 알고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완벽한 무죄'를 판결했다. 대법원도 "기록에 비추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당시 대법원 판결에는 윤관 전 대법원장이 참여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확정 판결은 애초 검찰의 구속기소가 무리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이씨가 고소했던 동업자 박씨는 이씨가 구속된 이후 풀려났고, 그의 사기혐의는 무혐의 처리됐다는 점이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이병문씨의 무고혐의에 '무죄'를 판결했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이병문씨의 무고혐의에 '무죄'를 판결했다. ⓒ 구영식
'이명박 대통령 인사에 늙은이들까지 고개를 흔든다'

 

43일 간의 구속과 3년의 재판, 그리고 대법원의 '무죄' 판결. 이씨로서는 한 후보자의 '최초 수사지휘'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뒤 천안지청에서 근무하던 한 후보자를 찾아갔다.

 

"한 검사님이 구속기소한 제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책임지십시오."

"변호사와 얘기하십시오."

 

얼마나 억울했든지 그런 항의에만 그치지 않고 한 후보자와 국가를 상대로 '공소권 남용에 의한 피해보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현직 검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선뜻 맡으려는 변호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연은 지난 86년 11월 17일자 법률전문지 <법률신문>에 '검사상대 손배사건에 변호사들 수임 외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수도 없이 법률사무소를 찾아다녔다는 이씨는 원로변호사 K모, 인권변호사라는 R모, H모씨 등을 만났지만 사건이야기를 듣고 이해는 하면서도 갖가지 이유를 들어 사건수임을 회피 (중략). 죄도 없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검사가 아직도 있다는 것을 개탄하는 이씨는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사명감이 본연의 임무인 변호사가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람을 외면하고 있는 처지는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고 한탄."

 

하지만 서울배상심의회는 이씨의 배상금 지급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검사의 구속, 수사처분, 공소제기 등을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사유였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한 후보자의 부친이 이씨를 찾아왔다는 점이다. 한 후보자의 부친인 한윤수(2007년 작고)씨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고, 이후 서울변호사회 인권위원장과 재정분과위원장 등을 지냈다. 50여년 동안 변호사로 일해 법조계에서는 상당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윤수씨는 "검사가 공소제기한 사건이 무죄가 됐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라며 "괜히 고생하지 말고 소를 취하하라"고 권유했다.

 

이씨는 "한씨의 권유를 거절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두 차례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당했다"며 "재판부는 한 검사가 고의로 저를 구속기소했다는 것을 입증하라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그걸 입증할 수 있겠나?"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병문씨가 한상대 후보자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는 소식을 전한 86년 11월 17일자 법률신문 기사.
이병문씨가 한상대 후보자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는 소식을 전한 86년 11월 17일자 법률신문 기사. ⓒ 구영식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 세워준다면 적극 협력하겠다'

 

이씨는 "사기를 당해 피해를 입고 법에 호소한 사람을 토요일 오후에 고소인 조사를 하겠다며 불러 놓고 무고죄를 씌워 구속하니 그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이냐?"며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일"이라고 27년 전 일을 괴롭게 회고했다. 

 

이씨는 "이런 검사가 어떻게 검사로 지금까지 남아서 검찰총장 후보에까지 지명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 저를 증인으로 세워준다면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검찰기소독점주의라고 하지만 '안되면 말고식'으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이씨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던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할 때만 해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몇 번의 인사를 거치면서 이제는 국민들이 이 대통령 인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처럼 보수성향인 늙인이들조차 '이러면 정권 바꾸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할 정도다."

 

피고소인 구속한 뒤에 고소인까지 구속? "아주 드문 일"

법조계에서는 이병문씨가 겪은 사건은 아주 특이한 경우라고 입을 모은다. 한 사건에서 피고소인을 구속했는데 고소인까지 구속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인 김용원 변호사는 "피고소인이 구속된 상태에서 고소인을 구속하는 것은 이론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라며 "검사가 중대한 판단오류를 해서 고소인을 억울하게 만든 경우 같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검사가 피고소인의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을 때 고소인의 진술만 가지고 한 게 아니었을 것"이라며 "피고소인을 구속한 상태에서 고소인까지 구속한 것은 모순적인 일로 검사가 기본적인 판단능력을 갖추었는지에 의문을 나타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갑주 변호사는 "고소사건에서 피고소인이 무혐의로 결론나면 고소인의 무고 혐의를 검토하기 때문에 고소인을 무고혐의로 구속하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이병문씨의 경우는 피고소인이 무혐의 처분되기 전에 고소인을 구속했다는 점에서 아주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한상대 후보자가 초임 검사여서 피고소인의 무혐의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행정적 착오인지 한 후보자가 피고소인을 봐준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상대#이병문#남부지청#한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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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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